건지산 예찬
건지산 예찬
  • 박인선
  • 승인 2019.07.14 17: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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치유의 숲(forest of healing) 송규상 作/수묵화   건지산 편백나무숲을 그렸다

 좋은 산을 가까이할 수 있다는 것은 행운이다. 건지산을 오르면서 어린 시절 학교 식목행사 기억을 아내가 떠올렸다. 완산칠봉 부근에 편백나무를 심었던 생각을 해냈다. 건지산의 편백나무 수령이 완산칠봉의 그것과 비슷해서인지 같은 또래 친구들이 비슷한 시기에 정성을 쏟아 심은 것 같다면서 지난날의 값진 시간을 되돌아보았다. 편백나무의 나이가 어쩌면 비슷하겠다는 느낌이 들었다.

 건지산 초입에 들어서면 먼저 반기는 나무가 편백이다. 조경단을 감싸고도는 둘레길을 따라 숲길로 들어서면서 길은 여러 갈래로 나누어진다. 촘촘히 들어선 편백나무 숲에는 사람들의 발길이 만든 길들이 숲 사이를 거미줄처럼 연결된다. 숲이 길을 만들도록 안내라도 한 듯 숲 사이로 난 길들이 그렇게 보인다. 어린아이들이 길바닥에 그린 그림 같다. 건지산의 길들을 보고 있자면 대지미술 같다는 생각을 하게 된다.

 산등성이를 지나 편백나무 숲을 얼마간 지나면 다른 한쪽에선 떡갈나무 숲들이 울창하다. 길 하나를 두고 들어선 두 수 종간에 경쟁이라도 하듯 녹색은 더욱 선명하다. 편백나무 짙은 녹엽과는 대조적이다. 이래서인지 가을에는 떡갈나무 밑에서 다람쥐들의 먹이 구하는 모습들이 보인다. 양 볼에 도토리를 가득 물고 초롱한 눈빛과 마주칠 때는 귀엽기만 하다. 그러나 언제부턴가 그 모습들이 점차 줄어들었다. 청설모들이 늘어나면서 그들의 놀이터가 조금은 위축된 모양이다.

 생명체들이 있는 곳엔 치열한 자리다툼이 있게 마련이다. 어치 한 마리가 참새를 공격하는 모습이 목격되었다. 참새의 격렬한 저항 소리가 편백나무숲 속에 퍼져나갔다. 어치가 이곳 숲에서는 대장 노릇을 한다. 얼마간의 침묵이 흐르고 색다른 소리들이 들린다. 직바구리, 찌르레기, 때까치, 이름 모를 새소리들의 화음이다. 자연의 소리는 평화롭다. 숲이 아닌 곳에서 상상할 수 없는 풍경은 마냥 신비롭기만 하다.

 전주 북부지역을 감싸고 있는 건지산은 몇 해 전까지만 해도 경계 같은 구실을 하고 있었다. 군부대의 이전으로 대단위 주거시설이 조성되면서 이제는 도심 한가운데 자리한 모습이다. 동물원, 문화예술공연과 생활체육시설이 들어서 있고 숲 속의 작은 도서관은 잠시 마음을 맡기고 사유할 수 있는 곳이다. 반세기가 넘는 시간 동안 나무를 심고 지켜낸 건지산이 보답이라도 하듯 친근하게 다가서고 있다. 사람들의 마음을 어루만져주는 치유의 숲이다.

 얼마 전 출장길에 전주역 앞길을 지나갔었다. 오랜만에 마주친 전주역 앞길을 보면서 조금은 다른 도시를 느꼈다. 녹색의 옷을 입은 가로수들이 예전의 삭막함을 말끔히 걷어내고 있었다. 선형을 변형하다 보니 교통체증으로 불편을 호소하는 소리도 들렸다. 예전처럼 쌩쌩거리면서 달리는 차들은 볼 수 없다. 매연도 훨씬 줄어들었다. 차량의 여유로운 흐름은 느린 듯 보이지만 차창밖의 풍경이 청량하다. 전주 한옥마을이 ‘슬로시티’로 지정되면서 마중길이 이렇게 변했다.

 도시의 발전모델이 시민들의 삶과 연결된 방향으로 변화하고 있다. 기후변화는 시민들의 삶에 가장 직접적으로 다가왔다. 도시열섬현상과 미세먼지, 소음문제가 대두되면서 환경문제가 우선순위가 반영되었다.‘도시숲조성’이다. 이런 와중에 ‘덕진종합경기장 이전계획’이나 ‘대한방직공장터 개발’ 등 굵직한 개발에 대한 시민들의 여론도 정책당국이 세심하게 눈여겨볼 대목이다.

 지금까지는 자치단체장들의 치적 쌓기가 시민들의 의사와는 동떨어진 방향에서 진행되면서 갈등을 키워왔던 측면들도 있었다. 도시문제의 핵심이 환경인 만큼 시민들의 삶과 직결된 환경친화적인 개발과 미래도시를 지향하는 방향으로 시민들의 의사가 적극 반영되기를 바란다. 건지산을 오르면서 더욱 절실하게 느꼈다. 환경문제 해결, 도시를 숲으로 만들어 보자.

 

 글 = 박인선(정크아트 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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