게임중독은 과연 ‘질병’인가?
게임중독은 과연 ‘질병’인가?
  • 김형준
  • 승인 2019.06.18 17:4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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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몇 년 전 큰 흥행을 하며 80년대 복고열풍을 불러온 영화 “써니”에서 보면 주인공들이 ‘본드’를 흡입하는 친구와 갈등을 겪는 장면이 나온다. 영화에서 80~90년대 청소년 문제의 대표적인 사례로 이야기하듯이 십수 년 전까지 청소년들 사이에서 가장 흔한 중독문제는 ‘본드’, ‘부탄가스’ 같은 ‘흡입제사용장애’였다. 그런데 신기하게도 어느 순간부터 이런 ‘흡입제 중독’문제로 정신건강의학과를 찾는 환자가 거의 사라졌다. 우리나라에 ‘비행청소년?’들이 몽땅 사라진 것도 아닐 텐데, 정신건강의학과 전문의들이 그토록 치료하려고 애를 써도 좀처럼 치료가 안 되던 골칫거리가 어느 날 갑자기 사라진 것이다. 이 놀라운 현상에 대해 대부분의 중독을 연구하는 전문의들은 전국적인 PC방과 인터넷의 보급이 그 원인이라고 판단하고 있다. PC방과 함께 인터넷의 전면적 보급이 이뤄지고 동시에 나타난 전설적인 게임 ‘스타**프트’가 대유행하면서 정신건강의학과 진료실에 게임 때문에 일상이 망가진 청소년들이 나타나기 시작했고, 그와 동시에 ‘흡입제 중독’ 문제로 치료받는 청소년이 줄어들기 시작했다. 결국 ‘흡입제 중독’이 ‘게임 중독’ 문제로 옮겨간 것이라는 결론을 얻게 된 것이다.

  세계보건기구(WHO)는 지난달 열린 스위스 제네바 정기총회에서 ‘게임중독(Gaming Disorder, 게임사용장애)’을 질병코드로 등재하는 안건을 만장일치로 통과시켰다. WHO가 게임사용장애를 정의하고자 제시한 기준은 3가지다. 게임을 하고 싶은 욕구를 못 참으며 끝내지 못하는 경우와 다른 일상 활동보다 게임을 하는 것을 우선시하는 행위다. 마지막으로 게임 때문에 문제가 생겨도 게임을 중단 못 해 가족·사회적·교육적·직업적으로 문제를 일으키는 상태다. 이 모든 증상이 12개월 이상 지속해 일상생활 관련 기능이 심각하게 저하되면 ‘게임사용장애(Gaming Disorder)로 분류한다. 이에 따라 우리나라를 포함한 WHO 가입국은 2022년까지 각 나라의 질병코드에 등재하고 질병으로써 건강보험 혜택과 함께 예방과 치료 등을 위한 전반적인 관리를 해야 한다. 이러한 WHO의 결정에 대해 대부분의 정신의학계는 환영하는 입장이지만 국내 게임업계는 강력하게 반발하고 있다고 한다. 국내 게임 학회·협회·기관 등 88개 단체는 ‘게임질병코드 도입 반대를 위한 공동대책위원회’를 만들고 성명을 발표하였는데 “WHO의 게임장애 질병코드 지정에 대해 강력한 유감과 더불어 국내 도입 반대를 표명한다.”며 “보건복지부 항의 방문과 국회의장 면담, 문체부 간담회 추진 등 본격적인 게임질병코드 도입 반대 운동을 전개할 것”이라고 밝혔다. 반대를 하는 게임업계의 주장을 살펴보면 게임이 중독을 일으킨다는 과학적 근거가 부족하고, 질병으로 분류할 경우 규제와 통제가 강화되어 막대한 경제적 가치를 생산할 뿐만 아니라 침체한 경제의 성장 동력이자, 수출효자 상품인 게임 산업을 위축시켜 결국 엄청난 경제적 손실을 가져올 것이라는 주장인 것이다.

  그러나 앞서 흡입제중독과 게임중독의 예를 들어 설명한 것처럼 진료현장에서는 이미 오래전부터 게임(인터넷)중독을 질병으로 보고 치료를 해 왔었다. 대한소아청소년과학회, 대한신경정신의학회 등 5개 의학 단체는 “게임사용장애는 도박장애, 알콜사용장애와 같이 뇌 도파민 회로의 기능이상을 동반하는 정신행동장애라는 점이 50여개의 장기추적연구와 1,000편 이상의 뇌기능 연구 등 확고한 과학적 근거로 증명되었고, 게임중독이 심각한 일상생활장애를 초래한다.”면서 “특히 두뇌 발달 과정에 있는 소아청소년기의 게임중독은 언어발달, 학업, 놀이, 교우관계에서 균형 잡힌 성장과 발달을 저해하는 폐해가 크다”고 설명하였다. 이들 단체는 “게임 업계와 일부 정부 부처 등이 사실관계를 왜곡하고 과장해 소모적 공방을 주도하고 있어 의학적 도움이 필요한 게임사용장애환자와 가족이 치료 기회를 놓치고 증상이 악화하지 않을까 우려된다”며 비방 중단도 촉구했다. 그리고 “WHO의 결정은 그에 따른 건강 서비스 요구를 반영한 적절한 결정이며 대다수 건강한 게임 사용자를 잠재적 환자로 낙인찍는 것은 아니다”라고도 강조하였다. 한편 아이러니한 사실은 우리나라가 여러 가지 면에서 세계 게임 산업과 시장을 선도하고 있는 만큼, 우리 의학계 역시 게임중독에 대한 연구 또한 세계적으로 선도하면서 이번 WHO의 결정에도 결정적인 근거를 제공했다는 점이다.

  정신장애 중에는 ‘식이장애(Eating disorder)’라는 질병이 있다. 흔히 거식증, 대식증으로 불리는 이 질환은 말 그대로 ’먹는 ‘행동에 문제가 생긴 병을 말한다. ‘eating’ 즉, ‘먹은’ 행동에 문제가 생겨 질병으로 분류하고 치료하지만, 이는 결코 사람의 ‘먹는’ 행동 자체가 잘못이라는 뜻은 아니다. 누구나 ‘먹지’ 않으면 살아갈 수 없기 때문이다. 이처럼 게임사용장애(Gaming disorder)도 ‘Gaming’ 자체가 잘못이라는 뜻은 결코 아닐 것이다. 대부분 게임과 인터넷, 스마트폰의 사용은 삶을 살아가는 재미와 편의를 제공하고 또한 업무에 필수적인 요소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지나친 게임이나 인터넷 사용이 사람의 삶을 망가뜨리고 있다면 전문적인 치료를 받아 고통에서 벗어나기 위한 도움을 제공하는 것도 당연할 것이다. 이번 기회에 게임업계와 의료계 모두 소모적인 논쟁은 그만 접고 건전한 게임문화를 형성하기 위한 상생의 길을 함께 만들어 가길 기대해본다.

 김형준<의료법인 지석의료재단 효병원 진료원장/정신건강의학과 전문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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