적폐청산과 막말퍼레이드 시대
적폐청산과 막말퍼레이드 시대
  • 안도
  • 승인 2019.05.21 17:33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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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시간은 흘러가지만 한번 입 밖에 낸 말은 그대로 남는다’ 톨스토이의 말이다. 이 명언처럼 말이라는 것은 절대로 함부로 해서는 안 된다. 사실 많은 사람들의 존경과 신뢰를 받는 사람을 보면 꼭 해야 할 말만 하고 평소에는 많은 말을 않았다는 것을 알 수 있다. 그런데 최근 정치인들의 막말이 극에 달했다.

  매스컴도 정치가들의 난무하는 빈말과 막말, 가짜뉴스, 악플 뉴스로 채워져 국민들의 격앙된 분노의 물결이 도를 넘는다. 국가 지도자를 보고 김정은의 대변인이라든지, 청와대를 폭파하자 는 등 눈살을 찌푸리게 하는 막말들이 판을 친다. 아무리 마음에 들지 않더라도 점잖은 말로 경고하면 많은 국민들이 동조한다. 그런데 소위 중진급에 있는 사람들이 막말하면 오히려 반감을 산다.

  네덜란드 신학자 뮈스는 ‘어리석음의 찬미’라는 책에서 인간은 진실을 말하는 혀와 상황에 따라 말하는 2개의 혀를 가졌다고 했다. 그런데 대부분 정치인들은 진실과 사실 관계를 무시하고 상황에 따라 말하는 혀만 사용하여 우선 대중을 끌어 모아 상대진영을 압도하기 위한 자극적이고 엽기적인 천박한 용어를 남발하다 결국은 역풍을 맞게 된다.

  그런데 이런 막말을 부추기는 상황이 더욱 한심스럽다. 얼마 전 임명된 통일부 장관은 막말의 대가였다. 문 대통령이 정당 대표 시절 천안함 폭침 5년을 맞아 강화도 해병대를 방문했을 당시 “군복 입고 쇼나 한다”고 했다. 그리고 김종인 비상대책위원장에게는 “박근혜 대통령이 씹다 버린 껌”이라고 했으며 추미애 대표에게는 “감염된 좀비”라는 표현도 썼다. 박근혜 전 대통령을 “정신병에 가까운 강박증, 평균 이하 저능아, 대화가 불가능한 자폐증”이라고도 했다. 뿐만 아니라 그의 SNS에는 거친 막말은 물론 ‘씨X’, ‘개X’라는 욕설도 난무했다. 그래서 청문회 때 이런 상황들을 신랄히 비판했지만 ‘송구하다’는 한마디에 면죄를 받고 장관이 되었다. 그러니 막말하는 사람들을 나무라는 것은 모순이다.

  정치란 분노와 갈등을 해결하는 장치다. 그러므로 정치가는 개인의 분노와 사회의 갈등을 제도적으로 해결해 주어야 한다. 그래야만 분노와 갈등이 개인과 사회를 파괴하지 않고 건설적인 결과를 낳을 수 있다. 분노와 갈등을 제대로 관리하는 것만으로도 정치는 절반 이상의 역할을 한다.

  하지만 우리의 정치는 그렇지 못하다. 분노와 갈등을 해결하기는커녕 오히려 분노와 갈등을 야기 시킨다. 나아가 정치가들이 먼저 흥분하고 먼저 분노한다. 분노가 없는 곳에 분노의 씨를 뿌리고 갈등이 없는 곳에 갈등을 부추긴다. 최근 정치인들이 극단적인 막말을 너무 자주 한다. 이쯤 되면 정치인들은 어떻게 하면 상대방에게 모욕감을 줄 것인지, 어떻게 하면 분노와 갈등이라는 바이러스를 퍼뜨릴지 연구하는 사람인 것처럼 보인다.

  정권을 잡으면 저마다 그럴듯한 정치 슬로건을 내 놓는다. 의욕이 넘치다 못해서 나중에는 과욕과 객기를 부리다가 용두사미 말 잔치에 그쳤던 경우가 대부분이다. 지난날에도 부정부패척결, 구악일소, 사회정화, 범죄와의 전쟁 등등 비슷비슷 좋다는 건 더 할 게 없을 만큼 다 써먹었건만 아직도 나라가 이 모양 이 꼴이라서 오늘날 적폐청산이라는 새로운 구호를 또 내걸었다. 적폐란 말 그대로 쌓인 폐단이다. 폐단이란 일이나 행동으로 나타나는 옳지 못한 경향이나 해로운 현상이다. 그러한 일이 나는 쏙 빼고 남들이 저지르기만 해서 이루어진 것은 하나도 없다. 그런데도 적폐, 폐단은 불문곡직하고 남만 범죄 취급을 하려고 한다.

  이는 비단 중앙정치에만 국한된 것은 아니다. 요즈음 우리 전북지방의 정가에도 지방의원들의 잇따른 비위와 부적절한 처신과 막말 등으로 물의를 빚으면서 우려의 목소리가 높아지고 있다. 학력위조에 민원 해결 명목으로 뒷돈을 받는가 하면 관용차를 멋대로 몰다 사고를 내자 운전자를 바꿔치기하는 등 도덕적 해이가 위험수위를 넘어서고 있다.

  적폐청산은 또다시 적폐를 낳고, 그 사이에 국민들은 피해자가 된다. 적폐를 뿌리 뽑기에 앞서 보이지 않은 땅속 깊은 곳에서 자라는 적폐청산까지 뿌리 뽑을 수는 없을까?

 안도<전북국어진흥위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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