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안 내 고향 마을에서 구슬을 생산했을까?
진안 내 고향 마을에서 구슬을 생산했을까?
  • 김재춘 기자
  • 승인 2019.06.26 15:55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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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향 마을 이름에 대한 오랜 의문에 단서가 만들어지다  
전북 진안에서 고려청자 가마터가 발굴되다

내 고향은 전북 진안이다. 더 구체적으로 말하자면, 전라북도 진안군 도통리 산주 마을이다. 이제까지 ‘진안’ 하면 대개 ‘무진장’(무주, 진안, 장수의 줄임말)이나 ‘마이산’ 혹은 ‘아토피 치료에 좋은 귀농지역’으로만 알려져 왔다.

  그런데 엇그제 내 고향과 관련하여 귀가 번쩍 뜨이는 뉴스가 나왔다. 바로 그곳 진안군 도통리 중평 마을에서 10~11세기 초기 청자를 생산하던 가마터인 고려청자 요지(窯址)가 발굴되었다는 뉴스였다. 호남 최대 규모의 가마터라 한다.

  중평 마을은 바로 내가 태어난 마을 바로 윗동네이다. 정월 대보름이 되면 양쪽 마을 청년들이 마을 경계까지 진출해 일종의 세 대결을 벌이곤 했었다. 생각해보니, 초등학교 다닐 적 그곳에는 유독 진흙이 많아 진흙놀이도 많이 했었다.

내 고향 마을 이름에 대한 풀리지 않던 작은 의문 

  내가 태어난 마을의 이름은 ‘산주’였다. 그곳에서 초등학교까지 다녔다. 그러니 나의 어린 시절 추억은 모두 그곳을 배경으로 한다.

  그런데 그곳에 살던 어릴 적부터 고향을 떠난 지금까지 줄곧 나를 떠나지 않는 한 가지 작은 의문이 있었다. 바로 ‘산주’라는 마을의 이름이었다. 왜 그런 특이한 이름이 붙여졌을까? 이제껏 아무리 생각해봐도 도무지 분명한 답을 얻을 수 없었다.

  ‘산주’라는 마을 명칭에 대해 이제까지 마을에서 전해 내려온 얘기는 ‘散珠’, 즉 “구슬이 흩어졌다”는 뜻으로 마을에 있는 집들이 마치 구슬이 흩어진 모양으로 이뤄졌다는 풀이였다. 물론 그곳 동네 집들의 모습은 흩어져 있기는 했다. 그렇지만 아무래도 뭔가 부족했다.

  내 고향 ‘산주’가 구슬을 생산하던 ‘강주소’ 마을이 아닐까? 

  그런데 이번에 이런 나의 오랜 의문에 중요한 단서가 발견되었다.

  바로 중평 마을에서 고려청자 가마터가 발굴되었다는 이번 기사 중 가마터 부근에는 ‘강주소(岡珠所)’라는 특수행정구역이 설치되었을 것으로 추정된다는 내용이 소개된 것이다. 고려시대에 진안에 설치했다는 특수행정구역인 ‘강주소’의 위치가 가마터가 발굴된 중평 마을 인근 지역으로 추정된다는 기사 내용이었다.

  ‘강주소’란 향, 소, 부곡과 같이 농사에 종사하면서 국가에 특수 공납품을 생산하는 마을을 의미하는데, 진안에 두었다는 강주소의 치소 위치는 아직도 확인되지 않고 있다고 했다.

  그런데 나의 생각으로는 ‘산주’ 마을이 바로 그곳이 아닌가라는 확신이 든다. 우선 중평 마을 인근에 ‘강주소’가 두어졌다고 추정되는 가운데, 산주 마을이 중평 마을 바로 옆 동네이고, 더구나 ‘강주소’의 ‘주(珠)’와 ‘산주’의 ‘주(珠)’가 동일하게 ‘구슬’ 혹은 ‘보물’ ‘주(珠)’ 자로 일치하고 있다.

  또 그곳에서 어려서부터 내가 듣고 자란 얘기는 “진안에는 양반의 사돈의 팔촌도 없다”는 우스갯소리 아닌 우스갯소리를 적지 않게 듣곤 했다. ‘강주소’가 속하는 향, 소, 부곡이라는 특수 행정구역은 바로 하층민들의 집단 거주지였다. 서로 맥이 통하는 얘기들이다.

  혹시 ‘산주’라는 마을 이름은 “구슬을 생산한다”는 의미의 ‘産珠’는 아닐까 생각도 해본다. 아니면 ‘강(岡)’이라는 한자의 뜻이 ‘산등성이’, ‘산언덕’ 등 ‘산’을 가리키는 의미로서 사람들에게 생경스러운 ‘강’이란 말 대신 발음과 이미지가 쉬운 ‘산’으로 바꿔 불렀을 가능성도 적지 않다. 

 현재 관계당국은 아직 확인되지 않은 ‘강주소’의 치소 위치를 계속 찾아 나설 계획으로 알려지고 있는데, 그 ‘강주소’가 있었던 곳으로 ‘산주’ 마을을 강력히 추천하고자 한다.

 소준섭 / 국회도서관 조사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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