농업인개발과제는 왜 사라졌을까
농업인개발과제는 왜 사라졌을까
  • 장상록
  • 승인 2019.06.30 13:26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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농촌지도사가 돼 처음 맡았던 업무 중 하나가 [농업인개발과제]였다. 사업 취지는 농업인이 영농현장에서 겪는 애로사항을 현장에 맞게 해결하고 실용적인 기술개발사업에 참여시킴으로써 농업인에 대한 적절한 지원은 물론 크게는 농업경쟁력을 높이고자 하는 데 있었다. 개별 사업비는 최고 1억 원 이었던 한 해를 제외하고 보통은 3천만 원이었다. 그런데 이 사업은 여타 보조사업과 달리 전액 국비가 지원됐다.

  어떤 형태의 보조금도 국민 혈세다. 그런 만큼 심사도 정당한 절차에 따라 공정하게 이뤄져야 한다.

 사업은 농업기술센터에서 접수해 심사한 후 도농업기술원을 거쳐 최종 결정은 농촌진흥청에서 한다.

  선정된 사업은 협약 체결 후 1~2년간 농업기술센터와 합동연구팀을 구성해 진행하게 된다. 완료한 사업은 평가 및 일정기간 후속 관리를 통해 사업의 적정성에 대한 지속적인 모니터링과 해당 기술보급 전파를 통해 한국 농업발전에 기여하게 된다.

  개인 의견을 말한다면 그 사업은 농업인의 자조는 물론 한국농업발전을 위해서도 소중한 역할을 수행했다. 현장에서 경험한 해당 농업인들 대부분은 사업 취지에 맞게 국민 혈세를 소중히 사용했다.

  그런 분들을 볼 때면 업무담당자로서 보람도 느낄 수 있었다. 그런데 이 사업은 왜 사라졌을까.

  정책결정과정에 대해서 내가 할 수 있는 얘기는 없다. 오랜 기간 진행되면서 관련 된 기술적 수요가 없어서일 수도 있고 또 다른 이유일 수 도 있다. 다만, 현장에서 느낀 소회가 있다.

  빛의 저편에 있는 어둠의 그림자다.

  관련 한 기억 하나다. 어떤 이가 나를 찾아와 농업인개발과제 사업계획서를 내밀었다. 관련 공문도 도착하기 전이었다. 담당자도 모르는 일정을 들이대며 자신이 써온 사업계획서를 접수하라는 그에게 상황을 설명했다. 그런데 정말 놀랐던 것은 그가 작성해온 사업계획서였다. 구체성도, 알맹이도 없는 그 서류는 국민 혈세를 받겠다는 것 말고는 공허한 울림으로 가득했다. 물론 모든 사업계획서가 완벽할 수는 없다. 때로는 아이디어 단계에 불과한 것 중에도 귀 기울일만한 충분한 가치가 있는 것도 있고 불완전한 사업계획서를 보완하는데 관계 공무원의 도움을 받을 수도 있다. 하지만 그것은 농업인 자신의 진정성과 열의가 전제되었을 때 가능한 일이다. 그가 내민 사업계획서는 최종 단계인 농촌진흥청 심사과정까지 갔다.

  사업 확정 후 농촌진흥청에서 공문이 왔다. 그가 내밀었던 사업은 탈락했다. 그리고 공문엔 그 사업이 왜 선정되지 못했는지에 대한 설명도 있었다. 그 설명은 담당자인 내 판단과 조금도 다르지 않은 내용이었다.

  나는 내 판단이 옳았다거나 농촌진흥청의 심사가 무오류의 절대성을 가지고 있다는 말을 하고 싶지 않다. 중요한 것은 판단에 이르기까지의 과정에 대한 이해 당사자의 태도에 있다.

  국민 혈세를 지원하는데 따른 정당하고 공정한 절차를 훼손하려는 행위가 그것이다. 그런 행위는 사업의 적절성 유무를 떠나 그 자체로 사업의 존폐 문제를 가져오게 하는 요인이 된다.

 인조(仁祖) 21년 4월 22일자 <승정원일기>에서 김익희는 왕에게 이렇게 말한다. “청탁은 오늘날 하나의 큰 고질적인 병폐인데, 나라가 이 지경이 된 데에는 이것이 또한 한 가지 요인이 됩니다. 대신은 백관의 모범이므로 자신이 먼저 이를 범해서는 안 됩니다. 형조도 본부에 말하지 않고 금령을 범한 사람을 곧장 석방해서는 안 됩니다. (중략) 이는 모두 신처럼 나약하고 형편없는 자가 외람되이 법관의 자리를 차지하여, 풍속과 기강을 진작시키지 못하고 사사로운 인정을 억제하고 끊지 못한 소치입니다.(하략)”

  김익희는 왕에게 사임을 청한다.

  국민 혈세가 올바르게 사용되지 않는다면 그 어떤 사업도 사라져야 한다. 다만 그 소멸이 국민혈세를 받기위한 부정한 청탁과 압력으로 인한 것이라면 그 당사자의 책임은 너무도 크다.

  농업은 인류가 생존하는 한 버릴 수 없는 생명산업이다. 그것을 지켜내기 위한 국가의 노력은 지속돼야 한다. 이것은 농촌진흥청의 정책결정과정과는 무관한 내 개인적 견해임을 밝힌다.

 장상록<예산군농업기술센터 농촌지도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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