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25 할아버지, 최은석 할아버지를 만나다
6.25 할아버지, 최은석 할아버지를 만나다
  • 진영란
  • 승인 2019.07.11 15:56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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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얘들아, 우리 학동마을로 소풍 가자. 마을에 누가 우리를 기다리고 계실까?”

 “6.25 할아버지요! 근데 그 할아버지 성함이 뭐예요?”

 “아이구, 6.25 때 유일하게 불타지 않은 집에만 관심을 쏟아서 할아버지 성함도 묻지를 못했네. 이번에 찾아뵈면 알 수 있겠지? 그런데 할아버지께서 병원에 가셔야해서 안 계실 수도 있대. 어떡하지?”

 “그럼 추봉선 할머니를 만나면 되잖아요. 그 마을에서 연세가 가장 많으셨던 할머니요!”

 지난번 마을 소풍 때 만난 6.25 할아버지를 다시 뵙고 싶어서 계획한 소풍인데, 마을에 연락해 보니 병원에 가실 수도 있단다. 아이들이 실망할까봐 조심스럽게 운을 띄웠는데, 멋진 대안을 제시해준다. 그래도 두 분 다 뵙기를 희망하며 마을소풍 계획을 짰다.

 “어르신들 뵐 때 우리 뭘 할까?”

 “맛있는 거 사다 드려요. 이가 안 좋으실 수도 있으니까 두유랑 양갱 어때요?”

 어르신들을 생각하는 마음이 참 예쁘다. 그래서 두유랑 양갱은 돈 버는 선생인 내가 내기로 했다. “너희들은 뭘 할래?”

 “우린, 돈이 없으니까 단오 때 했던 사물놀이랑 민요 불러드리면 어때요? 편지도 쓰고요.”

 우리랑 함께 소풍가기로 한 3학년 동생들은 단오 때 만들었던 장명루랑 쑥향주머니, 시원한 여름부채를 정성껏 만들었다. 두 달 동안 열심히 연습한 리코더 연주도 선보일 생각에 소풍이 기다려진단다.

 마을 정자에 도착하니 사무장님이 우리를 반갑게 맞아주신다. “사무장님! 6.25 할아버지랑 추봉선 할머니는 마을에 계세요?” 아이들은 인사도 잊은 채 할머니 할아버지가 마을에 계신지를 묻는다. “할머니께서 우리 장승초 친구들을 맞아주시려고 마중을 나오셨어요. 저기를 보세요” 사무장님이 가리킨 곳은 우리가 모인 정자 바로 옆 버스정류장이다. 94세라고 도저히 믿기지 않는 정정하신 할머니께서 우리를 향해 반갑게 손을 흔들고 계신다. 아이들이 할머니께 우르르 달려가서는 반갑게 인사를 한다. “할머니 안녕하세요?” 할머니는 잇몸을 환히 드러내시며 웃어주신다. “근데 6.25 할아버지는 안 계셔요?” 아이들은 할아버지의 안부가 더 궁금하다. “아, 최은석 할아버지요? 할아버지는 지금 집에서 여러분을 기다리고 계세요. 오늘 서울 병원에 가셔야하는데 여러분 만나고 싶다고 병원 예약도 미루셨대요.” 할아버지를 만날 수 있다는 사실에 안도한다.

 할아버지 집을 향해 가는 동안 여자 아이들은 할머니 주변에 모여서 팔을 부축하고 연신 부채질을 해 드린다. 할아버지는 옷을 말끔하게 차려입고 우리를 기다리신다. 아이들은 할아버지를 발견하고는 지난번처럼 마당으로 일제히 달려들어가 인사를 드린다. “할아버지, 저희 또 왔어요. 잘 지내셨어요?” “아휴, 이 늙은이를 뭐 하러 또 보러와?” 말씀을 그렇게 하셔도 연신 싱글벙글 웃으신다. “할아버지, 이거 저희가 만든 장명루랑 부채예요. 쑥은 못 뜯어서 쑥 대신에 사탕 넣었어요. 배고프실 때 드세요.” 3학년 아이들이 정성껏 쓴 편지와 선물을 드린다. “아이구, 그냥 오지, 고마워요!” 4학년 아이들도 두유랑 편지를 전해 드린다. 그리고 나서 3학년의 리코더 공연, 4학년의 사물놀이가 공연이 펼쳐졌다. 마루에 앉아계시던 할머니께서 마당으로 나오셔서 덩실덩실 춤을 추신다. “아이구, 예전에는 만날 춤추고 놀았는데, 이제 어지럽네!” 민요가 이어지자 또 자리를 박차고 나오셔서 멋진 춤사위를 보여주신다. 우리가 공연을 시작했는데 어느새 할머니의 춤을 감상하고 있었다. 멋진 공연을 마당극처럼 준비한 아이들도, 그 놀이판에 신명나게 놀고 싶으셨던 할머니도 모두 박수를 받아 마땅하다.

 “나는 올해 아흔 넷이여. 저짝 아랫마을서 열 네 살에 시집와서 이 때까지 여그서 살어.”

 “결혼을 엄청 빨리 하셨네요?” “그 때는 일본놈들이 막 잡아가니까 빨리 시집을 왔지. 결혼을 한 사람은 안 잡아가니까!”

 할머니의 일생에서 아픈 역사를 만난다.

 “할아버지는 어디가 편찮으신 거예요?”

 “나는 큰 수술을 두 번이나 혔어. 암수술이랑 심장. 여기서는 못 해서 서울서 했지. 애들이 서울로 병원을 데려가. 인자 다음 주에 가야지. 이렇게 와 주니까 너무 고맙네.”

 할머니는 우리 공연에 대한 화답으로 감열매 저글링을 보여주셨다. 노랫가락이 소녀처럼 낭랑하시다.

 “할아버지, 아프지 말고 오래오래 건강하세요. 저희가 가을에 또 뵈러 올게요.”

 “이렇게 왔는디 맛난 것도 못 주고, 저기 교회 옆에 앵두 있어. 다 익었을 것잉게 그거라도 따 먹고 가.” 마당까지 따라 나오신 할아버지께서 손을 흔드시며 연신 당부하신다. 할아버지께서 허락하신 앵두며 보리수를 따 먹고 추봉선 할머니를 댁에 모셔다 드리고서 마을을 나왔다.

 “우리 할머니랑 할아버지 생각난다. 선생님, 할머니랑 할아버지 만나러 우리 언제 또 와요? 여기 곶감 마을이잖아요. 가을에 곶감 깎으러 또 와요.” 그렇게 우리는 가을 소풍을 기약했다.

 마을 어르신들께서 직접 대나무를 자르고 천을 잘라 준비해 주신 대나무물총 만들기, 신나는 물놀이, 맛난 마을 밥상에 수박 간식까지 든든하고 알차게 체험한 뒤에 학교로 향했다. 어르신을 만나기 위해 공부하고, 마을은 우리를 만나기 위해 마음을 써 주시니 참으로 따뜻하고 알찬 배움이 펼쳐진다. 마을이 참 좋다. 마을에 계신 사람들이 자꾸 궁금해 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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