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세대 인권 변호사 한승헌이 전하는 한국현대사 속 장면
1세대 인권 변호사 한승헌이 전하는 한국현대사 속 장면
  • 김미진 기자
  • 승인 2019.05.15 18: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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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분을 생각한다’

 “이 세상에는 자기를 죄인이라고 생각하는 의인이 있는가 하면, 자기를 의인이라고 생각하는 죄인도 있다. 우리는 자칫 자신이 의인이라고 착각하는 죄인이 되어가고 있지 않은가 하는 준엄한 자기 성찰을 게을리하지 말아야 한다”

가정법 개정운동을 전개하고 한국가정법률상담소를 여는 등 불평등한 제도에 신음하는 여성들의 목소리에 귀를 기울인 양성평등운동의 선구자 이태영 변호사(1914~1998)를 술회하면서, 한승헌 변호사는 이 같은 준엄한 일침을 놓았다.

 얼마든지 화려하고 편하게 살 수도 있는 환경이었으나, 그런 영화를 버리고 굳이 힘든 일에 뛰어든 변호사의 신념과 용기에 보내는 찬사일 터이며 여전히 불공정한 모습으로 위태롭게 서 있는 이 사회에 던지는 메시지인 것이다.

 한국현대사 속에서 굵직한 사건들의 변론을 도맡았던 1세대 인권 변호사 한승헌이 한국현대사 속 장면들을 한 권의 책에 담았다.

 ‘그분을 생각한다(문학동네·1반5,500원)’에서 저자는 이 땅에 민주주의와 인권, 정의와 평화가 싹트기 시작한 값진 순간들을 포착하고, 27명의 잊을 수 없는 사람들의 이름을 불러낸다.

 바로, 세상을 바로잡겠다며 헌신한, 어려운 상황 속에서도 바른길을 지키며 살아간 ‘그분’과의 추억을 진솔하게 펼쳐놓은 것이다.

 책 속에는 겨레의 스승 함석헌 선생을 비롯해 한국 앰네스티 초대 이사장 김재준 목사, 동백림 사건으로 옥고를 치른 이응노 화백과 천상병 시인, ‘광주의 어머니’ 시민운동가 조아라 선생, 북한에서 만난 고교 선배 인민예술가 정창모 화백, 김대중, 문재인 전현직 대통령에 이르기까지 국경과 지휘 고하, 남녀를 막론하고 현대사의 한 획을 그은 거목들의 모습을 포착해내고 있다.

 그렇다고 해서 각각의 글들이 유명인사들의 평전이나 일대기로 갈음하고 있는 것은 아니다. 저자는 인물이나 행적에 어떠한 미화 각색 없이, 그들의 삶이 민낯 그대로가 전해질 수 있도록 담담하게 글을 써내려 간다.

 먼저, 한 인물이 처했던 시대상황과 삶의 행보를 넓게 잡고, 이어 자신이 직접 교감하고 확인했던 인간적 측면을 풀어내는 방식으로 접근해 전인적 평가가 이루어지도록 힘쓴 것이다.

 페이지 속에 새겨진 저자와 교감한 인물들은 공통점이 있다. 모두 자신의 이익보다 남을 위한 일에 뛰어들었다는 점이다. 그 솔직하고도 담백한 모습은 현재의 우리 사회를 새삼 돌아보게 만든다.

 저자는 머리말을 통해 “참으로 감사하게도, 내가 접한 인물 중에는 메마르고 야속한 이 세상과 이웃을 위해서 ‘사서 고생 하는’분들이 많았기에, 그들의 삶을 널리 알려서 독자 여려분들의 인생역정에 아름다운 도반으로 삼도록 했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머리를 들었다”고 밝혔다.

 전북 진안 출생으로 전주고와 전북대 정치학과를 졸업하고 고등고시 사법과에 합격한 뒤 검사생활(법무부, 서울지검 등)을 거쳐 변호사로 전신했다. 독재정원 아래에서 탄압을 받는 양심수, 시국사범의 변호와 민주화, 인권운동에 힘을 기울였다.

 김미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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