물질만능주의와 무재칠시(無財七施)
물질만능주의와 무재칠시(無財七施)
  • 안도
  • 승인 2019.06.25 16: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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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어떤 사람이 석가모니를 찾아가 물었다. “저는 하는 일마다 제대로 되는 일이 없으니 무슨 이유입니까?” 하자 석가가 말했다. “그것은 네가 남에게 베풀지 않았기 때문이니라.” 그러자 그는 “저는 아무것도 가진 것이 없는 빈털터리입니다. 남에게 줄 것이 있는데 무엇을 준단 말입니까?” 하자. 석가는 “그렇지 않느니라. 아무 재산이 없더라도 줄 수 있는 일곱 가지는 있는 것이다”고 하시는 말씀이 있다, 이것을 무재칠시(無財七施)라 일컫는데 요약하면 다음과 같다.

  첫째가 안시(眼施)다. 이는 부드럽고 편안한 눈빛으로 사람을 대하는 것을 말한다. 요즘처럼 서로가 서로를 이기고 극복해야 할 경쟁 사회에서는 사람들이 만나면 서로 첫눈에 강한 눈빛으로 상대를 제압하고자 날카롭게 반짝이는 눈빛으로 상대를 대한다. 이런 눈빛은 사람들에게 경쟁심을 불러일으키고 불신을 심어주며 마음을 불안하게 한다. 그럴 때 부드럽고 편안한 눈빛으로 사람들을 대하는 것만으로도 충분한 보시가 되는 것이다.

  둘째는 화안시(和顔施)다. 자비롭고 미소 띤 얼굴로 사람을 대하는 것을 말한다. 이것도 안시와 비슷한 개념이다. 외국 사람들이 우리나라 사람들을 보고 흔히 늘 싸우는 표정이라고 한다. 성난 표정과 무심한 표정은 사회를 삭막하게 하고 긴장감을 조성한다. 하지만 얼굴에 화기애애하고 기쁨으로 미소를 머금은 표정만으로도 주위의 많은 사람에게 기쁨을 안겨주는 소중한 보시가 된다.

  셋째는 언시(言施)다. 공손하고 아름다운 말로 사람들을 대하는 것을 말한다. 말 한마디로 천 냥 빚을 갚는다는 속담도 있다. 그런데 일상생활에서는 물론이거니와 인터넷 대화방 같은 곳에 들어가 보면 정말 눈뜨고 못 볼 수 없을 지경으로 험악한 말이나 가시 돋친 말을 너무 쉽게 한다. 이는 자칫 상대방과 언쟁을 일으키고 분쟁에 휘말리게 한다. 그러므로 부드럽고 친절하며 예의바른 말 한마디는 자신의 인격을 나타낼 뿐만 아니라 그를 대하는 사람에게는 따뜻한 보시가 되는 것이다.

  넷째는 신시(身施)이다. 예의 바르고 친절하게 사람들을 대하는 것이다. 사람을 만나면 공손한 자세로 반갑게 인사할 줄 알고, 몸으로 남을 돕는 행위들이 바로 몸으로 베푸는 보시다. 이러한 몸가짐은 주위의 많은 사람에게 훈훈한 마음을 안겨주는 보시다.

  다섯째가 심시(心施)다. 착하고 어진 마음을 가지고 사람을 대하는 것이다. 이것은 우리의 마음으로 이웃들에게 베푸는 보시에 해당한다. 늘 따뜻하고 자비로운 마음으로 상대를 대한다면 우리 사회는 한결 아름다운 사회가 될 것이다. 이렇게 마음을 착하게 가지고 사람을 대하는 것도 하나의 소중한 보시다.

  여섯째는 좌시 (座施)이다. 이는 다른 사람에게 자리를 양보하는 것을 말한다. 이것은 요즘 같은 때 얼마나 필요한지 모른다. 전철을 타거나 버스를 탔을 때 젊은이들이 노약자들에게 자리를 양보하지 않고 눈을 감고 자는 척하는 광경을 자주 본다. 하지만 노약자에게 또는 지치고 힘든 사람에게 자리 하나를 양보하는 것도 참으로 아름다운 보시임을 잊어서는 안 될 것이다.

  일곱째는 찰시(察施)는 속마음을 헤아리는 것이라고 할 수 있다. 우리가 직장에서 상사나 부하직원의 속마음을 잘 헤아려서 불편함이 없도록 해 준다면 ”매우 유능하다는 말“을 들을 수 있을 것이다. 그러기 위해서는 상대에 대하여 꾸준히 관심을 둬야 하고 그가 의도하는 바가 무엇인지도 잘 파악하고 있어야 한다.

  필자는 평소 부처님의 말씀이니 당연히 사리에 어긋나는 말씀은 없겠지만 ‘무재칠시’를 우리의 일상에서 조금만 관심을 두고 실천한다면 우선 이웃 간에 다툼이 없어지리라 생각해 왔다. ‘물질만능주의’는 세상의 모든 것을 돈으로 가질 수 있다는 사상이다. 더불어 ‘부익부 빈익빈’도 어느 정도 물질만능주의에 한몫한다고 말할 수 있다.

  이런 사회의 시점에서 우리가 진정으로 사회에 봉사한다면, 그리고 이웃을 위해 배려하는 마음이 있다면 이웃 간에 다툼이 필요 없는 것이다. 가진 것이 없어도 일곱 가지를 베풀 수 있다는 부처님의 말씀을 불화와 갈등이 심각한 재개발, 재건축 등 주거환경정비사업 현장에서도 되새겨 볼 필요가 있다. 속세에 묻혀 살아가는 우리가 항상 자비심을 갖고 상대를 이해하는 마음을 가졌으면 한다. 요즘처럼 물질적으로 풍요한 사회에서는 이같이 무재칠시가 오히려 더 의미있는 보시가 될 수도 있다는 생각이 든다.

 안도<전북국어진흥위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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