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직사회와 저녁 있는 삶
공직사회와 저녁 있는 삶
  • 최빈식
  • 승인 2019.06.10 16: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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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 주무관, 오늘도 초과 안 해?” 공무원을 시작한 지 1년 남짓 된 새내기 공무원들이 선배 공무원들로부터 자주 듣는 말이다. 언제부터인가 “오늘도 초과해?”가 “오늘도 초과 안 해?”라는 질문으로 변화하고 있다. 또한 요즘에 주변에서 공무원의 “직장인화”라는 이야기를 심심치 않게 듣는다. 왜 이러한 현상들이 발생하는 건지 생각해 봄직 하다.

 경력 10년차 이상 공무원들은 매일 밤늦게까지 초과하면서 밀린 일을 처리한 뒤 퇴근하며 마음 한구석에 무언가 공무원으로 자부심을 느꼈던 적은 한두 번쯤은 있었을 것이다. 과연 그것이 공무원으로서 자부심이었을까 아니면 저녁 늦게까지 사무실에 있었다는 것에 대한 본인만이 가지는 안도감이었을까?

 최근 공무원 조직 내에서도 일과 삶의 균형을 의미하는 워라밸(Work and Life Balance의 줄임말) 운동이 확산하고 있다. 영미권에서는 1970년부터 시작된 개념이지만 우리나라는 2017년 7월, 일과 삶의 균형을 맞추며 생산성을 높이자는 의미에서 정부에서 근무혁신 10대 개선방침을 발표하였다. 전북도 이러한 운동에 뜻을 같이하고 저녁 있는 삶을 보장하고자 매주 수요일은 가족의 날, 매월 2주차와 마지막 주 금요일은 정시 출퇴근데이를 실시하고 있다.

 워라밸은 오래전부터 글로벌 기업들 사이에서는 적극적으로 추진하고 있으며, 현재도 더 나은 워라밸 개선을 위해 노력하고 있다. 워라밸의 주요 목적은 단순히 저녁시간에 여가를 즐기는 의미만이 아닌 생산성위주의 회의, 효율적인 보고, 근무시간 내에 업무집중도 향상 등이 포함된 포괄적인 의미이다.

 하지만 우려의 목소리도 크다. 일부 언론과 정치인들은 “우리나라의 공무원 수는 이웃나라 일본에 비해 4배나 많은 상황인데도, 공무원 상당수를 추가로 채용하려고 추진하고 있다”라는 주장을 펼쳤다. 이것은 다른 의미로 보면 인력은 남으면서 저녁 있는 삶까지 추구하려는 것은 국민의 세금을 받는 공무원이 주장하기에는 적절하지 않다는 의미가 내포되어 있기도 있다. 또한 아직도 공무원을 무사안일주의, 철밥통 직업이라는 표현으로 일반 국민과의 거리감을 갖게 하고 있다. 하지만 이러한 주장에는 먼저 통계의 오류가 발생한다. 2017년 OECD 발표에 따르면 한국공무원 수는 199만명, 일본은 393만명으로 오히려 일본이 2배정도 많다. 물론 인구대비로 평가해야겠지만 나라마다 경제상황이 다르므로 단순히 인구수로 나누는 것은 큰 의미가 없다고 전문가들은 말하고 있다. 대신 전체 취업자 중 공무원비율을 보면 일본은 5.9%, 한국은 7.6% 정도로 한국이 조금 높지만, OECD 평균인 18.1%에 비하면 높은 수치를 차지하고 있지는 않다.

 노동력의 가치를 이야기할 때 선진국인 독일과 비교를 하는 경우가 많다. 독일은 OECD 국가 중 가장 일하는 시간이 적은 나라로 유명하다. 2016년 OECD에서 발표한 고용동향에 따르면 독일근로자는 연 1,371시간 근무하는 것에 비해 한국근로자는 연 2,113시간으로 독일보다 742시간, 92일(하루 8시간 근무로 계산시)을 더 일하고 있다. 노동생산성면에서 한국은 15.67$, 독일은 32.77$로 2배 이상 차이가 난다. 물론 단순 수치로 평가하기에 조심스럽게 비교할 부분이 많은 것도 사실이다. 그렇지만 중요한 것은 노동생산성을 높이는 것에 저녁 있는 삶과는 분명히 관련이 있다는 것이다.

 2019년 1월부터 시행되는 주52시간 근무제는 새로운 근무조건의 변화로 근로자들의 삶의 질 개선에는 긍정적인 부분이 크지만, 반면 기존 초과 및 야간근무수당에 대한 금전적인 손실에 대한 부정적인 부분도 있다. 그러나 2013년 주 5일제 근무가 적용되는 과정에서도 우려하는 목소리가 컸지만, 6년이 지난 지금 사회 전반적으로 안정적으로 운영되고 있다고 생각된다. 이러한 변화에 따른 ‘저녁 있는 삶’은 요즘과 같이 맞벌이 시대에 남성의 가사와 육아분담의 분위기 조성에 기여하고, 가족과 함께하는 삶을 추구하는 기회의 시간으로 의식의 전환이 늘어나고 있다. 물론 여전히 일반 근로자들은 언제 노동시장에서 퇴출의 위기를 맞이할지 모르기에 벌 수 있을 때 많이 벌어놔야 한다는 생각을 많이 하고 있어서 저녁 있는 삶의 시너지 효과를 얻기 위해서는 이러한 문제들도 정부차원에서 현실적인 대책이 필요할 것으로 생각된다.

 ‘저녁 있는 삶’의 모티브가 되는 워라밸은 우리나라가 추구해야 하는 선진국형 복지정책의 하나이며 과거 근로자들의 복지를 고려하지 않은 노동생산성은 시간투자에 비례한다는 잘못된 의식전환의 계기로 생각해야 한다.

 어떠한 정책도 처음에는 분명 다양한 이견과 걸림돌이 많이 있을 수 있다. 그러나 그 정책이 나와 나의 가족과 나의 직장 동료가 같이 누릴 수 있는 행복에 조금씩 가깝게 가는 것이라면 반대를 위한 반대보다는 선택과 집중이 필요할 것으로 보인다.

 최빈식<전북도공무원노동조합 위원장>  

 약력 ▲전국광역연맹 선거관리위원장 ▲대한민국공무원노조총연맹 단체교섭 특별위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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