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 <국군은 죽어서 말한다>를 듣는 불편함
시 <국군은 죽어서 말한다>를 듣는 불편함
  • 송산 송일섭
  • 승인 2019.06.27 15:1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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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올해가 6.25 전쟁 69주년이 되는 해다. 올해도 6울 25일에는 전국 곳곳에 있는 충혼탑 앞에서 옷깃을 여미며 애국선열들을 추도하는 행사를 가졌다. 학생과 시민, 국가유공자와 그 가족들이 모여 그날의 아픔과 교훈을 되새겼다.

 그래서 해마다 유월이 오면 정부와 지방자치단체에서는 정성껏 추념 행사를 마련한다. 시장 군수의 추념사에 이은 헌화, 그리고 만세삼창으로 새로운 결의를 다지며 행사를 마무리한다. 그런데 최근에는 특별한 순서로 시낭송이 추가되기도 한다.

 특히 6.25 전쟁 기념식에는 모윤숙의 시 <국군은 죽어서 말한다>가 단골로 낭송되기도 한다. 서사가 뚜렷하고 전쟁의 비극성이 잘 잘 드러난 까닭에 널리 선호하는 시다. 며칠 전에도 어느 행사장에 갔는데 이 시가 공연되고 있었다. 필자는 해마다 이런 장면을 접하면서 마음이 불편했다. 대표적인 친일파 시인의 시가, 그것도 국가와 민족을 위해서 싸우다 돌아가신 애국선열들을 위무하는 시로 읽히고 있다는 사실이 마음에 걸렸기 때문이다.

 그렇다고 <국군은 죽어서 말한다>라는 시에는 단 한구석이라도 친일적이거나 시인의 과거의 삶이 드러나지 않는다. 어쩌면 전쟁터에서 아들을 잃은 어머니의 마음이 드러나고, 그것을 바라보는 동포로서의 연민과 안타까움이 넘쳐난다. 그래서 이 시가 나온 이후 여태껏 수많은 학생과 독자들이 그 시를 애송하였는지도 모른다. 6.25 때 광주 산곡을 헤매다가 쓰러져 속절없이 죽어가는 국군 소위를 안타까운 눈길로 바라보면서, 그 속에 담긴 전쟁의 참혹함, 그리고 국가와 민족을 위해서 싸웠던 애국충절을 고스란히 담아내고 있다.

 내게는 어머니 아버지 귀여운 동생들도 있노라어여삐 사랑하는 소녀도 있었노라내 청춘은 봉오리지어 가까운 내 사람들과이 땅에 피어 살고 싶었나니아름다운 저 하늘에 무수히 날으는내 나라의 새들과 함께자라고 노래하고 싶었노라그래서 더 용감히 싸웠노라 그러다가 죽었노라

 출처 모윤숙의 시 ‘군국은 죽어서 말한다’의 일부

 그러나 이런 시를 읽으면서 필자는 생뚱맞게도 또 하나의 엉뚱한 시를 곧잘 떠올리곤 한다. 그래서 어느 날인가는 동석한 다른 시인에게 ‘모윤숙 시인이 이 시를 쓰면서 가슴 저리도록 아픈 마음으로 썼을까요?’ 라고 물은 적이 있다. 그 시인께서는 아픔과 안타까움으로 밤을 새면서 썼을 것이라고 하였지만, 필자는 ‘그냥 현란한 언사와 기교로만 쓴 것’ 아닐까 하는 생각에서 시종 벗어나지 못했다. 왜냐하면 그의 친일시 <지원병에게>라는 시가 떠올랐기 때문이다. 다음 시는 모윤숙의 <지원병에게>라는 시다.

 눈은 하늘을 쏘고 그 가슴은 탄환을 물리쳐 / 대동양의 큰 이상 두 팔 안에 꽉 품고 /달리여 큰 숨 뿜는 정의의 용사 / 그대들은 이 의 광명입니다 대화혼(大和魂) 억센 앞날 영겁으로 빛내일/ 그대들 이 나라의 앞잽이 길손 /피와 살 아낌없이 내어바칠 반도의 남아 /희망의 화관입니다

 출처 : 모윤숙의 친일시 ‘지원병에게’의 일부

 이 시의 내용은 이 나라의 젊은이들에게 대화혼(일본의 동족중심의 광기 같은 집단의식)으로 무장하여 당당하게 전쟁터로 나가라는 것이다. 일본의 황국시민으로 세상을 빛나게 하고, 희망과 화관이 되어라고 권유하고 있지 않은가. 모윤숙의 친일시들 대부분이 해방을 얼마 남겨두지 않은 시점에 씌었다고 한다. 미당 서정주의 이야기처럼 일제치하가 오래 갈 것이라고 믿었을지도 모른다.

 사실 모윤숙이가 친일파로 알려지기까지에는 많은 시간이 걸렸다. 해방 후에도 친일파가 실권을 장악하는 모순된 역사 때문이다. 1980년 대 친일문학이 언급되면서 이런 작품들이 세상에 알려지기 시작했고, 이를 본 많은 독자들은 실망감에서 벗어나지 못했다. 시인은 시대의 아픔을 외면하지 않을 때 좋은 시를 쓸 수 있다고 한다. 시대와 영합하면서 쓴 시가 과연 진실한 의미가 담겨 있을까. 그런 의미에서 이육사, 신석정 같은 시인들의 매운 시 정신은 오늘날에도 높이 평가된다.

 그러나 모윤숙 시인은 시대에 대한 고민이 없었던 것 같다. 양지로만 쫓아다니면서 시를 쓴 것 같다. 일제 강점기에는 친일파 시인으로, 이승만 독재 시대에는 권력과 야합했다. 혹자는 시만 볼 것이지, 왜 시 너머의 시인까지 기웃거리느냐며 나무랄지도 모르겠다. 시에는 시인의 사상과 철학, 그리고 삶에 대한 일관성이 담겨 있을 때 우리는 그 시를 좋은 시라고 한다. 그래서 우리는 시 너머에 있는 시인의 삶과 철학을 주목하는지도 모르겠다. 그런 의미에서 <국군은 죽어서 말한다>라는 시는 참전 용사들의 헌신을 위무하는 시로 읽기에는 아쉬움이 있는 것 아닐까. 언제까지 친일파의 사탕발림 같은 시들을 명시라고 손에 쥐고 있어야 할까.

 

송산 송일섭 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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