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학보유 지적재산의 경제적 활용
대학보유 지적재산의 경제적 활용
  • 채수찬
  • 승인 2019.05.09 18: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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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필자가 재직하고 있는 카이스트가 보유하고 있는 지적재산(Intellectual Property)은 세계 대학 중 6위(2017년 Thomson Reuters 순위) 정도로 평가되고 있다. 그러나 기술수입은 비용을 제하면 거의 제로다. 지적재산에는 특허, 저작권, 상표 등이 있고, 법으로 보호되지 않는 노하우(knowhow)도 포함된다. 대학보유 지적재산을 어떻게 제대로 활용할 수 있을지 고민하다가, 4월 하순 5월초에 걸쳐 미국의 주요 연구대학들을 방문하여 지적재산 관리를 어떻게 하고 있나 돌아보고 왔다. 이번 순방에서 얻은 바를 일부라도 나누어 보고자 한다.

 우선 미국 연구대학들도 한국 연구대학들과 크게 다르지 않은 고민을 하고 있었고 나름대로 해법을 모색하고 있었다. 가장 큰 과제는 대학의 연구결과를 어떻게 사회에 널리 활용되도록 할 것인가 하는 것이다. 사실 대학이 보유기술의 사업화를 위해 노력하는 것은 수입을 올리는 측면도 있지만, 더 중요한 것은 그냥 놔두면 묻혀버릴 기술들이 활용되도록 기존기업이나 창업 기업에 실시권(license)을 주는 것이다. 더 나아가 연구의 방향과 내용을 어느 정도까지 사회적으로 유용한 쪽으로 유도할 것인가 하는 문제가 있는데, 이는 생각보다 어려운 문제이다. 연구자가 아닌 국가나 대학이 연구방향을 정하는 것이 반드시 바람직한 것은 아니다. 그러나 정책적 차원에서 보면, 사회적 자원을 연구에 투입하는 만큼 사회가 원하는 성과가 있어야 하므로, 선별된 연구방향을 지원하고 경제적 효용과 비용을 따지는 것은 현실적으로 필요한 일이다.

 사실 교수들이 일차적으로 원하는 것은 연구비를 받아 자신이 하고 싶은 연구를 하고 제자들을 교육하는 것이다. 그 연구가 얼마나 상업적 가치가 있는지는 일차적 관심사가 아니다. 그러므로 대학에서 사업화 관점에서 연구계약에 제한을 가하거나 연구평가에서 사업화 실적의 비중을 크게 두면 교수들이 반발할 수밖에 없다. 그래서 대학에서는 기술사업화 수입을 연구자와 나누는 등 가외의 인센티브를 주게 된다.

 대학의 기술사업화가 얼마나 잘 되느냐 하는 것은 무엇보다도 이 업무를 맡는 조직의 효율성과 인력의 유능함에 달렸다. 유능한 인력이 요구하는 연봉을 대학 내에서 주기가 쉽지 않으므로 기술사업화 조직을 독립된 법인으로 운영하기도 하는데, 위스컨신대학교 동문연구재단(WARF)이 성공한 예이다. 그런데 이게 가능해지려면 어림잡아 1조원 정도의 고유재원이 있어야 하고 그렇지 않으면 중간에 망해 다시 대학으로 들어와 예산을 달라고 할 가능성이 크다. 그래서 미국의 유수 대학들도 기술사업화 조직의 독립법인화는 엄두를 내지 못하고 있다. 한국에서도 기술사업화 조직이 대학 안에 있든 밖에 있든 성과를 내지 못하는 것도 제대로 전문성을 갖춘 인력을 쓰지 못하는 현실 때문이다.

 미국 주요대학들과 카이스트의 보유 지적재산을 비교하면 한 가지 차이점은 미국 대학들이 주로 신약 등 생명과학 쪽인데 비해 카이스트는 현재까지는 주로 전자공학 쪽이다. 이번 순방 중 하버드 대학교를 방문했을 때 필자가 던졌던 질문 하나는 하버드가 다른 주요대학들에 비해 기술수입이 현저히 낮은 이유가 혹시 다른 대학들과 달리 대가를 바라지 않고 기술확산을 중시하는 철학이 있어서 그런가 하는 것이었다. 대답이 재미있었다. “순전히 운이지요. 대학마다 신약 한 개에서 지적재산 수입의 대부분이 나오는데, 하버드가 운이 없었던 거예요.”실제로 미국 주요대학의 기술수입에서 신약 한개를 빼고 나면 상황은 카이스트와 별반 다름없어 보인다.

 대학보유 지적재산의 효과적인 활용방법을 찾고자 미국 주요 연구대학들을 둘러보았지만 확인한 것은 그들도 카이스트와 거의 같은 고민을 하고 있다는 것이었다. 만난 사람 중 상당수가 필자의 이번 순방에서 보고서가 나오면 자기들도 보고 싶다고 했다.

 채수찬<경제학자/카이스트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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