냉면 한 그릇과 여름…
냉면 한 그릇과 여름…
  • 이흥래
  • 승인 2019.05.30 17: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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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번 주 들어서는 다소 누그러졌지만, 지난주 유례없던 5월 폭염을 견디면서 많은 사람들이 올해도 대단히 뜨거운 여름이 될 것을 걱정하고 있다. 특히 지난해 지독스럽게도 더웠던 여름의 기억이 생생한 터라 벌써 올여름을 어떻게 보내야 할지 걱정하는 목소리들이 크다.

 각설하고 이렇게 날씨가 더워지면 많은 이들이 냉면이나, 소바, 열무국수 등 시원하고 맛깔스런 여름 별미를 찾게 된다. 하지만, 서민들이 즐겨찾는 여름철 대중음식값이 요즘 천정부지로 치솟아 그렇잖아도 비어가는 서민들의 호주머니를 위협하고 있다. 며칠전 방송뉴스를 보면 올들어 국수와 냉면, 자장면 등 분식값이 대중음식값 가운데 가장 많이 오른 것으로 나타났다. 인건비와 원자재 값 인상 등 오를 이유야 많겠지만, 냉면 한 그릇에 7~8천원, 국수 한그릇에 5~6천원이나 되다보니 가까운 사람들과 냉면 한 그릇 먹자고 하기에도 몹시 부담스럽다. 특히 이런저런 이유로 매년 천원 정도는 오르다보니 과연 이렇게 올라도 될까 하는 합리적 의심을 말하는 이들도 많다. 과거 보릿고개를 경험했던 세대들은 전후 미국 등에서 무상으로 제공했던 밀가루 음식을 자주 먹었는데, 쉽게 배가 고프고 속도 좋지 못하니 든든한 밥을 먹으라는 얘길 수도 없이 듣고 자랐다. 이른바 가루음식은 분식 그 자체이지 감히 주식은 아니었다. 하지만 그 후 분식집 등을 통해 전파된 그 가루음식은 다양한 조리법 등에 힘입어 요즘 세대들에겐 버젓이 주식보다 더 대접받고 있다. 그러다보니 밀과 메밀 등 과거 부식재료가 쌀과 보리보다 훨씬 대접받는 처지가 됐고, 그 흔하디 흔했던 가루음식은 이제 결코 값싼 음식이 아닌 그런 시대가 돼버렸다.

 사실 나는 음식에 조예가 깊지도 않고 내 주장을 펼 정도는 결코 아니다. 그러나 냉면과 소바, 면 등 여름 별미들을 보면 대부분 조리가 간편하고 반찬수도 많지 않을 뿐만 아니라 먹는 시간도 아주 짧은 편이다. 물론 어떤 음식이든 남의 입맛을 맞추려면 지극한 정성과 공력이 필요하겠지만, 대체로 그렇게 보이기 때문에 그런 음식점에 갈 때면 냉면이나 소바 한 그릇의 원가는 얼마나 될까를 생각하는 때가 잦다. 특히 그것 한 그릇 먹자고 길게 줄을 선 사람들을 볼 때면, 여름철 더운 주방에서 밥, 국, 탕에 대여섯가지 반찬까지 챙겨야 하는 백반 값이 자주 비교되곤 한다. 인건비니 임대료니 아무리 고려해봐도 내 머리로는 꽤 비싼 음식이다. 그런데 가격도 비싸지만 더 고약한 것은 예전보다 양도 많이 줄었다. 대체로 보통을 시키면 배부르진 않지만, 적당히 배를 채울 정도는 돼야 하는데, 이름깨나 알려진 업소일수록 젓가락 두,세번 돌리면 육수만 남는 경우가 많다. 자연이 곱빼기나 사리를 추가하다 보면 하찮은(?) 가루음식이 훌쩍 만원을 넘기기 일쑤니 상술치곤 아주 못된 상술이다. 특히 요즘 관광객이 늘다보니 이들의 호주머니를 노리고 이런 상술이 늘고 있다는 지적도 있다. 대다수가 그렇진 않지만 어떤 업소는 너댓평 판잣집에서 불과 몇 년만에 빌딩을 세웠다는 전설같은 얘기도 항간에 나돌고 있다. 또 그런 집일수록 외지에서 멀쩡하게 직장 다니던 아들 며느리 불러들이고 딸, 사위 부른 경우도 많다고 한다.

 물론 비싸면 안가면 될 일이다. 하지만 터무니없이 가격이 비싸거나 올려받는 것도 온당한 처사는 아니다. 그러다보니 물가당국이나 소비자 보호단체는 뭐하는 곳이냐는 얘기가 많다. 아파트 값만 원가를 따질게 아니라 서민들 음식값도 지나치게 비싸면 내리도록 권고하고, 싹수없는 업소는 그만 다니자고 말이라도 해야 할 것 아닌가. 우리 전북을 맛의 고장이라고 자랑하지만, 전국적으로 이젠 맛의 평준화 시대이다. 맛도 그렇고 듬뿍듬뿍 퍼주는 인심조차 메마른 맛의 고장이 앞으로도 지속가능할 수 있을까. 어려울수록 상생이 답이다.

 이흥래<前 전주MBC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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