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트 떠난 ‘한국최초 NBA 리거’ 하승진…KCC의 전성기 이끈 주역
코트 떠난 ‘한국최초 NBA 리거’ 하승진…KCC의 전성기 이끈 주역
  • 연합뉴스
  • 승인 2019.05.14 19: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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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내 ‘최장신 센터’ 하승진이 은퇴를 선언했다. 한국 농구에 많은 족적을 남기고 15년간의 프로 생활을 마무리했다.

삼일상고-연세대를 나온 하승진은 221㎝라는 큰 키 때문에 어린 나이부터 주목을 받았다.

그는 연세대 진학 후 예비 1학년 자격으로 출전한 2003-2004 농구대잔치에서 연세대를 우승으로 이끌었다.

이후 하승진은 모든 농구선수의 ‘꿈의 무대’인 미국프로농구(NBA) 문을 두드렸다.

몇몇 구단이 그의 압도적인 신장을 눈여겨봤고, 2004년 NBA 신인드래프트 2라운드 17순위, 전체 46순위로 포틀랜드 트레일블레이저스 유니폼을 입었다.

농구 기술이 부족했던 그에게 NBA 무대는 녹록지 않았다. 대부분의 시간 동안 벤치를 지켰다.

2시즌을 뛰며 46경기에 출전했고, 평균 출전 시간은 6.9분에 그쳤다. 평균 기록은 1.5점 1.5리바운드였다.

2006-2007시즌을 앞두고 하승진은 밀워키 벅스로 트레이드됐다.

이후 하부리그인 D-리그(G-리그의 전신)에서 뛰며 평균 2.7점, 2.8리바운드의 성적을 냈다.

2008년 더는 미국에서 경쟁이 힘들다고 판단한 그는 국내 복귀를 선언했다.

2008년 프로농구 신인드래프트에 참가했고, 전체 1순위로 전주 KCC의 지명을 받았다.

신인 시절 그는 경기당 평균 22분을 뛰며 10.4점 8.2리바운드를 기록했다. 신인왕은 그의 차지였다.

대형 신인을 영입한 그는 2008-2009시즌 챔피언결정전(이하 챔프전)에서 서울 삼성을 꺾고 우승을 거머쥐었다.

2009-2010시즌 챔프전에서 울산 현대모비스(당시 모비스)에 밀려 준우승에 그친 KCC는 2010-2011시즌 하승진의 맹활약을 앞세워 1년 만에 왕좌를 되찾아왔다.

하승진은 원주 DB(당시 동부)와 치른 챔프전에서 김주성을 상대로 선전하며 팀의 우승을 이끌었고, 챔프전 최우수선수(MVP) 수상의 영예를 안았다.

하승진은 2009-2010시즌과 2010-2011시즌 연달아 정규리그 베스트 5에 선정됐다.

KCC는 하승진의 합류 후 3시즌 동안 2회 우승, 1회 준우승을 일궈내며 전성기를 보냈다.

2010년 광저우 아시안 게임에서는 태극마크를 달고 출전해 한국의 은메달 획득을 도왔다.

2015-2016시즌 하승진은 한 차례 더 베스트 5에 이름을 올렸고, KCC는 챔프전에 진출했으나 준우승에 그쳤다.

하승진의 누나 하은주 역시 한국 농구 역사에 이름을 남긴 명 센터다.

동생만큼이나 큰 키(202㎝)로 골 밑을 호령했던 그는 여자프로농구 인천 신한은행에서 활약하며 ‘신한 왕조’를 이끌었다.

2006년에는 미국여자프로농구(WNBA) LA 스파크스와 입단 계약을 체결해 하승진과 더불어 ‘남매 빅리거’가 나올 것이라는 기대를 모았으나, 개인 사정으로 팀에 합류하지는 못했다.

하승진은 공익근무요원으로 복무한 두 시즌을 제외하고 프로농구에서 9시즌을 뛰며 경기당 평균 11.6점 8.6 리바운드의 기록을 남겼다.

정규리그 출전 경기는 347경기였고, 플레이오프와 챔프전까지 합치면 410경기에 달했다.

얼마 전 끝난 2018-2019시즌에도 하승진은 쏠쏠한 활약으로 팀의 4강 플레이오프 진출을 도왔다.

현대모비스와의 4강 플레이오프에서는 코뼈가 골절되는 부상에도 마스크를 쓰고 경기를 뛰며 투지를 불태웠다.

KCC는 시즌 종료 후 자유계약선수(FA)가 된 하승진과의 재계약을 포기했고, 그는 다른 팀으로의 이적 없이 은퇴를 택했다.

하승진은 SNS를 통해 “‘KCC에서 몸과 마음, 열정을 불태웠던 선수’로 기억해 주셨으면 좋겠다”며 “KCC가 좋은 선수도 영입하고, 기존 선수도 성장해 예전의 명성을 되찾고 우승에 도전하기를 응원한다”고 전했다.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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