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사고, 그 참을 수 없는 존재의 껄끄러움
자사고, 그 참을 수 없는 존재의 껄끄러움
  • 이흥래
  • 승인 2019.06.24 16:56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기어코 우려됐던 사달이 터지고 말았다. 전북교육청이 며칠 전 전주상산고에 대한 자사고 지정취소를 결정하면서 예견됐던 일이지만 파문이 너무 크다. 급기야는 김승환 교육감 취임이후 묻혔던 전북교육의 여러 문제가 자꾸 들춰지는 양상이다. 당장 한 사립고의 위상을 둘러싼 이번 결정을 둘러싸고 학부모는 물론 일반 국민까지도 수월성 교육과 평준화 교육의 장단을 논하는 등 모처럼 온 나라가 교육문제로 들썩이고 있다. 그런데 더 걱정스러운 것은 여야 정치권이 이번 결정에 일제히 불편한 기색을 보이자, 결정의 당사자인 김교육감은 압력이 가해지면 낱낱이 공개하겠다는 협박성으로 맞서고 있어, 이러다 전북교육이 궤멸하는 게 아니냐는 우려가 커지고 있다. 차제에 이런 평준화 교육의 진정한 기수를 교육부 장관에 추천하자는 얘기도 나오는 모양이다.

 오랫동안 교육현장을 취재한 바 있지만, 교육의 본질을 말하기엔 모든 게 천박할 뿐이다. 그렇지만, 고대 희랍이나 춘추시대부터 오늘에 이르기까지, 모든 교육에는 왕도가 없는 듯하다. 최근에는 수월성 교육이니 평준화를 높고 말들이 많지만, 무엇이 좋다, 그르다를 단정 지을 수는 없는 게 현실이다. 다만 누구에게든 교육의 기회를 평등하게 줘야 하고, 자신의 원하는 수준의 교육을 받을 수 있어야 한다는 데에는 이견이 없는 듯하다. 혹자는 전북교육청의 이번 결정이 전북의 높은 교육수준을 보여주려는 교육감의 원려심모가 아니냐는 너스레를 떨기도 한다. 적어도 전북에서는 그 정도 점수를 받아야 한다는, 교육감의 간절한 소망이 드러났다는 투다. 하지만 상산고나 교육청이 일찍부터 사회통합전형을 둘러싼 공방을 벌여온 것을 보면, 양측의 입장은 한 치도 물러설 수 없는 실정이다. 오히려 상산고는 경륜도 없이 교육권력 좀 쥐었다고 마음대로 칼 휘두르려는 행태를 참을 수 없었던 모양이고, 교육청은 돈 좀 벌었다고 육영이라는 이름 아래 교육공권력을 무시하는 옹고집에게 본때를 보이겠다는 심산은 아니었을까.

 전북교육청의 이번 결정으로 상산고가 당장 자사고의 위치를 잃는 건 아니다. 앞으로 교육부의 청문절차를 마친다 하더라도, 불리하다고 느낀 쪽이 소송을 제기하면 대법원까지 가는 기나긴 공방이 벌어질 수도 있다. 그렇다면 이같은 양측의 첨예한 공방을 통해 전북교육이 얻는 것은 무엇일까. 앞으로 상산고가 자사고의 위치를 유지한다 하더라도 이미 상산고는 치명적인 상처를 입은 상태다. 아무리 교사들이 열정적으로 가르친다 하더라도 늘 시비가 붙을 수 있는 불안정한 미래 때문에 지금과 같은 위치로의 환원은 사실상 어려울 듯하다. 전북교육청 역시 자신의 논리가 배척당한다면 신뢰성을 잃은 교육공권력의 무모한 횡포라는 지적이 일 것은 자명한 사실이고 교육감의 지위마저도 온전하지 못할 수도 있다. 도대체 누구를 위한, 무엇을 위한 이 난리란 말인가.

 교육감은 자사고로 말미암은 고교 서열화와 이에 따른 입시과열을 이번 결정의 이유로 강조하는 듯하다. 하지만, 상산고를 일반고로 전환시킨다 해도 이미 무너질대로 무너진 공교육이 제자리를 찾을 수 있을까. 과거에도 많은 명문학교가 있었지만, 사교육이 심각했던 상황은 아니었다. 사교육의 급격한 팽창은 70년대 이후 베이비부머 세대의 출산율이 부쩍 높아진데 따른 경쟁심화가 가장 주된 이유였다. 또한 IMF나 외환위기를 겪으면서 많은 부모들은 혈연이나 학연중 한가지쯤은 챙겨줘야 자식들이 그나마 살 수 있을 것이라는 사실을 알게 됐던 것이다. 사교육이 이처럼 심화한 근본 원인을 제쳐놓고 잘 나가는 학교 몇 개 없애면 대한민국이 입시과열 없는 즐거운 교육환경을 갖출 수 있을까. 요즘에는 교육전문가들도 손흥민과 BTS를 예로 들어 입시위주의 획일화된 공교육은 필요치 않다고 말하고 있다. 하지만 그런 사례가 도대체 몇 명이나 되겠는가. 우리가 오늘날 이 정도의 사회를 유지하게까지는 주린 배를 움켜쥐고 주경야독했던 장삼이사들의 학구열을 잊어서는 안된다. 그런데도 일부의 편협한 시선으로 교육정책이 이뤄지게 된다면 사교육 폐해를 이유로 사교육 금지조치를 내렸던 전두환보다 못한 그야말로 바보같은 정책이 아닐 수 없다. 더구나 풍선효과라는 말처럼 상산고와 같은 대안이 사라진다 해도 공부 잘하는 아이들은 또 다른 우수학교로 향할 수 있다. 그렇다면 그때는 또 폐쇄라는 무지막지한 결정을 또 들이댈 것인가. 그러나 더 나아가 자사고 때문에 우리 학교가, 우리가 피해를 본다는, 그런 무리가 늘 느껴온 자사고, 그 존재의 껄끄러움에 밀려 이런 결정을 내렸다면 우리 전북교육은 얼마나 불쌍한가.

 이흥래<前 언론인>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