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 왕실의 밥상은 어땠을까?”
“조선 왕실의 밥상은 어땠을까?”
  • 김혜지 기자
  • 승인 2019.06.13 18:28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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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북음식문화연구회와 사)유네스코 전주음식 창의도시 시민네트워크
사라진 조선왕실의 음식을 살펴보는 자리
호서 대학교 정혜경 교수가 13일 전주시 한국전통문화전당 세미나실에서 '조선왕실의 밥상'이란 주제로 강의를 하고 있다.   최광복 기자
호서 대학교 정혜경 교수가 13일 전주시 한국전통문화전당 세미나실에서 '조선왕실의 밥상'이란 주제로 강의를 하고 있다. 최광복 기자

“왕실음식은 고도의 세련된 음식으로 식치(食治)의 음식 철학에 기반한 격식 있는 음식입니다. 한 나라의 음식문화의 최정상에 존재하는 만큼 그 나라 음식문화의 정수를 보여줬습니다”

전북음식문화연구회와 사)유네스코 전주음식 창의도시 시민네트워크가 지금은 사라진 조선왕실의 음식을 살펴보는 자리를 마련했다. 13일 한국전통문화전당에서 개최된 이번 세미나에서는 정혜경 호서대 교수가 발제자로 나서 조선왕실의 음식문화와 상차림에 대해 설명했다.

정 교수는 “조선왕조 600년 역사와 전통이 담긴 궁궐, 의례뿐만 아니라 음식도 왕실 문화를 그대로 보여주는 우리의 유산이다”며 “왕실 음식의 철학은 유교적 가치관이나 도교의 자연 철학에서도 영향을 많이 받았지만 ‘약식동원(음식이 곧 약이 된다)’에서 그 특성이 가장 잘 드러난다”고 말했다.

이어 정 교수는 “세조는 조선의 왕 중에서도 특히 의학과 건강에 관심이 많았던 왕으로 식치를 강조했다”며 “세조가 직접 편찬을 독려한‘식료찬요’에는 조선 왕실의 음식 철학을 엿볼 수 있는 서문이 실려 있다”고 설명했다.

정 교수는 “흔히 조선 시대 왕의 밥상이 라면 12첩 반상을 떠올리는데 이는 사실과 많이 다르다”며 “‘원행을묘정리의궤’에 왕의 밥상이 12첩이라는 통설 근거는 존재하지 않고 ‘정리의궤’에는 ‘첩’ 이라는 용어가 등장하는 대신 그릇을 뜻하는‘기(器)’라는 용어만 나온다”고 주장했다.

그러면서 “조선 말기에도 정조의 어머니인 혜경궁 홍씨의 수라상에는 13~15기가 올랐지만 정작 왕인 정조의 수라상에는 7기가 올랐다”고 덧붙였다.

그는 또 “조선시대 왕실 음식의 진면목은 잔치상에서 볼 수 있는데 음식을 쌓아 차리는 고임 또는 고배 상차림이 특징이다”며 “그 이유로는 쌓아 올린 음식이 권위를 상징해 지위가 높을수록 고임의 높이도 올라간 것으로 전해지고 있다”고 설명했다.

전북음식문화연구원, 사)유네스코전주음식창의도시시민네트워크가 13일 전주시 한국전통문화전당 세미나실에서 '조선왕실의 밥상'이란 주제로 공동세미나를 가진 가운데 참석자들이 기념촬영을 하고 있다.   최광복 기자
전북음식문화연구원, 사)유네스코전주음식창의도시시민네트워크가 13일 전주시 한국전통문화전당 세미나실에서 '조선왕실의 밥상'이란 주제로 공동세미나를 가진 가운데 참석자들이 기념촬영을 하고 있다. 최광복 기자

이밖에도 이날 정 교수는 조선왕실에서 중요한 의례 중 하나였던 제사상 차림에 대해서도 짚어봤다.

정 교수는 “조선 시대에는 국가에서 행하던 정기 제사만 1년에 241회, 임시 제사와 기타를 합할 경우 1년에 700회 이상에 달한 때도 있을 정도 였다”며 “왕릉 제향에 올리는 제물은 대개 산자, 다식, 중박계, 과실, 떡을 비롯 탕과 술로, 이 중 가장 특징적인 것이 기름과 밀가루, 꿀 등의 재료로 만드는 산자, 다식, 중박계 같은 유밀과류였다”고 설명했다.

이어 “고려 시대 불교의 유습으로 유밀 과류가 종묘 제례의 혈식과 공존할 수 없었음에도 함께 양립했다는 것은 소식 전통이 능을 수호하는 사찰에서 만들어졌기 때문이다”며 “특히 차와 함께 마시는 과자류인 유밀과를 중심으로 한 고려시대의 소식 전통은 불교를 배척하던 시기에도 계속됐다”고 말했다.

김혜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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