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년 문화수도에 스토리를 입혀보면
천년 문화수도에 스토리를 입혀보면
  • 이상직
  • 승인 2019.05.12 14:35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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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서커스는 곡예와 묘기로 눈길을 사로잡는 마술같은 공연이다. 우리나라 최초 서커스단은 1925년 결성된 ‘동춘 서커스’로, 어르신들이 추억을 그리워하며 공연장을 찾는다. 하지만 요즘 젊은이들에게 있어 대표적인 서커스 공연은 ‘태양의 서커스’다. 1984년 캐나다 퀘벡 근처 작은 마을인 배생폴(Baie-Saint Paul)에서 시작된 태양의 서커스는 고비용 구조의 동물쇼를 없애는 대신, 음악에 맞춰 곡예묘기를 보이는 기존 서커스의 개념에 스토리와 무용 등 창의성을 가미하며 블루오션을 창출하였다. 19개국 61개 도시 8백만명의 관객이 관람했고, 우리나라에서는 지난해 ‘태양의 서커스 쿠자’가 공연 부문 최고의 흥행성적을 달성하여 86회 공연, 258억원의 수익을 거뒀다.

 이제는 역사 속으로 사라져버린 동춘 서커스와 세계적으로 꾸준한 인기를 얻고 있는 태양의 서커스, 이 두 공연의 다른 점은 ‘스토리의 유무(有無)’다. 스토리텔링이 주는 감동은 관객들의 마음속에 기억으로 남아 두 번, 세 번, 다시 공연을 찾게 하는 원동력이 된다. 

 필자는 전북의 지속가능한 성장을 위해 국제공항도시, 금융도시, 농생명바이오도시, 미래차도시, 문화도시 등 내생적 발전모델로 주장해왔다. 특히 전북은 전국에서 가장 많은 91개의 무형문화재룰 보유하고 있고, 전통문화창조센터, 국립무형문화유산원, 한국소리문화의전당 등 전통문화 인프라를 충분히 보유한 역사와 전통이 오롯이 살아 숨 쉬는 천년고도이다. 

 그러나 통계청의 ‘2017년 전국사업체 조사’에 따르면 출판업, 영상·오디오 기록물 제작 및 배급업, 방송업, 창작·예술 및 여가관련 서비스업 등 전북의 문화관련 사업체수는 전국 대비 2.3%, 종사자는 1.6%에 불과하다. 전북의 지역총생산(GRDP)은 48조원으로 전국 1,731조원에 비해 2.8%도 못 미치는데, 이는 서울 56.2%, 경기 19.3%에 비해 턱없이 뛰떨어지는 수준이다. 전북의 1인당 총소득(GNI) 또한 전국 16개시도 중 최하위이다.

 필자는 작년 하반기 VIP 유럽 순방길을 동행하며 베를린을 다녀왔다. 무너진 베를린 장벽은 설치미술의 장벽으로 탈바꿈 되었고, 전세계 예술가들이 가장 살고 싶어하는 도시가 되었다. 2001년부터 13년간 베를린 시정을 이끈 클라우스 보베라이트 시장은 ‘문화는 베를린의 본질적인 미래자산’이라는 슬로건으로 예술도시의 깃발을 높이 들었다. 기업들이 등을 돌린 도시에 예술이 들어서면서, 문화산업에 10% 이상이 종사하며 경제의 20% 이상을 담당하고 있다. 실제로 시 당국은 외국 작가들에게도 아틀리에를 제공하고 있으며, 가난한 예술가들에게 무료 의료보험 혜택과 작업공간을 제공하는 등 예술생태계 형성에 적극적이다. 풍부한 문화적 토양을 토대로 도시를 재창조 하려면 두 가지가 필수적이다. 하나는 기술과의 융합으로 전통과 미래를 접목시키는 것이며, 다른 하나는 무(無)에서 유(有)를 창조하는 기업가정신이다. 

 베를린 귀국길에는 마침 전북 출신인 방시혁 대표가 이끌고 있는 방탄소년단(BTS)의 노래가 울려퍼지고 있었다. 자긍심과 허전함 등 만감이 교차하였다. 1018년 고려시대 ‘전라도’라는 이름이 탄생한 지 천년이 흘렀다. 전북은 천만 관광객 전주한옥마을, 500년 조선왕조 발원지 등 역사 문화적 자산이 풍부한 왕도(王都)이다. 문화수도의 저력으로 청년들이 돌아오고 일자리가 넘치는 잘사는 전북을 기대해본다.

 이상직 중소벤처기업진흥공단 이사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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