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연과 전통의 조화, 다르즐링 홍차
자연과 전통의 조화, 다르즐링 홍차
  • 이창숙
  • 승인 2019.06.23 16:24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이창숙 칼럼 ‘차의 맛, 소통의 맛’ <54>
인도 다르질링. 표고 2000미터에 위치한 다원(茶園)

 우리가 어떤 것을 규정(規定)한다는 것, 특히 수치로 분류한다는 것은 편리함과 이해를 돕기 위해 시작됐을 것이다. 20년 전 만해도 차를 우릴 때 찻잎의 양을 그램(g)보다는 적당량이라 표현했다. 덜 전문적으로 보일지 몰라도 우리의 감각만큼 최고의 경지는 없을 것이다. 이렇듯 차를 마시거나 직접 사람의 손으로 만드는 경우 일정화 하기란 참으로 어렵다.

 차는 찻잎의 산화와 발효 정도에 따라 분류가 다양하다. 산화의 정도에 따라 명칭을 분류하지만 만드는 공정의 경계선을 명확히 구분하기가 어렵다. 단지 서로가 교집합이 있을 뿐이다.

 그 예로 다르질링(Darjeeling) 퍼스트 플러시(First Flush, 첫차)는 대략 35% 정도의 산화만을 진행한다. 어느 정도 산화가 진행된 뒤 건조에 들어가기 때문에 가공법은 홍차와 같다.

 약 산화이지만 다르질링 퍼스트 플러시는 홍차로 분류한다. 어찌 되었든 차를 즐기고 싶다면 수치보다는 미감(味感)을 살려 감각을 익히는 것이 좋다.

  다르즐링은 인도의 북동부에 위치한 고산 휴양지로 유명하다. 이곳 다원(茶園)들은 대부분 500~2200 미터 사이의 고도에 자리하고 있다. 히말라야 산기슭으로 경사도가 높으며 모래가 많은 토양으로 배수가 잘된다. 토양 또한 차나무재배에 중요한 약산성을 유지하고 있다. 다원의 생산성을 높이기 위해 새로운 차나무는 씨앗으로 심지 않고 꺾꽂이를 통해 복제 종(clonal varieties) 차나무를 대량으로 번식시켜 심었다. 60~70도에 이르는 급경사로 인해 차나무재배에서 찻잎 채취가 힘든 곳이다. 고지대일수록 중국종의 차나무를 심고, 고도가 낮은 곳에서는 생산량을 많이 낼 수 있는 아삼 종을 심었다. 강우량도 지역마다 차이가 있지만 충분한 양의 물이 공급된다. 여름철 평균기온은 25도, 겨울에는 8도 정도이다.

  차나무는 추운 겨울 11월 하순부터 3월 초까지 동면시간에 들어간다. 수정처럼 맑고 시원한 공기와 더불어 2월 말에서 3월 초에 싹이 나온다. 회녹색의 연약하고 가녀린 새순이다. 이 찻잎으로 만든 차가 다르질링 퍼스트 플러시이다. 꽃향기와 입안에 감도는 부드러운 맛이 특징이다. 변덕스러운 날씨와 높은 산마루와 계곡 등으로 인해 계절별로 수확되는 차의 맛과 향기가 각기 다른 특징을 지닌다. 찻잎에 농축된 다양한 성분들이 위조(萎凋, 시들기)와 산화 과정을 거치면서 특유한 맛과 향기를 낸다.

  4월 말에서 5월에 채취하는 찻잎은 세컨드 플러시(Second Flush, 두 번째 차)이다. 첫차에 비해 풋풋함은 사라지지만 익은 과일 향을 낸다. 일반적으로 머스캣 포도향이 난다고 한다. 차를 우린 수색도 적색에 가깝다. 의심의 여지가 없는 홍차이며 지속되는 뒷맛을 자랑한다. 6월 초에서 10월 초까지 이어지는 차는 더운 날씨와 많은 강수량 때문에 맛과 향기에서 섬세함이 덜하다. 티백 제품의 원료나 블렌딩에 주로 쓰인다.

  채취된 신선한 찻잎은 24시간 이내에 차로 완성해야 한다. 완성된 차는 상자에 담는다. 대략 5~10상자 단위로 묶어 경매에 들어간다. 채취 시기별로 차 전문가와 감식자들에 의해 진가를 인정받으면 가격이 결정되고 상인들에 의해 소매점으로 유통된다. 다르질링 홍차는 다원 이름, 수확기, 식별번호까지 구분된다. 미각이 뛰어난 소비자들을 위해 더욱 세밀하게 구분한다. 맛과 향기는 차나무의 종류, 습도, 일조량 등 다양한 요소들의 영향을 받으며 계절은 물론 한 주 한 주, 하루하루 달라지기 때문이다.

  퍼스트 플러시는 녹차처럼 가볍지만 녹차와는 다른 은은한 꽃향을 지닌다. 이렇게 섬세한 차는 맛과 향기가 쉽게 사라지기 때문에 장기간 보관하기보다는 가을이 오기 전에 마시는 것이 좋다. 홍차이지만 찻잎의 외형은 신선하다. 여러 번 우려 마시며 물을 끓인 후 10도 정도 식힌 후 우려야 부드러운 차 맛을 즐길 수 있다.

  다르질링에는 약 90군데의 다원이 있다. 그들만의 독특한 스타일로 다양한 맛을 지속적으로 드러낸다. 노하우와 전통은 일정하게 규격화되는 상품과는 비교할 수 없는 자부심을 지닌 차가 되었고 애호가들에게 고가에 팔리고 있다.

 

 / 글 = 이창숙 원광대학교 초빙교수

 

 ※이창숙 칼럼 ‘차의 맛, 소통의 맛’은 격주 월요일자를 통해 만나실 수 있습니다.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