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뉴브 강 허블레아니호와 진도 팽목항 세월호
다뉴브 강 허블레아니호와 진도 팽목항 세월호
  • 마재윤
  • 승인 2019.06.13 18:01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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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986년 독일의 사회학자 울리히 벡(Ulrich Beck) 교수가 집필한 ‘위험사회’에 따르면 성찰과 반성 없이 근대화를 이룬 현대사회를 위험 사회라고 말하며, 산업화를 통한 과학기술의 발전이 현대인들에게 물질적 풍요를 가져다주었지만 동시에 새로운 위험을 몰고 왔다고 밝히고 있다. 즉, 위험은 성공적 근대화가 초래한 딜레마이며, 산업사회에서 경제가 발전할수록 위험요소도 증가하고, 예외적 위험이 아니라 일상적 위험이라는 데 문제의 심각성이 존재한다고 했다.

 최근 지구 반대편 헝가리의 다뉴브 강에서 33명의 우리나라 국민을 태우고 차가운 강물 속으로 가라앉은 허블레아니호는 지난 세월호 참사의 아픔을 다시금 일으키게 했다. 낭만이 깃들였던 반짝이는 모습을 뒤로한 채 필자가 간직했던 요한스트라우스의 “아름답고 푸른 도나우 강”의 상상을 여지없이 깨부순 것이다.

 이러한 대형 사고는 통상적인 안전사고와는 달리 여러 가지 요인이 복합적으로 작용했을 때 발생한다. 아직 정확한 사고 원인이 밝혀지지 않았지만, 이번 사고에서는 크게 두 가지 요인이 작용한 것으로 생각된다.

 첫째는 법과 제도적 장치다. 많은 국민이 선상(船上) 사고가 발생하면 가장 먼저 떠올리는 것이‘구명조끼’일 것이다. 그러나 이번 허블레아니호 침몰 사고 조사결과에서도 탑승객은 구명조끼를 착용하지 않은 것으로 밝혀졌다. 해당 선박은 유럽연합(EU)의 해상안전 규정에 의한 프로토콜을 준수해야 하는데, 구명조끼의 착용은 의무사항이 아니었고, 구명조끼의 위치와 착용 방법을 출항 이전 안내하는 규정마저 없었던 것이다. 2014년 공교롭게 필자도 다뉴브강에서 주간유람선 투어를 한 경험이 있다. 그 당시에도 유람선 관계자는 물론 탑승객 누구도 구명조끼에 대한 필요성을 인식하지 않았다. 5년이 지난 지금에도 안전시스템은 여전히 작동하지 않았던 것이다. 사고 지점은 세계 3대 야경 중 하나인 관광지인 만큼 구명조끼 착용을 권장사항으로 두고 있는 헝가리의 안전에 대한 제도적 장치의 개선 필요성을 반증시켜 주는 대목이다.

 두 번째는 선장 등 탑승객의 안전을 책임지어야 할 사람들의 안전의식이다. 허블레아니호의 후미를 추돌했던 바이킹 시긴호는 많은 선박들이 이동하는 상황에서 추월 운항을 시도하였다. EU의 규정에는 “추월 운항 시 인근 선박들과 교신을 통해 경로를 분명히 밝혀 추돌을 방지해야 한다”고 되어있다. 그러나 현재까지 확인된 바로는 사고구역에서 선박들이 공용으로 사용하는 무전 채널에서 해당 교신은 없었다고 한다. 이를 통해 안전에 관한 제도적 장치가 있어도 그것을 지켜야 하는 책임자들의 의지가 뒷받침되지 않는다면 무용지물에 불과하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이번 헝가리 사고는 지난 2014년 세월호 사고와 유사한 점이 많다. 선장과 기관사의 안전의식결여와 관계기관의 신속한 구조 활동 부재 탓에 또다시 소중한 인명을 앗아 간 것이다. 비슷한 참사를 겪은 우리로서는 그 상처가 더 크게 다가올 수밖에 없는 참으로 안타까운 일이 아닐 수 없다.

 물 위에 떠 있는 오리는 평온해 보이고, 아무런 노력 없이 떠다니는 것처럼 보이지만 보이지 않는 곳에서는 부단히 오리발을 젓고 있다. 안전도 마찬가지이다. 사고가 없다고 거저 주어지는 것이 아니다. 안전한 제도를 바탕으로 이를 준수하려는 사회구성원의 끊임없는 노력이 뒷받침되어야 비로소 위험사회에서 벗어나 안전한 사회에 도달 할 수 있다. 세계적인 동화의 거장 한스 안데르센의 인어공주를 모르는 사람은 거의 없을 것이다. 한 번도 바다 위를 나가본 적 없는 인어공주가 끝내는 물거품으로 변하며 슬프게 이야기가 마무리된다. 사고가 난 허블레아니호는 공교롭게도 우리말로 인어호이다. 이름뿐만 아니라 비극적인 결말까지 닮아있어 더욱 애처롭다. 더 이상 또 다른 슬픈 결말이 일어나지 않도록 안전을 책임지고 있는 모든 이들이 자기 책임을 다해 주길 바란다.

 마재윤<전라북도 소방본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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