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편한 소통, 편한 단절
불편한 소통, 편한 단절
  • 김성철
  • 승인 2019.05.30 16:01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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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며칠 전 직원들과 점심식사를 위해 일본식 라멘집을 찾았다. 그런데 식당 내부 좌석은 비어 있는데 입구부터 긴 줄이 늘어서 있다. 입구에 놓여 있는 키오스크(무인 주문결제 시스템)를 통해 주문을 하기 위한 줄이었다. 키오스크에서는 매운맛의 강도와 음식에 추가해 먹을 수 있는 토핑 종류까지 선택할 수 있도록 세분화되어 있었다.

 식사를 마치자 함께 식사를 한 직원이 그 자리에서 스타벅스 커피를 주문할 테니 어떤 커피를 먹을 것인지 물어 왔다. 스마트폰 앱을 통해 주문하는 사이렌 오더였다. 사이렌 오더는 모바일로 미리 주문을 하고 결제까지 마친 후 가까운 매장에 가서 커피를 바로 픽업하기만 하면 되는 시스템으로 한국에서 전세계 최초로 도입됐다. 2018년 7월 기준으로 하루 7만 8천 건의 주문이 사이렌 오더로 이뤄졌으며 이는 총 주문의 14%에 해당하는 수치라고 하니 이미 큰 성공을 거둔 셈인데 스타벅스는 한발 더 나아가 AI 주문방식 도입도 앞두고 있다고 한다.

 요즘 ‘언택트(untact) 마케팅’이 대세다. 언택트란 접촉을 뜻하는 ‘콘택트(contact)’에 ‘언(un)’이 붙어 ‘접촉하지 않는다’는 의미로 기계로 메뉴를 주문하는 키오스크나 VR쇼핑, 챗봇 등 첨단기술을 활용해 판매자와 소비자가 직접 대면하지 않고 상품이나 서비스를 제공하는 것을 말한다.

 1인 가구가 늘고, 인구 및 세대구조가 변화하면서 대면관계를 꺼리는 소비자들의 태도 변화가 주된 이유라고 한다. 또 스마트폰이나 디스플레이 화면에 익숙한 세대일수록 비대면 소비습관에 더 고착화된 데다가 기업에서도 비용 절감 차원에서 선호하고 있다는 것. 카페는 물론 호텔, 숙박업소, 편의점, 대형할인점, 패션 등 분야도 다양하다. 특히 금융은 이보다 앞서 비대면 거래가 활성화되어 있는 분야다.

 간편하고 편리한 것을 추구하는 소비자들의 요구에 부응한다는 측면에서 이러한 언택트 마케팅은 긍정적일 수 있지만, 빛이 있으면 어둠도 있는 법. 언택트 마케팅의 단점으로 디지털 소외 계층의 발생, 일자리 감소 등의 문제가 지적된다. 일자리 창출이 화두인 요즘, 기업 입장에서 무분별한 언택트 마케팅 도입은 자칫 자충수가 될 수도 있다.

 또 다양한 디지털 트렌드에 익숙한 젊은 층과 달리 고령층은 이러한 분위기에 소외감을 느끼며 반감을 가질 수 있다. 바로 언택트 디바이드 현상이다.

 따라서 이러한 언택트 마케팅에서 간과해서는 안 될 중요한 문제가 있다. 바로 사람 중심, 고객 중심이 되어야 한다는 것이다. 비대면 접촉도 궁극적으로 인간 중심이 되어야 하고 따라서 언택트 기술과 인력 재배치를 병행하는 방안을 강구해야 한다.

 이와 관련해 서울대 소비 트렌드 분석센터는 “인력이 필요하지 않은 곳은 기술로 대체하고, 대면 접촉이 필요한 곳에는 인력을 재배치하는 기술과 방법이 병행되어야 하며, 그에 따라 그동안 무료로 인식됐던 인적 서비스가 프리미엄화 되면서 차별화의 핵심 요소로 등장하게 될 것”이라고 전망했다.

 언택트 마케팅에서 우리가 주목해야 할 점도 기술의 진화가 아닌 사람들이 언택트 기술을 편안하게 느끼기 시작했다는 점이다. 관계로 인한 감정소비를 줄이고 싶어 하는 심리가 이러한 언택트 마케팅을 활성화시켰다는 분석도 있다. 그러나 이러한 인간관계의 갈등에 대해 인내력이 약해지고 외로움을 더 느낀다면 결국 정서적 부재에 허덕일 수밖에 없다. 아무리 기술이 발전하고 편리함이 대세인 시대라고는 하지만 그 중심에 사람이 없다면 우리는 한낮 기술의 노예로 전락할지도 모른다. 편리함에 앞서 사람이 먼저인 기술 발전이 선행되어야 하는 이유다.

 김성철<전북은행 부행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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