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리아나 리드싱어 이승규의 자전적 수기 (14) 도약과 영광 3
코리아나 리드싱어 이승규의 자전적 수기 (14) 도약과 영광 3
  • 김재춘 기자
  • 승인 2019.06.04 10:03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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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만에서 공연할 때의 필자와 용규. 우리들은 어느 곳에 가서 연주하든 전통악기를 필수적으로 사용했다.

 우리들의 유럽행을 위해 영일형은 다시 베이루트로 가 바하두리안을 만났다.

 하지만 기대가 크면 실망도 크다는 말이 있듯이 바하두리안은 우리들의 유럽진출에 난색을 표하고 대신 이란 진출을 제안, 테헤란에서 공연하다가 유렵의 좋은 곳에 진출시켜 주겠다고 약속했다.

 1974년 봄 우리들은 오만을 떠나 팔레비 왕가의 나라 테헤란으로 향했다. 바하두리안이 우리에게 소개 시켜준 곳은 이란 최고의 나이트클럽인 바카라나이트클럽이었다. 우리들은 그룹 이름을 ‘코리안 플라워’에서 ‘파이브 핑거스’로 다시 바꿔 무대에 섰다.

 이란의 수도 테헤란에 여장을 푼 우리들은 바카라나이트클럽에 공식 출연하기전 그 클럽에 먼저 와있던 이란밴드나 폴란드밴드의 공연을 관람했다. 물론 그들의 기량은 우리들보다 한 수 아래인 것처럼 보였지만 어차피 인기경쟁을 벌여야할 처지였기 때문에 우리들은 그들을 세밀하게 관찰했다.

 독자들도 잘알다시피 인기란 것은 음악적 기량보다 관객들의 기호나 취향에 크게 좌우되어 인기에 편승하다보면 음악에 등한시하게 되고 음악성을 고집하다보면 관객들로부터 외면받기 십상인 것이다.

 그래서 영일형은 틈만나면 음악성과 인기면에서 프로가 되라고 강조했다.

 또 세상에 쉬운 일은 아무것도 없고, 우리들보다 못난 사람들도 아무도 없다고 강조했다. 다시말해 대중의 스타가 되려면 경쟁자를 절대 깔보지말라는 것이었다. 더구나 대중의 인기를 얻어야 될 음악인들은 음악에 관한한 무조건 배우는 자세로 임하라고 충고해 주었다.

 드디어 무대에 오르는 날 우리들은 부지불식간에 긴장했다. 그러나 우리들의 데뷔무대는 대성공하여 폴란드밴드나 이란밴드를 압도하며 박수갈채를 받았다.

 우리들은 공연을 하면 할수록 폭발적인 인기를 누렸다.

 그러나 74년 8월15일 조국에서 들려온 비운의 소식은 공연도중 들려왔다.

 공연이 거의 끝나갈 무렵 이란밴드들이 빨리 끝내고 내려오라고 손을 흔들며 난리법석을 떨었다. 우리들은 무슨 영문인지도 모르고 공연을 끝내고 휴게실로 가보니 TV뉴스가 흘러나오고 있었다.

 南山 국립극장에서 진행된 8.15경축기념식장에서 朴正熙대통령부처가 괴한의 총격을 받고 돌아가셨다(?)는 뉴스는 우리들에게는 망치로 뒤통수를 맞은 것 같은 충격을 주었다.

 우리는 급히 숙소로 돌아와 테헤란주재 대사관으로 전화를 걸어 자초지종을 확인해 보았다.

 대사관에서는 박 대통령은 무사하고 육영수 여사만 돌아가셨다고 대답했다.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지만 한편으로는 비통한 마음을 금할 길 없었다.

 교민들도 모두가 슬픔에 잠겨있었는데 엎친데 덮친격으로 제7회 테헤란 아시안 게임이 다가오고 있었다.
 

 <정리=서울분실 김순환 기자>  옮긴이 김재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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