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학농민혁명 현장 방문기
동학농민혁명 현장 방문기
  • 양태석
  • 승인 2019.06.13 15: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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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19 도서관 길 위의 인문학’수강생들이 지난 8일, 전북도청도서관에서 진행하는 소설가 이광재씨와 함께 동학농민혁명 유적지를 방문했다.

 부정부패가 사회에 만연되어 있던 조선 말, 불합리한 사회구조를 혁파하고 새로운 시대를 열고자 하는 욕망으로 들끓던 1894년 사회의 불평등한 문제를 개혁하고자 평등한 사회를 꿈꾼 백성들이 들고 일어났다.

 만석보와 배들평야, 그 땅을 경작하여 얻은 대가는 당연히 열심히 일한 백성들의 몫이어야 하는데, 조세라는 명목으로 조정에서 내려온 탐관오리의 배만 불리고 있었다.

 참다못한 농민들은 1894년 2월 15일 고부관아를 습격, 탐관오리 조병갑을 몰아내며 동학농민혁명은 시작되었다. 동학농민혁명은 고부를 시작으로 전국으로 확산되었는데, ‘사람이 곧 하늘이다.’라는 인내천 사상을 바탕으로, 모든 인간이 주인이 되고 또 하늘인 새로운 세상을 건설하자는 데 많은 사람들이 공감, 농민은 말할 것도 없고 양반들까지 함께 동참하게 되었다.

 그러나 자유와 평등 그리고 자치의 원칙에 바탕을 둔 사회체제의 대혁신을 꿈꾸던 동학농민혁명은 무능한 조정과 외세의 개입으로 실패로 돌아갔다.

 고부관아터, 황토현, 전봉준 장군 생가, 전봉준 장군 단소, 만석보를 돌아보며 드는 단상.

 조정에서 백성들의 울부짖는 소리에 조금만 귀 기울이고 그들을 가엾이 여겼더라면, 죄 없는 수많은 민초들의 죽음은 없었을 텐데 하는 아쉬움이다. 그러나 미완의 혁명으로 끝났지만 짓밟힌 횃불에서 되살아난 불씨는 항일의병항쟁, 3.1운동, 광주학생항일운동, 4.19 혁명 그리고 5.18 광주 민주화 운동으로 이어져 민주화의 불쏘시개가 되었다는 것은 고무적인 일이라 생각된다.

 동학농민혁명의 발자취를 돌아보는 내내 ‘백성 사랑 올바른 길이 무슨 허물이더냐. 나라 위한 일편단심 그 누가 알리.’란 전봉준 장군의 최후진술이 초여름의 햇살만큼이나 따갑게 귓가를 맴돌았다.

 양태석 도민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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