운명과 하심
운명과 하심
  • 김동수
  • 승인 2019.05.19 17: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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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하늘도 나를 어쩌지 못하리

 “네 운명을 사랑하라.”이는 니체의 말이다. 이 말은 운명에 복종하라는 말이 아니다. 피할 수 없는 것이 운명이니 그것을 부정하거나 외면하려 하지 말고 주어진 상황을 받아들일 때, 비로소 인간은 자기의 운명을 창조적으로 개척할 수 있다는 것이다.

 기원전 2세기, 아프가니스탄 지방에 메난드로스란 왕이 있었다. 그는 종교 지도자들과 토론하기를 즐겨, 하루는 승려 나가세나와 인간의 서로 다른 운명에 대해서 물었다. ‘존자여, 어째서 사람들은 서로 평등하지 않은 운명을 타고났습니까?’ 그러자 나세나가 ‘대왕이시여, 그건 업(業)이 각기 다르기 때문입니다.’라고 답한다. 결국, 사람의 운명이란 업에 따라 결정되어 지는 것이니 운명을 수용하라는 말이다. 이러한 운명 수용론은 결코 이것이 내 운명이라고 결론짓는 패배적 숙명론이 아니라, 우리의 운명은, 자신이 어떤 마음으로 어떻게 행동하느냐에 따라 달라질 수 있다고 하는 긍정적 자세의 연기론(緣起論)이 그 바탕에 깔려 있다.

 중국 명대(明代)에 원황이라는 사람이 『요범사훈(了凡四訓』이라는 책에서, 허물을 고치고, 선행을 함으로써 운명을 바꾸는 법을 불교의 인과 법칙에 의해 설명하고 있다. 공덕을 쌓고 수행을 하면 팔자도 고칠 수 있다는 요지인데, 그것이 곧 하심(下心)과 인욕(忍辱)과 적선(積善)이라는 것이다.

 운명을 창조하는 과정에서 가장 중요한 것이 ‘하심(下心)’이라 했다. 겸허가 바로 하심이다. 모든 중생들은 불성(佛性)을 지니고 있기에 자기의 마음을 낮추고 상대방을 공경하는 마음, 그러기에 ‘나’는 ‘나다’고 하는 아상(我相)과, ‘내가 옳다’고 하는 아집에서 벗어나 하심을 갖게 되면 만물이 편안해져 비로소 자신이 운명의 중심이 될 수 있다는 것이다.

 인욕(忍辱)수행은, 아무리 억울하고 창피한 일이 있더라도 참고 인내하며 그걸 겸허한 마음으로 묵묵히 받아들이는 마음이다. 오늘 나의 욕됨은 현재의 허물뿐이 아니라 전생에 지은 악업 때문인지도 모르는 일이기에, 그걸 참고 견디게 되면 악운도 막을 수 있다는 것이다. 자기의 자존심을 건드리고, 자기의 진심을 알아주지 않고, 자기의 약점을 건드렸기에 화가 난다면, 이는 곧 ‘나’라고 하는 아상에 집착되어 그걸 아직 버리지 못하고 있기 때문이다.

 끝으로, 적선 수행, 곧 공덕(功德)을 쌓는 일이다. 남에게 이로운 것은 선(善)이고, 자신에게 이로운 것은 악(惡)이라는 생각, 그러기에 남을 꾸짖고 나무라더라도 그것이 남을 위하는 마음이라면 선이 될 수 있고, 아무리 남을 공경하고 예의를 갖추었다 할지라도 그것이 자기를 위하는 것이라면 악(惡)이 된다는 말이다.

 흔히들 운명론을 말하지만, 그 운명도 결국엔 내 자신이 만드는 것이다. 인생을 살아가면서 큰 꿈을 갖고 사는 것도 중요하지만, 뜻대로 되지 않는 게 또한 인생이다. 그러기에 젊은이들에게 꿈을 가지라고 말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그것에 못지않게, 시련에 직면할 때마다 참고 견딜 줄 아는 인욕과 하심(下心)을 길러주는 일도 중요하다. 당신의 미래란, 당신이 만든 그대로이기 때문에, 지금 이 순간부터 당신의 생각과 행동 여하에 달렸다.

 ‘하늘이 나에게 복을 적게 내리면, 내 스스로 덕을 두텁게 쌓아 극복하고, 하늘이 내 형편을 고난에 놓이게 하면, 나는 내 마음을 스스로 편안하게 하여 그것을 보충한다. 하늘이 나의 처지를 액운에 놓이게 하면, 나는 내가 만든 도(道)로써 그 역경을 뚫을지니, 하늘도 결국 나를 어쩌지 못할 것이다’. 공(孔) 도인이 요범 원황에게 준 또 하나의 법문이다.

 김동수<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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