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성서원 세계문화유산 등재 의미와 미래… 성리학 발전·항일 투쟁 본거지
무성서원 세계문화유산 등재 의미와 미래… 성리학 발전·항일 투쟁 본거지
  • 설정욱 기자
  • 승인 2019.07.07 16: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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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제르바이잔에서 2023새만금 세계잼버리 대회 유치에 이어 2년 만에 또 하나의 낭보가 도착했다.

유네스코는 6일(한국시각) 아제르바이잔 수도 바쿠에서 열린 제43차 세계유산위원회(WHC)에서 무성서원을 포함한‘한국의 서원 9곳’에 대해 세계문화유산 등재를 최종 확정했다.

이에 따라 한국이 보유한 세계문화유산은 모두 14건으로 늘었다.

북한·중국의 고구려 역사유적과 개성의 역사유적까지 포함하면 한민족 관련 세계유산은 16건이 된다.

◆ 무성서원, 성리학을 전파하다

‘한국의 서원’은 조선 시대 사회 전반에 널리 보편화 되었던 성리학의 탁월한 증거로 평가받는다.

세계유산위원회 역시 서원이 성리학의 지역적 전파에 이바지했다는 점을 인정했다.

정읍시 칠보면 무성리에 위치한 무성서원은 지역을 대표하는 서원이자 흥선대원군의 대대적인 서원 철폐령 속에 살아남았던 전라북도 유일의 서원으로 1968년 사적 제166호로 지정됐다.

무성서원은 우리나라 유학의 비조로 꼽히는 고운 최치원 선생을 중심으로 우리나라 가사 문학의 효시인 상춘곡을 짓고 최초의 향약인 고현동향약을 시행한 불우헌 정극인 선생 등 7분의 위패를 모신 서원으로도 잘 알려져 있다.

신라말 최치원 선생이 태산의 태수로 부임하여 8년 동안 선정을 베풀고 많은 업적을 남기고 떠나자 주민들이 그를 기리기 위해 생사당을 세워 태산사라 하였는데 숙종 22년(1966)에 무성이라는 사액을 받아 무성서원이 됐다.

향촌 사회에서 성리학 이념을 투영해 자체적으로 설립한 무성서원은 신분 계급을 막론하고 동등하게 학문의 기회를 제공한 조선 시대 대표 교육기관으로 역할을 다했다.

▲ 항일 독립운동의 원천

1905년 을사조약이 체결되자 이듬해인 1906년 무너져 가는 국권을 되찾기 위해 면암 최익현, 둔헌 임병찬을 중심으로 800여 의사가 참여한 호남 최초의 의병 활동을 일으켰는데 그 곳이 바로 무성서원이다.

이곳에서 창의한 의병들은 전국으로 나아가 훗날 조국의 독립을 위해 일제에 항거한 의병의 모태가 됐다.

당시 의병들은 태인과 정읍을 거쳐 순창으로 진출했지만 일본군이 아닌 조선 진위대가 진압하러 오자 같은 민족끼리 싸울 수 없다며 자진 해산했다.

당시 면암은 대마도로 유배됐다가 단식으로 순국했고, 둔헌은 고국으로 돌아와 독립운동에 헌신하던 중 일본군에 잡혀 거문도에서 순국한 것으로 알려졌다.

시는 항일 구국 의병들의 호국정신과 의로운 희생정신을 기리기 위해 1992년 무성서원에 병오창의기적비(丙午倡義記蹟碑)를 세워 선열들의 애국정신을 기리고 있다.

▲ 무성서원, 미래를 그리다

전북도와 정읍시는 무성서원의 가치를 널리 알리고자 내년까지 세계유산 보존 및 관리를 위한 종합정비계획 수립, 보존 관리에 집중한다는 계획이다.

정읍시는 호남 선비정신과 풍류 문화를 배우고 계승·발전을 목표로 무성서원 인근 4만2천492㎡ 부지에 ‘무성서원 선비문화수련원’ 건립도 추진 중이다.

수련원은 청소년 인성 함양은 물론 지역의 문화, 생태, 예술, 유산 등 다양한 자원과 연계한 대표 역사 관광지가 될 것으로 기대된다.

도와 시는 다양한 홍보 채널 확보와 함께 무성서원을 활용한 사업과 공연ㆍ강좌ㆍ체험 등 다채로운 행사도 이어갈 방침이다.

올해 11월까지 최치원과 정극인 등 무성서원의 배향 인물로 알아보는 풍류와 도에 대한 강좌와 나라국악관현악단, 전라정가진흥회의 공연이 진행된다.

또 서원과 주요 역사 관련 장소를 답사해 예절·다례·사자소학 등을 배우고 체험할 수 있도록 강학당을 운영하고 서원스테이 프로그램을 진행할 예정이다.

설정욱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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