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실에서 추사 김정희가 쓴 금석문 발견
임실에서 추사 김정희가 쓴 금석문 발견
  • 김미진 기자
  • 승인 2019.05.16 18: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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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법 연구 큰 도움 기대
최성간 묘비 전경

 조선 후기를 대표하는 서화가 추사(秋史) 김정희(1786∼1856)가 만년에 쓴 것으로 보이는 글씨가 전북 임실에서 발견됐다.

전라금석문연구회(회장 김진돈)와 임실문화원(원장 최성미)는 16일 “임실군 신덕면 수천리에 있는 전주최씨 만육파 후손 최성간(1777∼1850) 묘비를 분석한 결과, 묘비의 앞쪽 글씨를 추사가 썼다는 사실을 확인했다”고 밝혔다.

 김진돈 회장은 “수년 전, 지금은 고인이신 손주항 의원의 제보로 온 산을 뒤진 적이 있는데 그 때는 찾을 수가 없었다”며 “이번에 임실군에 제보가 들어와 정확한 위치를 알 수 있었고, 현장조사를 할 수 있게 되었으며, 발견된 금석문이 학계에 보고된 적은 없다”고 설명했다.

 이어 김 회장은 “추사의 필획을 조사하기 위해 서홍식 전북서도협회 회장과 함께 탁본을 실시했는데 추사만의 독특한 좌우 대칭을 이룬 균형 있는 필획이 나타났다”며 “예서(隷書·고대 서체인 전세를 간략하게 만든 서체)로 쓰면서도 ‘중’(中)자와 ‘사’(事)자 등에서는 해서(정자체) 특징이 보인다”고 말했다.

비석 앞면
비석 앞면

 추사 연구자의 권위자인 박철상 박사도 “묘비 글씨는 추사체가 완성돼 가던 시기에 썼다는 점에서 김정희 서법 연구에 큰 도움이 되는 자료로, 이 시기 추사의 예서는 많지 않다”며 “전서, 예서, 해서 등 여러 서체를 섞어놓은 듯한 모습이 확인된다”고 강조해 이번 발견에 힘을 보탰다.

박 박사는 이어 “사람 인(人)자는 추사가 말년에 종종 사용한 형태의 글씨인데, 비문에서는 처음 발견됐다”며 “전체적으로 장중하면서도 짜임새가 있어 김정희가 말년에 남긴 묘비 금석문 대표작이라고 할 만하다”고 평가하며 의미를 덧붙였다.  

최성간 묘비 글은 조카인 최한중이 1851년 10월에 지었다. 그런데 김정희는 1851년 7월에 함경도 북청으로 유배됐기 때문에 당시에는 바로 글씨를 쓰기 어려울 것으로 보이며 이듬해 10월 해배 이후 쓴 것으로 추정된다.

비석 음기
비석 음기

 묘비 뒤쪽 글씨는 추사 외가인 기계유씨 가문 유화주(1797∼1860) 작품으로, 비석을 세운 장소는 ‘임실(任實) 하신덕면(下新德面) 율치(栗峙)’로 기록하고 있어 지명 연구에도 도움이 된다는 설명이다.

 유독 전북지역에서 추사의 글씨가 담긴 금석문이 다수 발견되고 있는 점도 주목된다. 최성미 원장은 “임실지역은 이번에 발견된 최성간 비석을 포함해 비석 3개와 편액 3개가 있어 명실상부한 추사 금석문의 메카라고 해도 지나친 말이 아닐 것이다”고 설명했다.

 김미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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