두주불사(斗酒不辭)와 윤창호법
두주불사(斗酒不辭)와 윤창호법
  • 김천환
  • 승인 2019.07.03 16: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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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두주불사는 말술도 사양하지 않는다 라는 뜻으로 본래는 장수들의 기개를 표현하던 것이었으나 뜻이 변하여 아무리 많은 술이라도 사양하지 않을 만큼 주량이 센 사람을 가리키는 말로 쓰이게 되었다.

 “죽음도 두려워하지 않는 저 올시다. 어찌 술 몇 말을 사양하겠습니까?”

 두주불사(斗酒不辭)의 유래가 된 초나라의 항우와 유방의 부하 장수인 번쾌 사이에서 일어난 대화다.

 항우와 유방이 패권를 다투던 진나라 말기 장래의 걸림돌이 될 유방을 홍문의 잔치를 빌미로 항우의 부하 범증이 유방을 죽이려고 하였으나 정작 항우는 죽일 뜻이 없자 이에 범증이 항장에게 칼춤으로 유방을 죽이라 지시하였고, 유방의 참모 장량은 유방이 위험한 것을 알고 사람을 보내어 번쾌를 불렀다.

 번쾌는 이때 들어오지 말라는 병사들의 저지를 뚫고 들어왔고 항우의 다른 부하들은 그가 오는 것을 무례하다고 꾸짖었지만, 항우는 그를 보고 ‘참으로 장수라 할 만하다’며 그에게 술 한 말과 생돼지고기 한다리를 주었고 번쾌는 무장을 한 채로 술 한 말을 단숨에 마시고 방패를 도마 삼아 칼로 고기를 썰어 먹었다는 데에서 유래한다고 한다.

 취할 때까지 마시자는 의미로 건배사에 자주 등장하는 ‘불취무귀(不醉無歸)’란 말이 있다.

 “옛사람들은 술로 취하게 한 뒤에 그 사람의 덕을 살펴본다고 하였다. 오늘 취하지 않은 사람은 결코 돌려보내지 않을 것이니, 모름지기 각자 양껏 마시도록 하라.“

 1792년 과거시험에 갓 합격한 성균관 유생들을 초대한 자리에서 정조가 한 말이다.

 당색이 다르면 조문(弔問)도 하지 않는다‘는 사관의 기록처럼, 어떤 식으로든 갈라진 사람들의 마음을 하나로 묶어야 한다는 게 정조의 판단이었고 여러 붕당의 젊은 유생들을 한자리에 모이게 하여 왕이 친히 내린 술을 마시고 서로 어우러지는 계기를 만들려 했던 것이다.

 세종은 술을 마시되, ‘중간에 적당히 그치는 적중이지(適中而止)’ 절제력이 있었다. 장남인 양녕대군처럼 지나치게(過) 술을 마셔서 실수를 범하지도 않고, 둘째인 효령대군처럼 한 모금도 마시지 못해서 외국 사신들을 맞이하는 자리에 부족(不足)하지도 않은 ‘중용의 술 마시기’를 했다고 태종실록에 전한다.

 서양 사람들은 술을 권하는 데 있어서 동양 사람에 비해 인색하다. 첫잔을 권하기 전에 꼭 뭘 마실 거냐고 물어보고, 다음부터는 자기가 따라 마신다. 자작을 하는 습관이다. 우리나라 같으면 상상할 수도 없다.

 우리나라 사람들은 음식을 권하는 인심이 매우 후하다. 술 권하는 인심도 마찬가지다. 오히려 강제성이 많아 억지로 술을 마셔야 하는 경우가 많다. 서양 사람들은 그 반대다. 그러나 역으로 생각해 보면 술 마시는 사람의 취향이나 컨디션을 존중하는 배려가 깔려 있는 것 같다.

 술자리는 누구와 어떤 목적으로 마시느냐에 따라 사람을 살릴 수도 있고 화합과 소통의 장도 될 수 있다.

 부산 해운대에서 故윤창호씨의 안타까운 희생을 계기로 음주운전이 미치는 심각성에 국민들의 공감대를 얻으면서 도로교통법 개정안 일명 윤창호법이 만들어지게 되었다.

 이를 계기로 ‘석 잔은 괜찮다’는 관용적 음주문화가 ‘한 잔도 걸린다’라고 인식이 바뀌면서 음주운전에 대한 경각심이 크게 높아졌고 자연스레 외식 및 주류 소비문화도 변하고 있다

 심지어 대리운전 및 택시업계의 영업패턴에도 영향을 미치고 있다고 한다.

 단속강화를 떠나 음주운전의 폐해는 운전자는 물론 피해자의 행복을 송두리째 뽑아버리고 한 가정이 돌이킬 수 없는 결과를 생각하면 한잔이라도 마셨다면 운전대를 절대 잡아서는 안 된다.

 술은 마시고 즐기되 음주운전은 터지면 폭망하는 시한폭탄임을 절대 명심하자.

 김천환<전북개발공사 사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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