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월, 이팝나무 꽃
오월, 이팝나무 꽃
  • 김석기
  • 승인 2019.05.16 17:59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국립 5·18민주묘지로 가는 도로 양쪽에는 이팝나무들이 늘어서 있다. 이팝나무는 꽃의 생김새가 쌀과 비슷하게 생겨 ‘쌀밥나무’로 불린다. 꽃잎은 가느다랗게 네갈레로 나뉘어져 있고 꽃잎 하나하나는 뜸이 잘 든 하얀 밥알 같다. 꽃망울을 터트리기라도 하면 하얀 꽃무리가 이리저리 흔들리며 마치 군무를 추는 듯하다. ‘영원한 사랑’을 꽃말로 지닌 이팝나무 꽃은 오월 광주의 상징이기도 하다. 1980년 당시 주먹밥을 나누면서도 결코 민주주의를 포기하지 않았던 광주시민들의 ‘정의를 위한 외침’에서 연유하지 않았나 싶다.

  다시 그날이 다가온다. 서른 아홉돌, 1980년의 우리 국민들은 이 땅에 민주화라는 꽃을 피우고 싶어 했다. 그리고 그 중심에 광주가 있었다. 그날 총성 소리에 무수한 꽃잎들이 하릴없이 지고 말았다. 젊음, 희망, 가족, 친구와 같은 사랑하는 것들과 영영 이별이었다. 그들의 희생이 우리에게 정의와 민주주의가 얼마나 소중한 것인지를 새삼 일깨워 주고 있다.

  유네스코 세계기록유산으로 등재된 5·18민주화운동, 39년의 세월이 흘렀음에도 아직 온전한 진실이 규명되지 않은 미완의 역사로 남아 있다. 오월 광주를 마주하며, 어떤 이는 괴롭고, 어떤 이는 역사를 부정하고, 어떤 이는 무관심하다. 그리고 고장난 카세트테이프처럼 되풀이되는 숱한 왜곡의 말들... 누군가의 말처럼 5?18민주화운동이 세계사에 남는 것보다 국내사에 남는 것이 더 어려운 것일까?

  지난해 38주년 기념식장. “광주는 이제 정의의 다른 이름이 되었습니다” 마사 헌트리여사의 애절한 목소리가 기념식장의 빗줄기를 뚫고 울려 퍼졌다. 그녀는 광주의 진상을 기록하고 해외에 알렸던 찰스 베츠 헌트리 목사의 부인으로 이날 진실을 알리는 역사의 무대에 섰다. 유족과 시민들은 그녀의 용기에 뜨거운 박수를 보냈다. 더 이상 온전한 진실과 정의를 외면해서는 안 된다는 다짐이기도 했다.

  5·18은 비단 광주만의 이야기는 아니다. 당시 전국적으로 민주주의 회복과 군사정권의 등장을 저지하려는 시위가 일어났고, 신군부는 5월 17일 자정을 기해 비상계엄령을 전국으로 확대·선포한다. 그리고 전북대학교에도 공수부대원이 들이닥쳤고, 5월 18일 새벽 1시. 학생회관에서 농성 중이던 이세종 열사는 건물 옥상으로 쫓겨올라갔다가 추락하여 싸늘한 주검으로 발견된다. 온 몸에 구타로 인한 상흔이 선명한 채로 말이다. 스물 한 살의 꽃다운 청춘은 5·18민주화운동 첫 희생자가 되었다.

  오늘 팔복동 철길에서 흩날리는 이팝꽃을 본다. 하얀 꽃 덕분에 거리가 밝아지고, 하늘도 더 파래지고, 사람들의 발걸음도 가벼워진다. 그리고 잊고 있었던 그날도 되살아난다. 역사란 단순히 과거에 일어난 사건의 기록만은 아니다. 현재를 관통하며 미래를 비추는 등불이다. 보훈은 과거의 헌신에 대한 감사이자, 현재의 기억이며, 미래에 대한 약속일 것이다. 기억과 보훈은 단순히 과거를 바라보는 것이 아니라 더 나은 미래로 향하는 길이 된다. 정의를 위해 피 흘린 민주영령을 기억하고 다지는 모두의 발걸음이 분주하다. 

 김석기 전북동부보훈지청장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