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리아나 리드싱어 이승규의 자전적 수기 (11) 좌절과 슬픔의 나날
코리아나 리드싱어 이승규의 자전적 수기 (11) 좌절과 슬픔의 나날
  • 김재춘 기자
  • 승인 2019.05.24 10:55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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효장동에서 수유리로 이사간 직후 집앞에서 아버지, 어머니와 함께

 이곳저곳으로 수소문하던 영일형은 당시 방콕에서 가수로 활동하고 있던 강혜숙 씨를 영입했고, 형수 洪화자씨를 합쳐 5인조 멤버를 구성했다.

 우리들은 다섯명으로 지직된 새 그룹의 이름을 ‘파이브핑거스’로 정하고 맹렬한 연습에 들어갔다.

 그러나 당시 영일형은 무척 어려운 처지에 있었기 때문에 우리 멤버들은 거의 한 달여 동안 라면만 먹다시피 했다.

 영일형은 그때 다른 그룹들을 거느리고 월남·홍콩 등을 오가며 공연을 열고 있었는데 월남에서 함께 사업을 하던 佛회사의 사장이 다른 사업을 벌이다 사기를 당하고 잠적해 버렸다.

 영일형은 그 佛사장에게 美貨 8만달러를 맡겼는데 고스란히 날려버린 것이다.

 영일형은 수중에 남은 돈으로 월급을 주고, 다른 그룹들을 모두 정리했다. 그리고서 파이브핑거스 운영에 적극적으로 나서기 시작했다. 영일형은 우리 멤버들이 라면을 먹고 얼굴들이 퉁퉁 부어도 연습을 게을리하지 않은 것을 보자 돌파구 마련에 동분서주 하였다.

 그러던중 영일형은 방콕에서의 공연이 더이상 실익이 없다고 판단했는지 신경지를 개척하자며 中東진출을 제의했다. 영일형은 우리 멤버들의 스틸사진을 찍고, 음악을 녹음해 단신으로 베이루트행 여객기에 몸을 실었다. 당시 베이루트는 中東의 외교도시로 연예계의 실력자들이 두루 포진하고 있었다.

 단신으로 베이루트에 도착한 영일형은 그곳 연예계의 대부라고 할 수 있는 바하두리안이라는 키프로스 출신의 프로모터를 단 한번의 통화로 만날 수 있었다고 한다. 얼굴 한 번 본적이 없는 바하두리안을 만난 것은 지금도 하느님이 도운 일이라고 생각한다.

 나중에 들은 이야기지만 그때 영일형이 방콕을 떠나 베이루트로 갈때는 왕복항공권과 美貨 800달러밖에 없었다고 한다.

 하여튼 바하두리안은 느닷없이 방문한 생면부지의 한국인인 영일형에게 “잘 왔다”며 환대했다고 한다.

 그는 영일형이 내놓은 톰(승규)과 제리(용규)의 스틸사진을 보더니 익히 알고 있다면서 녹음테이프를 들어보지도 않고 계약을 체결하자고 했다.

 우리가 공연할 장소는 오만의 수도 무스카트에 있는 알라나자 호텔이고, 우리들이 그곳에 갈 수 있는 편도항공권, 호텔숙식비 그리고 월 출연료 6천달러를 제의했다.

 당시 다른 밴드들은 월 3천달러 안팎으로 받고 있었는데 우리 파이브핑거스가 호텔숙식비를 배고 월 6천달러를 받는 것은 매우 파격적인 대우였다.

 바하두리안과 계약을 맺고 방콕으로 돌아온 영일형은 “호박이 덩굴째 굴러 들어왔다”며 기뻐했다.

 우리들은 영일형을 왕처럼 우러르며 밤새 기쁨의 눈물을 흘렸다.

 미지의 땅 베이루트를 향했을때는 그렇게도 절망적이고 불안한 상황이었는데 최고의 조건으로 계약하고 돌아왔다는 것은 그 무엇보다도 더한 환희였다.

 우리들은 다음날부터 새로운 기대에 부풀어 신발람 난 연습을 했다. 절망속에서 얻은 희망인만큼 최신팝송의 레퍼토리를 완벽하게 준비했다.

 그때 가장 인기있었던 곡은 홍신윤 씨가 새롭게 편곡한 제임스 테일러의 ‘당신에겐 친구가 있어’(You’re Got A Friend) 였는데 우리들은 그곳에 가장 비중을 두고 연습했다.

 드디어 약속한 날짜가 다가오자 베이루트에서 오만행 항공권이 왔다. 우리들은 모두가 새롭게 펼쳐질 신세계에 대한 기대로 며칠동안 밤을 설쳤다. 동양의 작은 나라에서 유럽의 관문 오만은 그만큼 머나먼 나라였던 것이다.

 

 <정리=서울분실 김순환기자>  옮긴이 김재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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