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스터 클래스 ‘L. 코헨’의 제임스 베닝 감독
마스터 클래스 ‘L. 코헨’의 제임스 베닝 감독
  • 김미진 기자
  • 승인 2019.05.07 16: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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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영화제의 성공 열쇠는 좋은 영화를 선별해 잘 상영하는 것만이 전부는 아니다. 어떠한 영화인을 발견하고, 함께 성장해나갈 것인지를 결정하는 일도 매우 중요한 일이다. 그러한 의미에서 1960년대 후반 미국 아방가르드 시네마의 영향 아래 감독의 길을 걷기 시작한 제임스 베닝(James Benning) 감독과 전주의 인연은 주목할만 하다. 제7회 전주국제영화제에 ‘원 웨이 부기우기/27년 후(2005)’가 초청된 이래 전주에서만 13편의 작품이 소개된 최다 상영 작가 중 한 명으로 손꼽히는 제임스 베닝. 올해 영화제에는 ‘L. 코헨’과 ‘국가의 탄생’, 두 작품을 가지고 왔다. 거장의 목소리가 상영관을 가득 채우기 시작하자 관객들은 귀를 쫑긋 세웠다. <편집자주>  

 제임스 베닝 감독이 참여한 마스터 클래스는 6일 메가박스 6관에서 ‘L. 코헨’이 아시아 프리미어로 상영된 직후 이뤄졌다.

 제임스 베닝의 최근 영화들은 일련의 연속적인 쇼트를 만들거나 심지어는 하나의 시퀀스로만 펼쳐지는 경우가 많다. ‘L. 코헨’ 역시도 뮤지션 레너드 코헨의 노래를 배경으로 깔고 오레곤 농장의 특별한 하루를 관찰하는 친절하지 않은(?) 영화였다. 카메라의 위치가 변하지 않는 45분 길이의 이 실험적 다큐멘터리 영화는 사실상 단조로운 풍경을 보여주고만 있기 때문에 당혹스럽기도 하다.

 이를 의식한 듯, 제임스 베닝 감독은 “사실, 여러분께서는 여러분이 뭘 보셨는지 모를 수도 있는데, 이것은 태양의 개기일식장면이었다”고 시원하게 설명하기 시작했다. 이어 그는 “이 영화는 한 기록이라고 할 수 있다. 디지털 조작도 없고, 사운드도 싱크도 잘 맞춰서 촬영을 했기에 영화에서 보고 들은 것은 제가 직접 보고 들은 것과 동일하다”고 덧붙였다.
 

베닝 감독은 “태양이 달에 의해 가려지는 것이 아니라, 그림자에 조금 더 초점을 두고 촬영을 하고자 했다”면서 “적정한 장소를 찾아 헤매다 오레곤주를 찾게 됐고, 장비를 설치하고 2시간 정도 촬영을 했는데 집에 와서 필름을 본 순간 매우 놀라웠다”고 말했다.

 사실, 그가 알고 있는 개기일식에 관한 정보는 책을 통해 접수한 단편적인 지식 뿐이었다.

 이를 테면, 개기일식이 이뤄지면 그림자가 시간당 2천마일의 속도로 움직이고, 갑자기 20도 정도 온도가 떨어지면서 어둠이 바람을 일으킨다는 정도다. 베닝 감독이 프레임 앞에 풀을 둔 것도, 바람의 이미지를 담을 수 있을 것이라는 생각 때문이었지만, 그림자가 너무 짙게 깔리다 보니 화면 속에 풀은 보이지 않았다.

 “제가 하고자 하는 말은, 실제 무슨 일이 일어날지 정확히 알지 못했다는 것입니다. 개기일식 시간에 3~4대의 비행기가 그 주변을 배회할 줄을 몰랐고, 개기일식을 하늘에서 보고 싶어하는 사람들이 있을 줄 몰랐고, 그 시각 하늘에서 떨어지는 스카이다이버들이 있을지 몰랐다는 것이죠.”

 결국 영화는 시간의 개념자체를 완전히 바꾸며, 우리가 이해하고 있는 시간의 의미를 다시 묻고, 우리의 인생이 얼마나 짧은지도 알려준다. 베닝 감독은 “작업을 마치고, 곧바로 레너드 코헨을 바로 생각하게돼 이 영화를 바쳐야겠다는 마음가짐으로 코헨의 노래를 사용했다”고 덧붙였다.

 그런가 하면, 팔복예술공장에서 만날 수 있는 ‘국가의 탄생’은 인종주의를 정당화한 D.W. 그리피스의 ‘국가의 탄생(1915)’에서 발췌한 세 장면을 저속 영사한 3채널 설치 작품으로 영화의 확장을 보여주고 있는 작품이다.
 

베닝 감독은 “국가의 탄생이라는 것을 레드 화이트, 블루라는 색으로 표현하고 싶었고, 이를 통해 관객들이 미국의 현재상황에 대해서 생각했으면 좋겠다라는 생각을 했다”며 “남북전쟁 이후에 재건이 이뤄지는 시대를 그리피스는 인종차별적인 관점으로 당시의 역사를 그렸는데, 그러한 인종차별이 지금도 일어나고 있다”고 강조했다.  

하지만, 베닝 감독은 이 작품이 훨씬 큰 작업의 일부임을 밝혔다. 전주에서 보여지고 있는 필름 설치 작품은 몇 주 후, 미국에서 초상화를 주제로 한 프로젝트에서 공개될 예정이다.

1942년 생인 베닝 감독의 작업은 나이를 가늠할 수가 없을 정도다. 필름에서 디지털로, 유튜브 클립, 설치미술까지 새로운 영역으로 무섭게 확장되고 있기 때문이다. 표현하는 주제 역시도 풍경 외에 초상, 인상, 공동체, 우정 등으로 관심 세계가 변화되고 있다.

 감독 자신도 변화를 즐기기 때문일까? 그는 사람들이 여러 디바이스를 통해 작은 화면과 스트리밍으로 영화를 만나고 있는 현 상황에 대해서도 개의치 않았다.

 베닝 감독은 “제가 영화를 처음 만들어 상영 했을 때, 이미 관객들이 절반 정도 밖에 남아있지 않았고, 심지어 베를린영화제에서도 절반 정도가 영화관을 떠나는 뒷모습을 보았다”며 “그런데 41년이 흐른 뒤, 베를린에서 그 영화가 다시 상영이 됐는데 500명의 관객이 자리를 떠나지 않고 영화를 관람하는 모습을 볼 수 있었다”고 말했다.

 이어 그는 “새로운 포맷들이 등장하고, 갤러리 설치작업, 유튜브도 있지만 스크린과 함께하는 관객과의 깊이, 그 관계는 더욱 끈끈해지고 있는 것 같다”며 “아티스트와 각 기관들이 관객과의 관계를 더욱 공고히 하기 위해서 노력을 해야한다고 생각한다”고 강조했다.

제임스 베닝 감독과의 대화는 20회 이후 전주국제영화제의 비전과 방향까지 고민의 지점을 남기며 마무리 됐다. ‘L. 코헨’은 9일 오후 3시(GV)와 11일 오후 5시 CGV전주고사 5관에서의 상영을 남겨두고 있으며, ‘국가의 탄생’은 팔복예술공장에서 관람이 가능하다.

 김미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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