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유해야 할 가치 ‘무소유’
소유해야 할 가치 ‘무소유’
  • 박인선
  • 승인 2019.05.19 16:31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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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도의 설치미술작가 수보다굽타(Subodh Gupta)의 작품 ‘Ray’파라다이스시티 야외설치(파라다이스블로그 캡쳐)
인도의 설치미술작가 수보다굽타(Subodh Gupta)의 작품 ‘Ray’파라다이스시티 야외설치(파라다이스블로그 캡쳐)

 책 한 꾸러미가 배달되었다. 친분이 있는 스님께서 법정스님이 출간했던 책들을 모아서 보내주었다. 출간되었던 책들이 스님의 유언에 따라 절판된다면서 보낸 귀한 선물이었다. 그중에는 읽은 책도 있었지만 작은 문고판의 ‘무소유’는 그때 처음 접했다. 해마다 초파일에는 사찰을 찾아 하루를 보내는 것이 연례행사였는데 올해는 선약이 있어 가족들과 함께 하지 못한 아쉬움이 남았다.

 법정스님 하면 무소유가 생각날만큼 생전에 자신의 철학을 실천하면서 수행한 아름다운 모습이 생생하다. 그러나 글자 그대로라면 어느 누가 실행하고 수긍하겠는가? “무소유란 아무것도 갖지 않는다는 것이 아니라, 불필요한 것을 갖지 않는다는 뜻이다. 우리가 선택한 맑은 가난은 부보다 훨씬 값지고 고귀한 것이다”라는 스님의 말씀처럼 군더더기 없는 삶을 얘기한 것이다.

 문명의 발달은 거스를 수가 없다. 그렇다고 지금과 같은 폭주를 그대로 방치하다가는 언젠가 과부하를 견디지 못할 것이다. 이렇다 보니 적당한 브레이크가 필요할 즈음이다. 이런 까닭에 무소유의 의미는 고도문명사회를 지탱하는 지혜로운 메시지가 된다. 1차 세계대전이 끝날 무렵 미술운동에서도 다다이즘이라는 장르가 탄생한다. 문명에 대한 도전을 선언하게 되는데 이 또한 인간의 욕망을 질타하는 부분이다.

 고물상에서 작업을 하다보니 쓸 만큼 쓰고 난 물건들이 있는가 하면 멀쩡할 정도로 깨끗한 물건들이 폐기물로 들어온다. 옛날 같으면 대를 이어 쓸 물건들이다. 이런 폐기물들을 가지고 작업하는 입장에서는 수혜자인 셈이지만 마냥 즐겁지만은 않다. 쉽게 버리고 과도한 씀씀이는 물론 우리 안에 존귀함에 대한 것까지 앗아가는 것 같은 마음을 지울 수가 없으니 말이다.

 정크아트 공모전에 참가 한 어느 해에 심사위원 한 분이 전시안내책자에 이런 심사평을 남겨주었다. “(중략) 크고 작은 주전자로 만든 작품은 그 발상이나 표현이 조형적으로 흥미로웠지만 환경문제와 어떤 관계이며, 매우 깨끗해서 새것처럼 보이는 주전자는 정크아트와 어떻게 관계하는지 알 수 없었습니다. ”그러나 버려진 것으로 작품을 한 것은 분명했다. 이처럼 너무나 깨끗한 물건들이 쉽게 버려지는 것을 선택할 뿐이었다. 포장도 벗기지 않은 물건들이 폐기물로 나오기도 한다. 물론 용처가 없으니 쓸모 있는 물건이 아니다.

 새것으로 작품을 만든 것 같은 의문을 가진 심사위원은 아마도 이렇게 버려지는 오늘의 현상을 단적으로 정크아트와 더불어 꼬집고 싶었을 것이다. 하지만 지적하는 말이 거슬리지는 않았다. 심사평의 이면에는 불필요한 소비에 대한 아쉬움과 더불어 환경이 갖고 있는 문제에 대한 도발적 메시지를 요구하고 싶었을 것이다.

 얼마 전 아침 다큐프로그램에서 아프리카에서 취업차 들어왔다가 한국인과 결혼해 성실하게 다문화가정을 꾸려가고 있는 모습이 방영되었다. 세간살이는 버려진 중고품들을 구입하거나 얻어와 알뜰한 생활이 눈길을 끌었다. 주인공은 버려진 폐기 생활용품들을 손질해서 자기네 나라로 수출하는 사업을 생각한다고 했다. 쓸만한 물건들이 버려지는 것을 보고 착안한 사업은 좋은 생각이지만 우리의 민낯을 보는 것 같았다.

 사회가 다변화되면서 공유경제라는 새로운 패러다임이 생겨났다. 어느 한편에서는 불편한 목소리도 터져 나온다. 급기야는 물리적 충돌을 불사할 태세이다. 정치권도 가세하고 있다. 서로가 네 탓이라면서 막말들을 뱉어내고 있다. 우리사회가 급격한 갈등을 표출하고 있다. 이해관계의 충돌이라지만 마음의 여유까지 불식당하고 있는 것이다. 이제 성숙한 시민사회를 위한 모두의 노력이 필요하다. 더불어 지금 우리에게 소유해야 할 가치는 ‘무소유’가 아닐까 생각된다.

 글 = 박인선(정크아트 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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