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용소방대원의 존재 이유
의용소방대원의 존재 이유
  • 장병수
  • 승인 2019.05.20 17: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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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얼마전 연휴 마지막 날 공장 설비 보완을 위해 시내에 가서 부품을 사고 돌아 오는 길이었다. 탁트인 금강연안도로에 접어들자 금강철새조망대 너머에서 시커면 연기가 바람을 타고 길게 늘어져 있었다. 순간 회사로 가야하는 길을 잠시 잊어버리고 연기가 피어오르는 방향으로 운전대를 향했다. 왜? 나는 의용소방대원이니까!

  비록 내 지역의 화재는 아니지만, 엄청나게 피어오르는 시커면 연기를 보니 의용소방대원의 한사람으로서 당연히 현장에서 보조역할을 해야하는 많은 일들이 있을 것이기 때문이다.

  이윽고 인근에 도착해서 보니 생각했던 것보다 화재가 심각했다. 평소 자동차 트렁크에 싣고 다니는 의용소방대 복장을 착용하고 서둘러 현장으로 달려갔다. 마침 바람이 화재 현장에서 대나무 숲과 소나무가 우거진 산과 주택쪽으로 불고 있었기 때문에 이미 산 곳곳에서도 불꽃이 피어오르고 있었다. 더 심각한 것은 산 가장자리에 대나무 숲이 길게 이어져 있었으며 바로 그 밑에 주택들이 있었기 때문에 소방관들의 화재 진압은 곳곳에서 사투를 벌여야만 했다. 특히 폐플라스틱 재활용 공장에서 발생하는 유독가스 때문에 소방관들은 산불 진압 현장과 주택 보호를 위한 살수 현장에서도 방독면을 착용하고 화재진압을 해야하는 이중고를 겪고 있었다.

 그때 마을 안쪽에서 고령의 주민 한 분이 “우리 집 다 타게생겼어요. 어떻게 좀 해주세요”라고 외치며 발만 동동그리고 있었다. 나는 그 주민에게 다가가서 진정을 시키며 “소방차가 들어오니 안심하세요”라고 말하고 산 가장자리의 대나무 숲과 붙어있는 주택으로 가서 먼저 가스통을 격리시켰다. 불과 10여미터 대나무 숲에서 불길이 주택을 향해 다가오고 있었다. 순간적으로 화마가 주택을 삼킬 것으로 생각할 정도로 심각했다. 그때마침 소방차가 주택에 최대한 근접하게 진입했다. 곧바로 소방호스를 길게 느리는 작업이 진행됐다. 나도 둘둘 말린 소방호스를 들고 달려가 중간중간 이어주는 역할을 했다. 평지가 아닌 곡몰길과 밭이랑을 지나 산으로 이어지는 호스 연결 작업은 의용소방대 교육을 받은 나로서도 버거웠다. 상황이 급박한지라 살수를 중단하고 소방호스를 연결할 수가 없어서 고압살수를 하면서 호스를 연결하는 소방관들의 노하우를 보며 화재로부터 주민의 피해를 최소화하려는 노력이 였보였다.

  내가 그날 화재현장에서 목격한 것은 도시에서 발생한 화재진압보다 농촌에서 발생하는 화재 진압이 훨씬 힘들고 복잡하다는 것을 알았다. 콘크리트 바닥인 도시 화재 현장에서는 소방호스 느리기나 이동이 손쉽게 이루어질 수 있는 반면, 농산촌 화재 현장에서는 지형적인 복잡함과 흙바닥으로 인해 여러 난관을 극복해야 하는 이중고를 느낄 수 있었다. 이러한 특성 때문에 누군가의 보조 역할이 필요하다면 그게 바로 지역의용소방대일 것이며, 지역의용소방대원이 존재하는 이유일 것이다.

  지금도 그날 화재 현장을 생각하면 마음이 짠하다. 하나는 물에 젖은 산비탈에서 수없이 미끄러져 넘어지면서도 소방호스를 끌고 살수하던 소방관. 또 하나는 화재 진압 중 얼마나 갈증이 심했으며 “의용소방대원님 마실 좀 가져다 주세요”라고 외치던 소방관. 비록 의용소방대원으로서 소방호스를 운반하고, 끌어주며 생수 한 병 건네준 것이 전부였지만 그 날 만큼은 의용소방대원이라는 것에 긍지와 자부심을 가진 하루였다.

  군인이 왜 필요한가? 전쟁도 일어나지 않았는데. 마찬가지로 지역의용소방대원이 왜 필요한가? 매일 그 지역에서 화재가 발생하는 것도 아닌데. 결론은 군인도 지역의용소방대원도 불시에 발생하게 되는 한 번의 경우의 수를 대비해서 훈련하고 존재하는 것이 아닌가 싶다. 오늘도 화재 현장에서 국민의 생명과 재산을 보호하기 위해 헌신을 다하는 소방관과 의용소방대원들의 땀의 가치가 존중되었으면 좋겠다.

 장병수 군산시 개정남성의용소방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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