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을로 소풍 오세요
마을로 소풍 오세요
  • 진영란
  • 승인 2019.05.23 16: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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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을을 너무도 쉽게 공부할 수 있는 방법

 “선생님, 마을로 소풍 오세요. 선생님 나들이 좋아하시잖아요. 저희가 지원해드릴게요!” 우리 지역에 대한 공부를 하고 싶어서 지역 지도를 펼쳐놓고 고민만 하고 있던 차에 진안군 마을만들기 지원센터에서 일하시는 율성이 어머님의 반가운 제안이다. “마을 소풍이요? 그거 정말 좋은 생각이네요! 아이들과 정말 하고 싶었던 공부예요!” 진안군에 대해 공부해야하는 3학년 선생님과 머리를 맞대고, 가고 싶은 마을을 정했다. 우리가 가기로 한 마을은 동향면의 봉곡마을, 정천면의 학동마을이었다.

 마을만들기 지원센터에 있는 마을 소개지를 한 뭉텅이씩 들고 와서 마을 공부를 시작했다. 마을 지도를 펼쳐놓고 우리가 갈 곳들을 훑어 보았다. “선생님! 마을 이름이 왜 봉곡이에요?”, “동향면은 왜 동향면이에요?”, “여긴 수박이 특산품이네요.”

아이들과 우리가 갈 마을에 대해 알아보는 일은 참 신 났다. 씨 없는 곶감이 유명하다는 학동마을까지 조사를 마치고 우리는 마을 소풍을 떠났다.

 마을만들기 지원센터에서 제공해 준 버스를 타고 봉곡마을에 도착했다. 아이들이 가장 가보고 싶어한 봉곡교회 건물은 정말 시원했다. 아담하고 정갈한 교회에서 스트로베일 하우스의 우수한 단열을 몸소 체험했다.

이어 봉곡마을 어르신들이 옛날부터 사용하시던 물건들을 모아 둔 마을 박물관에 도착했다. 이곳에는 어르신들께서 아끼시던 물건과 추억들이 고스란히 정리되어 있다. 아이들은 물건 하나하나가 신기한지 박물관에서 떠날 줄을 모른다. 마을 해설사는 “일어난 시각 6시 20분. 오늘은 늦잠을 잤다...”로 시작하는 봉곡초등학교 5학년 오빠의 일장을 읽자마자 아이들이 놀라서 함성을 지른다. “6시 20분이 늦게래. 겁나게 부지런하다!” 오빠의 부모님께서 쓰신 듯한 가계부에서는 소풍 용돈으로 100원을 지출했다는 것을 보고, 그 당시의 물가를 짐작할 수도 있었다.

 학동마을은 씨 없는 곶감의 원조격인 마을이다. 마을에 2~3백년 된 시조감나무가 있고, 마을마다 아담한 골목이 굽이굽이 정겨운 곳이다. 마을 숲과 계곡에 조성된 물놀이터는 여름 휴양지로 으뜸이라고 한다. 마을 어르신들께서 마을 특산품으로 만든 만두소로 만두를 빚는 체험을 했다. 마을 사무장님이 마을 숲에 숨겨 놓은 미션지를 찾아서 모둠별로 마을을 둘려보면서 답을 찾았다.

그렇게 마을 꼭대기쯤에 다다랐을 때, “저 집이 한국 전쟁 때 유일하게 불타지 않은 집이에요”라고 설명하셨다. 아이들은 일제히 그 집으로 몰려 들었고, 마침 할아버지께서 툇마루에 앉아서 볕을 쬐고 계셨다.

“안녕하세요? 저희는 부귀면에 있는 장승초등학교에서 왔어요. 할아버지, 6·25 때 안 무서우셨어요?” 옆에 있던 찬우가 할아버지께 큰소리로 묻는다. “무서웠지. 그래서 우리는 저기 정천면소재지로 피난가고 집은 비워놨어. 그믄 낮에는 군인이 오고, 밤에는 인민군이 오고 그랬댜. 먹을 것도 없고 얼마나 무서웠는지 몰라.” 아이들이 할아버지 말소리에 귀를 기울인다.

“할아버지, 오래오래 건강하게 사셔요.” “아이고, 이제 갈 곳은 한 군데 뿐이여.” 할아버지는 그렇게 앉아서 우리를 배웅해 주셨다. 골목을 돌아나오는데 할아버지의 쓸쓸한 표정이 자꾸 눈에 밟힌다. 마을 어르신들이 쪄주신 맛난 만두를 먹고 학교로 돌아왔다.

마을에서 맺어진 소중한 인연, 그리고 이야기들. 마을에 간다는 건 참 설레는 일이다.

 바람 쐬듯 마을로 소풍을 갈 수 있다는 당연하지만 떠올리기 어려운 사실을 깨닫게 해준 진안 마을만들기 지원센터 이귀영님께 참 고맙다. 학교 주변 마을을 벗어나 진안의 다른 마을에도 배움의 호기심을 가져주는 우리 아이들도 참 멋지다. 마을에서 마을로 마을을 공부할 수 있는 길을 찾은 것 같다.

 

 

장승초등학교 진영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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