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월 차밭의 향연
오월 차밭의 향연
  • 이창숙
  • 승인 2019.05.26 15:33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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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동춘 선생님이 찻잎을 가마솥에서 재건하는 과정이다.

 온통 축제의 장이 된 오월, 마음의 빗장을 여니 어느덧 녹음 속으로 숨어들 준비가 된 오월의 향기, 만개한 꽃처럼 만지면 떨어질까 조심스럽기까지 하다. 이런 마음이 나만의 것일까. 무르익은 축제는 동네 축제에서 문화재와 관련된 행사에 이르기까지 다양하다. 이러한 현장 속에서 빠질 수 없는 차, 차는 이미 축제 현장의 콘텐츠가 되었다.

  조금은 어수선한 마음을 뒤로하며 내 마음의 향연이 된 오월의 차밭으로 향했다. 필자가 가는 곳은 주암댐 근처 모후산 자락이다. 2000년대 초부터 이곳을 다녔으니 익숙해 있는 곳이다. 매번 승용차를 이용하였으나 이번 차밭 길은 기차여행이다. 기차에서 내려 차밭까지는 택시로 30분쯤 걸리는 곳이다. 이번에는 버스를 탔다. 30분쯤 기다리니 버스가 왔다. 버스 안에는 장을 보고 오는 검게 탄 아저씨와 아주머니가 있고 한쪽은 중학생쯤 보이는 학생이 졸고 있다. 차밭 입구 동네까지는 1시간 20분 소요된다고 하니 여유를 부리며 창밖으로 고개를 돌렸다. 가옥이 몇 채 없는 동네 골짜기를 거치는 버스는 내리는 사람이 없어 그냥 스쳐 지나갔다. 동네의 풍경을 놓치기 아쉬워 고개를 돌려 보며 봄을 느끼는 사이 어느덧 차밭이 있는 동네에 왔다. 차밭 아저씨가 정류장에서 기다리고 있었다. 지금은 80세를 훌쩍 넘긴 할아버지이다. 여전히 아저씨라 부른다. 차나무가 있는 곳은 산속이라 10분 정도 차를 타고 들어가야 한다. 도착하니 먼저 온 사람들이 분주히 움직이고 있었다. 동네 아낙네들이 새벽부터 찻잎을 따서 바구니에는 찻잎이 가득 담겨 있다. 찻잎을 고르는 이들도 있었다. 찻잎을 덖을 가마솥, 장작, 대솔 등 차를 만들기 위한 도구들이 함께 어우러져 있다. 차 향기가 눈으로 코끝으로 전해져왔다.

  이곳은 박동춘 선생님이 37년 전부터 전통적인 제다 방법으로 차를 만드는 곳이다. 새벽 7시부터 채취한 찻잎은 오후 4시부터 차를 만들기 시작한다. 초벌 덖기를 한다. 찻잎은 가마솥에서 아주 빠르게 덖는다. 화기(火氣)는 장작불로 조절한다. 초벌 덖기를 마친 찻잎은 돗자리에서 유념(비비기)을 한다. 유념은 차를 우렸을 때 찻잎에서 성분이 잘 우러나도록 하기 위한 것이다. 맛과 향에서 중요한 역할을 한다. 유념을 마친 찻잎은 재건에 들어간다. 재건 역시 가마솥에서 한다. 찻잎을 덖는 것에서 유념, 재건 등 어느 것 하나 소홀함이 없어야 한다. 이렇게 섬세하게 차를 만든다. 이 과정을 본다면 찻잎 하나도 소홀히 다루지 못할 것이다. 찻잎의 양에 따라 다르지만 밤 11시쯤에 제다(製茶)를 마친다. 마무리되면 모두 모여서 올해 만든 신선한 햇차를 마신다. 차인(茶人)이라면 누구나 누리고 싶은 가장 큰 호사이다. 이날 누리는 맛과 향기는 한 해 동안 간직하게 된다.

  차를 마시는 작은 방에서 계획되지 않은 토론도 이뤄진다. 올해도 한국 차의 앞날에 관한 토론이 있었다. 30대 초반의 젊은 청년에서 40대, 50대, 차 생활을 한 지 40년이 되었다는 60대까지 한국 차에 대한 열정은 새벽까지 이어졌다. 이들 모두 우리 차 우리의 것을 어떻게 지키고 보급할지에 대한 고민 일색이다. 형식에 치우쳐 진정한 차의 맛과 품질을 보지 못한다면 그것도 문제이고, 수입차에 밀려 우리 차를 마시지 않는 것도 한국 차 문화의 발전을 저해하는 가장 큰 요인일 텐데 어떻게 극복할 것인가가 골자를 이룬다. 전통 제다 현장에서 새벽까지 이어진 토론, 한국 차의 앞날이 밝으리라는 믿음과 함께 깊은 산속 차밭의 또 다른 향연이다.

  차 산업 발전 및 차 문화 진흥에 관한 법률이 2016년 시행되었다. 목적은 차 산업을 발전시켜 농업인의 소득증대와 국민의 다양한 여가선용과 건강한 삶을 위한 것이다. 차문화 보급을 위하여 체험과 무대공연의 소재로 이용되고 다양한 장르로도 창조된다. 차 산업을 촉진하고 관광자원으로 활용되기를 기대하며 차축제도 개최된다. 오늘날 축제장은 생활 속으로 스며드는 현장이다. 그 축제의 성격에 어울리는 내용을 구성하는 것은 매우 중요하다. 내용은 검증돼야 할 것이다. 오히려 전문가들이 서로의 논지를 밝히는 학술대회장보다도 더욱더 검증이 필요하다. 분별심과 적절함을 선도해 갈 때 우리 차문화의 방향은 밝을 것이다. 이러한 역할은 관(官) 주도 행사에서 특히 필요하지 않을까.  

 / 글 = 이창숙 원광대학교 초빙교수 

 ※이창숙 칼럼 ‘차의 맛, 소통의 맛’은 격주 월요일자를 통해 만나실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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