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애인 활동지원, ‘생애주기별 맞춤형 복지’인가
장애인 활동지원, ‘생애주기별 맞춤형 복지’인가
  • 최낙관
  • 승인 2019.06.26 16: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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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아마도 복지에 대해 이야기할 때, 가장 많이 회자하는 금석문 중 하나는 “요람에서 무덤까지”가 아닌가 싶다. 보편적 복지의 상징인 “요람에서 무덤까지”는 영국 사회보장의 근간을 이루었던 「베버리지 보고서」로 거슬러 올라간다. 당시 「베버리지 보고서」가 천명했던 복지철학과 이념은 오늘날 복지국가의 출발점으로 작용하며 복지를 ‘시혜’에서 ‘권리’로 이행시키는데 절대적인 역할을 했다. 우리나라도 경제성장과 함께 복지의 지평을 넓혀가며 복지국가의 면모를 갖춰나가고 있다. 대한민국 헌법 34조에 “국가는 사회보장, 사회복지 증진에 노력할 의무를 가진다”고 명시하며 국가의 복지에 대한 책임성(accountability)을 천명하고 있다. 지금은 국가가 모든 국민에게 출생부터 전 생애 동안 단계별로 복지급여와 서비스를 맞춤형으로 지원하는 ‘생애주기별 맞춤형 복지’로 패러다임이 재편되고 있다.

 복지제도가 진화하면서, 한편으로 사회경제적 약자들의 기대감이 상승하고 있는 것 또한 사실이지만, 또 다른 한편으로 이를 뒷받침하는 제도들의 허점들이 노출되며 ‘기대감’이 ‘상실감’으로 추락하는 안타까운 일들이 터져 나오고 있다. 예컨대 다음달 7월부터 시행되는 장애인 등급제가 폐지된다. 즉 장애인은 장애의 정도에 따라 ‘장애의 정도가 심한 장애인’(종전 1~3급)과 ‘장애의 정도가 심하지 않은 장애인’(종전 4~6급)으로 구분된다. 그런데 제도변화를 앞두고 활동지원서비스를 둘러싼 불협화음들이 곳곳에서 감지되고 있다. 왜냐하면 이른바 새로운 ‘활동지원서비스 종합조사표’에 의거한 수급자격과 급여량이 하향 조정될 가능성이 크기 때문이다. 인천의 한 장애인 센터가 모의 평가를 실시한 결과, 혼자서 자리 이동조차 어려운 독거장애인의 경우 현재 441시간에서 208시간으로 무려 233시간이 대폭 삭감되는 것으로 조사돼 복지부가 제시한 평균 7.14시간의 활동지원시간의 증가와는 현격한 대조를 이루고 있다. 이뿐만이 아니다. 장애인활동지원제도 자체의 결함으로 인한 문제도 심각하다. 하루 장시간 활동지원 서비스를 받아야 하는 장애인들이 65세가 되면 자연스럽게 하루 최대 4시간만 지원되는 노인장기요양서비스로 편입되면서 전국적으로 약 30만명의 중증장애인들이 돌봄 사각지대에서 힘겨운 사투를 벌이고 있기 때문이다. 이미 2016년 12월 국가인권위원회가 만 65세 이후에도 중증장애인들이 노인장기요양과 활동지원서비스 중 필요한 것을 선택할 수 있도록 관련 규정을 개정하라고 보건복지부에 권고한 바 있었지만, 보건복지부는 서비스 선택권과 연령제한 폐지를 재원마련 등 여러 이유를 들어 받아들이지 않았던 결과로 볼 수 있다.

 이러한 상황은 2019년 현재 약 3천명의 장애인활동지원 수급자가 있는 전라북도에서도 예외가 아니다. 이미 지난 4월 1일 전북도 최영심의원과 장애인단체가 기자회견을 열어 65세 이상 중증장애인의 노인장기요양서비스로의 의무 전환과 지원 축소 그리고 활동지원 서비스 산정 시 장애인 본인 외에 부양의무자의 소득까지 고려하도록 하는 제도적 불합리를 지적한 바 있다. 정부가 주장하는 생애주기별 맞춤형 서비스가 다양한 특성을 가진 장애인들의 욕구와 눈높이를 충족시키지 못하면서 오히려 복지의 후퇴를 걱정하는 역설적 상황이 연출되고 있는 것이다. 이제는 문제해결을 위해 지방정부 차원의 적극적인 개입이 필요한 때이다. 전환기에 겪는 자연스런 시행착오라는 인식을 넘어 문제 당사자의 입장에서 제도를 제도답게 만드는 노력을 해야만 하는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다.

 최낙관<예원예술대학교 사회복지대학원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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