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하 최승범 시백의 미수 기념 시집 출간
고하 최승범 시백의 미수 기념 시집 출간
  • 김미진 기자
  • 승인 2019.06.05 18: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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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릇 값 다 한 것인가/ 몫을 헤아려 본다// 오늘 하루도/ 아침 점심 저녁 챙겨// 잘 먹고/ 할 일 다 잘했지// 숨을 돌려/ 후련하다”「몫」 

 “사람마다의/ 식성 탓할 것 있으랴// 홍어라면 곧/ 코 싸멘 미인도 있고// 환한/ 미소 짓는 내 젊은// 애인도/ 있다네”「홍어애탕」

 누구나 노년이 되면 인간만사 단시조처럼 짧아지고 단순해 진다. 먹는 일이 중대사가 되고 곁에 있는 영원한 동반자인 안해를 가장 소중하게 여긴다.

 여기, 고하 최승범 시백도 그러하다. 그의 미수 기념 단시집 ‘八八의 노래(도서출판 시간의 물레·8,800원)’에는 여러 형식의 시조 가운데서도 시조시의 정수라 할 수 있는 단시조(평시조)의 찰진 말맛이 가득하다.

 이번 팔팔의 노래는 고하 시백의 13번째 시집이다. 시조는 고하 선생이 일생을 두고, 짓고, 연구했던 분야다.

 사람들은 누구나 자기가 사는 고장이 ‘예술의 고장’이라 불리는 것을 싫어하지 않을 테지만, 시백이 있어 ‘예도 전북’, ‘예향 전주’라는 말이 더 없이 잘 어울린다는 생각이 드는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다.

 미수를 기념해 출간한 단시집에는 전라도의 구수한 밥상이 한 가득 차려져 있기도 하고, 사계절의 변화를 온몸으로 느끼는 예인의 모습이 등장하기도 한다.

 밟혀도 일어나는 민들레, 푸르른 소나무, 어울져 흐르는 쑥향기까지 시백의 두 눈과 가슴에는 작은 것 하나까지도 소중하지 않은 것이 없다.

 “잠자리에 일어앉아/ 하냥 버릇대로// 발바닥 문지르고/ 관자놀이 짚어보고// 오늘도/ 내 갈 길 좇아// 문 밖을/ 나선다”「하냥 버릇대로」

 전주 한옥마을 끝자락에 있는 고하문학관을 오늘도 지키며, 누군가에게 소중한 편지 한장을 띄우고 있을 시백. 오래전, 문학관을 나서 우체국으로 향하던 그를 길에서 우연히 만났을 때 마주한 그 표정을 지금도 잊지 못하는 것은 그에게서 뿜어져 나오는 진솔한 인간미 때문일 터다.

 “팔팔 미수이면/ 오래 산 것인가// 덜 산 것인가/ 살 만큼 산 것인가// 아침을/ 일어 앉아서// 정갱이를/ 훑는다”「미수」

 이 짧은 시편에 무릎을 탁 치게된다. 오늘도 “곱짝곱짝이는/ 시에 대한 욕심”으로, 밤하늘의 별을 세어보고 있을 시백의 모습을 떠올리니 입꼬리가 절로 올라간다. 그가 부르는 노래는 600여 년 동안 살아있는 민족의 전통시가임에 틀림 없다.

 평생을 교단과 문단에서 활동한 고하 시백은 반세기 동안 전북대학교에서 제자들을 길렀다 그리고 60여 년 동안 글을 쓰고 책을 내고, 출간한 도서가 50여 권에 이르지만 단시조 만큼은 그를 따를 자가 없다. 그가 소문난 전주 먹거리를 읊은 시편은 일본에서 번역되기도 했다. 음식뿐 아니라 한국의 빛깔과 소리를 천착한 저술을 남기기도 했다. 조선의 청백리를 기리는 저서도 여러 권 썼다. 수필가로도 일가를 이뤘다. 한국에서 최초로 수필이론서를 출간했다. 1969년 창간한 ‘全北文學’은 2019년 현재까지도 속간되고 있다.

 고하 시백은 한국근대시인 100인으로 선출된 바 있고 민족문학상, 제1회 한국시조대상과 만해문예대상 등을 수상했다.

 김미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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