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진섭 정읍시장 “약무정읍(若無井邑) 시무실록(是無實錄)”
유진섭 정읍시장 “약무정읍(若無井邑) 시무실록(是無實錄)”
  • 강민철 기자
  • 승인 2019.06.19 17:02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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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진섭 정읍시장 특별기획 인터뷰

 오는 22일은 문화재 지킴이의 날이다. 올해로 두 번째를 맞는 이번 행사는 정읍 내장산에서 열린다. 전국 행사인 문화재 지킴이날이 정읍에서 열리는 것은 임진왜란 당시 정읍에서 조선왕조실록을 지킨데 따른 것이다. 본보는 18일 문화재 지킴이의날을 앞두고 유진섭 정읍시장에게 문화재 지킴이의 날에 대한 의미와 조선왕조실록을 지켜 낸 정읍정신 등에 들어봤다.<편집자 주>  

 -문화재청이 주최하는 올해 ‘문화재지킴이의 날’의 행사를 정읍시에서 연다고 들었다. 이에 대한 소회는?

 ▲잘 아시는 것처럼 6월 22일 문화재지킴이의 날은 지난해 처음 제정됐다. 이 날은 임진왜란 당시인 1592년 6월 22일(음력) 전주사고의 조선왕조실록을 정읍 내장산으로 옮긴 것을 기념해 만들어졌다.

 첫 번째 기념식이 역사적인 현장인 정읍, 특히 내장산에서 열리게 되어 참으로 감회가 새롭다. 전국의 문화재 지킴이 단체 대표 1천여 명이 참여하고 정읍시립농악단의 식전 공연을 시작으로 ‘실록 이안 재현’ 연극과 문화재 지킴이의 날 기념식 등이 펼쳐진다. 특히 정읍 사람들이 ‘조선왕조실록’과 ‘태조 어진’을 지켜낸 장소인 내장산의 용굴암과 은적암, 비래암 등 역사의 현장을 돌아보는 뜻깊은 시간도 갖는다.

 기념식을 계기로 정읍 사람들이 목숨 걸고 실록과 어진을 지켜 낸 의의가 재조명되기를 기대한다.
 

 -정읍은 조선왕조실록을 지켜낸 손길부터 동학농민형명의 횃불을 든 손길까지 면면히 흐르는 전북 역사의 중심이라는 생각이 드는데.

 ▲ 정읍은 백제가요인 ‘정읍사’, 정극인의 상춘곡(칠보 상춘공원), 호남우도농악(정읍농악)의 발원지이자 앞서 말씀드린 대로 조선왕조실록을 지켜낸 고장이다.

 특히 국운이 위태로울 때마다 우국충정의 마음으로 희생하고 기꺼이 목숨을 바친 이들이 정읍 사람들이다.

 실제로 외세와 폭정에 대항한 동학농민혁명과 1905년 일본의 을사늑약에 항거해 면암 최익현을 중심으로 일어난 무성창의(1906년), 호남지역 독립만세운동의 불씨를 당긴 태인독립만세운동(1919년) 등이 대표적이다.

 이뿐만 아니라 민족종교인 증산교와 보천교의 본향이기도 하다. 이들 종교들은 일제 강점기 백성들에게 희망을 줬고, 독립운동 거점으로서의 역할도 담당했다.

 백범 김구 성생은 광복직후 정읍을 방문해 “임시정부가 독립운동을 하면서 정읍에 많은 빚을 졌다”고 했는데, 이는 많은 독립자금을 지원한 보천교에 대한 고마움의 표현이라고 볼 수 있다.

 -정읍의 선비들이 전란 속에서도 목숨을 내놓고 실록과 어진을 내장산으로 이안했던 것은 어떠한 이유에서였을지 궁금하다.

  ▲정읍 사람들이 임진왜란 당시 조선왕조실록과 태조 어진을 지켜낼 수 있었던 배경에는 정읍의 실천 유학자였던 ‘일재(一齋) 이항(李恒) 선생’의 영향이 컸다고 본다.

 호남 성리학의 종조(宗祖)이자 우리나라의 ‘아리스토텔레스’로 추앙 받는 일재는 통일신라시대의 위대한 사상가 고운(孤雲) 최치원(崔致遠, 857~?)의 ‘풍류도’ 사상을 유학적인 입장에서 자주적으로 재창조했다.(*고운은 정강왕 때인 887년 현재의 태인인 태산군수를 역임했다.)

 일재의 생애와 학문은 임진왜란 이후부터 근·현대에 이르기까지 정읍을 중심으로 한 호남의 선비들과 역사적으로 막대한 영향을 끼치게 된다.

 임진왜란 당시 각 지역 의병장으로 나섰던 그의 제자들은 김천일(金千鎰 1537~1593) 장군을 비롯 54여 명에 이르는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조선왕조실록을 지켜낸 중심인물인 안의(安義 1529~1596)와 손홍록(孫弘祿 1537~1610) 선생 역시 그의 제자들이다.
 

 -정읍사람들이 지켜낸 조선왕조실록과 어진의 의의를 찾는다면?

 ▲‘약무정읍(若無井邑) 시무실록(是無實錄)’이라는 말로 답을 대신한다. “정읍이 없었다면 조선왕조실록도 없다”는 의미다. 여기서 실록은 조선왕조실록, 그 중에서 태조에서 명종에서 이르는 조선 전기 200년을 담은 기록을 말한다. 바로 이 실록이 내장산, 즉 정읍이 있었기에 지금까지 존재한다. 임진왜란 당시 4대 사고 중 서울 춘추관과 충주, 성주 3곳의 실록이 불타버리고 전주사고(전주 경기전)마저 소실될 위험에 처한다. 이때 수많은 정읍 사람들이 목숨을 걸고 조선왕조실록과 태조 어진을 지켜냈다. 안의와 손홍록 선생이 사재를 털고 목숨을 걸면서까지 실록을 지켜내고자 한 의지 덕분이기도 했지만 승병장 희묵대사가 이끄는 승군, 무사 김홍무를 비롯하여 이름 없는 사당패와 노비 등 모든 정읍 사람들이 힘을 모았기에 가능했다.

 만일 정읍 사람들이 실록과 태조어진을 지켜내지 못했다면 우리는 조선 전기 역사를 알 수 없을 테고 태조어진은 존재하지 않을 것이다.
 

 -우리나라 민주주의의 뿌리인 동학농민혁명에서 정읍의 역할이 매우 중요합니다. 정읍에서 외세와 부패한 권력에 맞선 동학농민혁명이 일어날 수 있었던 배경은 무엇일까?

 ▲동학농민혁명은 3·1운동, 4·19혁명, 6·10 민주화운동, 2017년 시민촛불혁명으로 이어지며 우리나라 민주주의를 완성시켰다. 약무정읍(若無井邑) 시무민주(是無民主), 정읍(동학농민혁명)이 없었다면 우리나라 민주주의도 없다고 주장하는 이유이다.

 이처럼 우리나라 역사의 물길을 바꾼 동학농민혁명이 정읍에서 일어났던 것은 기개 넘치는 선조들의 후손들이었기 때문이라고 생각한다. 실록과 어진을 지켜낸 정읍인들의 도도한 기상과 역사적 사명감에 대한 자각이 있었기에 가능했던 것이다. 전봉준 장군, 김개남 장군과 함께 혁명을 이끌었던 손화중 장군이 손홍록 선생의 후손 이라는 데서 이는 더욱 명백해진다.
 

 -정읍 시민들께 당부하고 싶은 말은?

 ▲지난해 7월 민선7기 정읍시장 당선이후 ‘변화와 희망이 있는, 시민 모두가 더불어 잘사는 고향 정읍’을 만들기 위해서 공직자와 출향인, 시민 모두와 함께 머리를 맞대고 고민하며 노력 중이다.

 정읍은 발전 잠재 여건이 많은 곳이다. 하지만 문화자원의 고부가 가치화에 성공하지 못했다. 이에 대한 혹독한 자아비판도 했다. 더 치열해지겠다. 문화자원의 고품질 콘텐츠화와 첨단과학단지 기업 유치, 원도심권 관광객 유입을 통해 지역경제 활력을 꾀하고 더 좋은 일자리도 만들겠다.

 그러기 위해서는 행정의 노력 못지않게 시민사회의 힘이 중요하다. 민관의 상생과 협력으로 새로운 정읍을 만들어 가겠다. 희생하면서 솔선수범하는 헌신적인 리더십으로 시민들께 꼭 필요한 진정한 리더가 되겠다. 시민들께서도 정읍 발전을 염원하는 한마음, 한뜻으로 관심을 갖고 협조해 달라.

 

 ◆경력

  -열린우리당 정읍시 청년위원장(제1~2기 당원협의회)
  -정읍시의회 5대~7대 의원
  -정읍시의회 7대후반기 의장
  -민주당 전북도당 부대변인
  -4050정책네트워크 지방자치 담당 부대표
  -제19대 대통령선거 문재인후보 국가정책자문단 중앙위원
  -민선 7기 정읍시장

 정읍=강민철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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