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삼지역의 홍차
아삼지역의 홍차
  • 이창숙
  • 승인 2019.06.09 16: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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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늘막 보호수와 차나무

 찻잎 하나 채취할 수 없었던 영국, 그들은 어떻게 홍차의 제국이 되었는가. 영국은 17c 후반~19c 중반까지 중국에서 수입된 차에 의존했다. 차는 고가(高價)여서 상류층과 귀족층이 즐기는 기호품으로, 맛보다는 사회적인 분위기가 더욱 컸던 사치품이었다. 18c까지도 홍차와 녹차가 같은 찻잎으로 만든다는 것조차도 몰랐던 영국이다. 식물학자 조지프 뱅크스는 1778년 인도지역에서 차가 재배될 수 있다는 주장을 영국의 동인도회사에 전달했다. 하지만 주목을 끌지 못했다. 이러한 연구는 학문적 관심에 머물렀다. 사실상 영국은 동인도회사를 통해 중국과의 차 무역으로 이윤을 남기고 있었던 상황이라 다원(茶園)개발에는 별로 신경쓰지 않았다.

  1823년 동인도회사의 군인 로버트 브루스 소령이 아삼(Assam)지역에서 차나무를 발견한다. 중국종과는 다른 대엽종의 차나무였다. 아삼지역은 인도 북동부의 밀림지역으로 사람이 거의 살지 않았다. 이러한 곳에 영국은 1839년 아삼 차 회사(Assam Tea Company)를 설립한 것이다. 중국이 아닌 아삼지역에서 만든 아삼차는 희소성 때문에 엄청난 가격에 팔리면서 인기를 끌었으나 한동안 차 생산량은 크게 늘지 않았다.

  1854년 ‘아삼 차 경지법’이 통과되고 어떤 유럽인에게도 차나무를 경작할 경우 땅을 3000에이커까지 분할하여 주었다. 이러한 경지법으로 아삼지역은 급격히 외국인 소유의 땅이 되었고, 가혹한 세금과 폭력으로 이곳 원주민들은 삶의 터전을 잃게 되었다. 다원을 개척하기 위해 현지인은 물론 일꾼들을 모집하는 과정에서 상당한 희생이 따랐다. 1859년 차산업은 급속하게 성장하였다. 동인도회사는 인도에서 누리던 특권을 영국정부에 넘겼다. 동인도 회사의 관리들은 영국으로 돌아가 평범하게 살아야 했지만 이러한 선택의 기로에서 이들은 현지에 남아 다원을 운영하는 것이 신사의 격이 있는 삶이라 여겼다. 영국정부가 영국인들에게 차 재배에대한 동기 부여를 짐작하게 하는 내용이 전해진다. “재산은 많지 않아도 교육받은 삶을 유지하려는 사람들, 장사나 직장생활을 못 견디는 사람들, 영국적인 것에 에너지를 발휘하고 싶은 사람들은 다원을 경영하라.”

  홍차는 1860년부터 많은 양은 아니지만 본격적으로 생산되기 시작했다. 1870년~1900년사이 아삼 지역의 차 수출은 20배 이상 늘어 많은 양의 차를 운반하기 위해 변경의 산악지대에 교통망이 건설되는 등 상당한 개발도 이뤄졌다. 히말라야 산맥의 다른 지역에서도 차 재배가 확대되었다. 영국인들은 중국 수입차의 맛에 익숙해 있어 초기에는 중국차와 동일한 맛·향기의 품질을 원했다. 때문에 중국종 차나무를 재배하고 중국에서 차를 만드는 비법을 가져왔으나 성공하지 못한다. 기후와 토양이 다른 조건에서 자란 차나무는 제다방법이 같아도 품질에 차이가 있다는 것을 알지 못했기 때문이다. 이러한 시행착오 끝에 영국은 그들만의 홍차를 만드는 정통법을 완성한다. 지금도 고급 홍차의 대부분은 정통법으로 생산되고 있다.

  즉, 중국식 가공법을 아삼지역의 상황에 맞게 수정해 균일한 품질의 홍차를 대량생산하는 시스템을 완성한 것이다. 아삼에서 차를 생산하기 시작하면서 중국에서 수입한 차와는 다른 품질의 홍차가 생산되기 시작한다. 아삼지역의 다원개발로 영국은 홍차 생산의 전기를 마련했다. 표준화된 방식으로 대량생산한 아삼홍차로 인해 영국은 19c 말과 20c 초를 지나면서 홍차의 제국이 되고 있었다. 이러한 과정을 거치며 영국은 중국차에 대한 의존에서 벗어날 수 있었다.

  넓은 평지에 끝없이 펼쳐진 아삼다원, 차밭 사이에 뜨거운 햇빛으로부터 차나무의 잎을 보호하기 위해 그늘막이 되는 보호수가 중간중간 심어졌다. 아삼 지역의 기후는 세계최고의 강우량과 4월~9월 사이에는 평균 기온이 35도의 더위와 습도로 사람에게는 비우호적인 곳이다. 이러한 기후조건에서 자란 차나무는 특유의 향을 지녔다. 3월에 봄차를 만들며, 5월말~6월초에 여름차를 만든다. 일반적으로 사람들은 여름차의 풍미를 더 즐기며 좋은차로 평한다. 정통의 아삼 홍차는 맛과 특유의 향기를 간직하게 된다. 아삼차의 주류인 CTC홍차는 우유와 설탕을 넣어 영국인이 오랫동안 즐겼던 홍차로 태어났다.
 

 / 글 = 이창숙 원광대학교 초빙교수

 

 ※이창숙 칼럼 ‘차의 맛, 소통의 맛’은 격주 월요일자를 통해 만나실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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