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읍 ‘무성서원’ 유네스코 등재 주역, 유진섭 정읍시장
정읍 ‘무성서원’ 유네스코 등재 주역, 유진섭 정읍시장
  • 정읍=강민철 기자
  • 승인 2019.07.10 15: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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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지난 6일 아제르바이잔에서 낭보가 전해졌다. 아제르바이잔 수도 바쿠에서 열린 유네스코 제43차 세계유산위원회에서 정읍의 ‘무성서원’을 포함한 9개 ‘한국의 서원’에 대해 세계유산 등재를 최종 확정, 발표된 것이다. 현지 시각 6일 오후 3시 40분, 우리나라 시간은 같은 날 밤 8시 40분이었다. 이같은 소식에 정읍은 축제 분위기로 달아올랐고, 유진섭 시장은 아제르바이잔 현지에서 벅찬 감동의 순간을 맞았다. 10일 아제르바이잔 현지에서 돌아와 감동의 열기가 채 가시지 않은, 상기된 표정으로 시정에 복귀한 유 시장을 만났다. 무성서원의 세계유산 등재 의의와 관리, 그리고 활용 방안 등을 설명하는 유 시장은 어느 때보다 기운에 넘쳐 있었다. 〈편집자 주〉 

 - ‘무성서원’의 세계유산 등재를 축하합니다. 시차 때문에 피곤하기도 할 텐데….

 “지난 4일부터 9일까지 3박 6일간의 짧은 일정을 소화하느라 솔직히 많이 피곤하다. 하지만 기분 좋은 피로감이다. 무성서원은 이제 정읍과 전북, 대한민국을 넘어 전 세계 인류가 공동으로 지키고 전승해야 할 소중한 문화유산으로서의 가치를 인정받게 됐다. 어떤 유산이 세계유산으로 등재되기 위해서는 한 나라에 머물지 않고 탁월한 보편적 가치가 있어야 한다. 기준이 엄격해서 유럽 각국의 유산 등재도 쉽지 않은 것으로 알고 있다. 우리나라(문화재청)는 역시 2016년 4월 유네스코 자문·심사기구인 국제기념물유적협의회(ICOMOS)의 ‘반려(Defer)’ 의견에 따라 세계유산 신청을 자진 철회한 바 있다. 이번 등재가 그만큼 값지고 의미 있다는 반증이다.”

 -평상시 ‘무성서원’을 자주 찾는지 궁금한데….

 “생각이나 일이 좀처럼 풀리지 않을 때면 정읍 구석구석을 찾아 가벼운 산책을 하거나 그곳에서 생각에 몰입하곤 한다. 무성서원 역시 자주 찾는 곳 중 하나다. 오늘도 그곳에서 언론인을 만나 무성서원을 함께 둘러보며 서원도 소개하고 세계문화 유산 등재 의의, 관리와 활용방안 등을 밝히며 소통할 예정이다. 무성서원은 우아한 건축미가 인상적이다. 반듯한 선비의 풍모도 묻어난다. 출입문을 지나면 휴식공간인 현가루, 학습공간인 명륜당, 영정과 위패를 모신 사당으로 이어진다. 개인적으로 대쪽 같은 선비를 닮은 겨울의 무성서원을 좋아한다.”

 -그렇다면, 무성서원은 어떤 곳인가요.

 “무성서원 사당 한가운데에는 고운 최치원(857년 ~ ?)의 위패와 초상이 모셔져 있는데, 그는 신라 말 태산(지금의 태인, 칠보 일대)의 태수를 지냈다. 무성서원은 그의 학문과 덕행을 기리기 위해 세운 생사당(백성들이 감사나 수령의 선정을 찬양하기 위하여 그 사람이 살아 있을 때부터 제사 지내는 사당)인 태산사가 뿌리다. 고운까지 거슬러 올라가면 무성서원은 1천여 년의 시간을 품고 있는 셈이다. 고운이 태산군의 태수로 부임한 886년경부터 계산하면 1,100여 년의 역사이다. 1615년 서원으로 출발했는데, 태산서원으로 불리다가 숙종 22년인 1696년 사액(賜額)을 받아 무성서원으로 개칭됐다. 고종 5년(1868년) 흥선대원군의 대대적인 서원 철폐령 속에 살아남았던 전라북도 유일의 서원이다. 무성서원은 자연경관이 뛰어난 곳에 자리한 다른 서원과 달리 마을 중심부에 자리하고 있다. 신분 계급을 막론하고 누구에게나 학문의 기회를 동등하게 제공했으며 지역민 결집의 중심이었다. 지역문화를 선도하며 지식인들이 사회적 역할을 다하는 거점으로서의 역할을 다했다.”

 -구체적으로 역사적 관점에서 설명해 주시지요.

 “대표적 인물이 조선 초의 문인 불우헌 정극인(1401~1481, 경기도 광주 출생)이다. 불우헌은 1436년 벼슬에서 물러나 처향(妻鄕)인 태인(*그의 묘소와 유적이 현재 칠보면에 소재하고 있으나, 당대의 지명은 태산(泰山)과 인의(仁義)가 합쳐진(1409년 ‘태인현’이었다.)에 내려와 교육자로서의 삶을 시작했다. 가사문학의 효시인 ‘상춘곡’은 자연 속에서의 삶을 노래한 작품이다. 그는 특히 성리학적 질서를 담은 지역자치 규약인 고현동향약(1475, 보물 1181호)을 통해 미풍양속을 권장하고 이웃과의 화목을 권장했다. 이러한 전통이 이어져 일제 강점기인 1906년에는 을사늑약에 항거하는 병오창의가 일어났다. 면암 최익현과 둔헌 임병찬이 주도한 이 사건은 호남 최초의 항일 의병운동으로 평가된다. 특히 전북지역 중심서원이자 정신사적 위상을 잘 보여주는 사례라 하겠다. 관련된 역사적 사실들을 기념하는 병오창의기념비가 사원 안에 있고, 정기적으로 관련 행사도 열리고 있다.”

 - 무성서원만의 특징을 꼽는다면.

 “무성서원은 폐쇄적이지 않고, 건축물이 간결하며 모든 건축물의 높이가 동일하다. 그래서인지 민(民)을 향한 따뜻한 배려심이 느껴진다. 또 서원 건축물들도 마을을 항해 열린 공간으로 구성돼 있다. 교육공간이자 마을 사람들이 모여서 소통했던 장소이기도 하다. 소박한 건축미도 눈에 띈다. 마루 3칸이 벽체가 없이 툭 틔어 있어 내삼문의 태극문양이 한눈에 들어온다. 배향 인물도 많다. 고운과 불우헌, 서원 인근에서 활동하던 영천 신잠(1491~1554)과 눌암 송세림(1479~1519), 묵재 정언충(1491~1557), 성재 김약묵(1500~1558), 명천 김권(1549~1622) 모두 일곱이다.”

 -앞으로 관리와 활용 방안은 있는 것인가?

 “이제 무성서원은 정읍만의 것이 아니다. 정읍과 전북은 물론 대한민국을 넘어 전 세계인의 자산이다. 이 점을 잊지 않겠다. 유네스코의 등재 기준을 준수하면서 지속적인 관리를 통해 서원의 본래 모습과 가치를 보존하는데 최선을 다하겠다. 더불어 인지도와 활용도는 물론 서원의 가치를 높이는데도 힘을 모으겠다. 다양한 홍보 채널 확보와 함께 무성서원을 활용한 사업과 공연ㆍ강좌ㆍ체험 등 다채로운 행사를 진행할 예정이다. 또 전북도 등과 협의 유네스코 등재 선포식 등의 기념행사도 준비 중이고, 다큐멘터리 제작 등을 통해 무성서원의 가치를 공유토록 함은 물론 지역민들의 문화유산에 대한 자긍심도 높이겠다. 이를 통해 문화관광산업에도 활력을 불어 넣겠다. 오래전부터 무성서원선비문화수련원(이하 선비수련원) 건립을 추진해왔다. 선비정신 수련과 풍류 문화를 배우고 계승·발전시켜 나갈 거점을 확보하기 위한 사업이다. 선비수련원은 무성서원 인근 4만2천492㎡ 부지에 세워진다.”


정읍=강민철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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