타인의 주관을 인정하는 것이 객관이다
타인의 주관을 인정하는 것이 객관이다
  • 장걸  
  • 승인 2019.05.01 18: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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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우리가 살고 있는 지금은 특정 철학이나 이념, 혹은 가치, 지식이 사회 전반을 움직이는 힘으로 작용할 수 없는 시대이다. 시대를 관통하는 보편적인 사상이 없는 것이다. 그러나 많은 부분 우리는 타인의 의견에 대하여 부정적인 의견을 표출하는 경향이 있다. 예를 들면 ‘그것은 당신의 개인적인 생각이지…’와 같은 말들로 상대의 의견을 수용하지 않은 채 대화를 이어가는 것이다.

 일반적으로 주관은 ‘자신의 견해나 관점을 기초로 하는 것’, 객관은 ‘자기와의 관계에서 벗어나 제삼자의 입장에서 사물을 보거나 생각하는 것’으로 정의된다. 전자는 자신을 중심으로, 후자는 타인을 중심으로 하고 있는 것을 알 수 있다. 하지만 재미있는 사실은 타인 중심의 사고방식 또한 그 사람의 주관적 사고체계가 녹아 있다는 것이다. 어떠한 측면에서 볼 때 객관은 다양한 주관이 모인 결과이다.

 객관이나 보편 바깥에 있는 것들이, 드물지만, 그 안에 편입되는 일들이 있다. 유럽인들은 1697년 오스트레일리아 대륙에서 검은색 백조(흑고니)가 처음 발견되기 전까지는 모든 백조는 흰색이라고 인식하였는데 그때까지 인류에게 발견된 백조는 모두 흰색이었기 때문이다. 이때의 발견으로 ‘검은 백조’는 사실이 되었으며 객관으로 인식되게 되었다. 다만 ‘검은 백조’는 ‘진귀한 것’ 또는 ‘존재하지 않을 것이라고 생각하는 것이나 불가능하다고 인식된 실제 상황이 발생하는 것’을 가리키는 은유적 표현으로 사용되고 있기도 하다.

 월가에서 증권분석가이자 투자전문가로 일했던 경력이 있는 미국 뉴욕대 폴리테크닉연구소 교수인 나심 니콜라스 탈레브(Nassim Nicholas Taleb)가 2007년 월가(Wall Street)의 허상을 통렬히 파헤친 <블랙 스완 The Black Swan>이라는 책을 출간하면서 ‘블랙 스완(Black Swan)’이라는 말이 경제 영역에서 널리 사용되기 시작하였다.

 그는 ‘블랙 스완’의 개념을 ‘과거의 경험으로 확인할 수 없는 기대 영역 바깥쪽의 관측값으로, 극단적으로 예외적이고 알려지지 않아 발생가능성에 대한 예측이 거의 불가능하지만 일단 발생하면 엄청난 충격과 파장을 가져오고, 발생 후에야 적절한 설명을 시도하여 설명과 예견이 가능해지는 사건’이라고 정의하였다.

 ‘나심 니콜라스 탈레브’교수의 주장에 의하자면 예측 가능한 객관성과 보편성이 아직 설명하지 못하거나 인지하지 못한 사실들이 매우 큰 파장을 가져올 수 있음을 알 수 있다. 타인의 주관적 관점은 어떤 합리적인 의심에도 불구하고 특정한 상황 등에서 매우 큰 파장을 예방하거나 해결하는 사실일 수 있는 것이다. 주관이 객관화되는 과정인 것이다. 물론 자신의 관점 속에 녹아있는 주관 또한 객관의 영역에 편입될 수 있으며 상호 인정과 그것을 기반으로 한 일련의 과정을 통해 객관화 될 수 있는 것이다.

 우리가 믿고 있는 객관은 이미 지적권위를 확보하고 있어 다른 관점을 기초로 새로운 논리를 전개하기가 쉽지 않다. 그만큼 탄탄한 위치를 확보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그러한 관점에 대한 진입 가능성의 경직은 결국 사고의 유연성과 창의적 문제제기의 통로를 가로막아 사회적 지식의 확장과 진화를 방해하는 요소로 작용하게 된다. 결국 집단과 사회의 새로운 동력을 확보하거나 지속가능한 창조적 과정 등을 가로막게 된다.

 편견일 수 있으나 우리는 흔히 타인과의 관계에서 핀잔을 주거나 단점을 전제로 자신의 주장을 관철하기도 한다. ‘다 좋은데 이건 문제가 있다.’거나 ‘그건 매우 개인적인 생각이니 더 배우고 와라.’ 등의 말을 예로 들 수 있다. 하지만 그러한 표현을 조금만 달리하는 것은 어떨까? ‘아무개님은 다 좋은데 그게 더 좋다.’거나 ‘아무개님의 주장은 다 좋은데 이렇게 덧대면 더 좋을 것 같다.’등으로 긍정에 긍정을 덧대어 보는 것이다.

 타인의 주관을 객관으로 받아들이고 자신의 주관을 좀 더 객관화하는 것. 인정을 통해 더 좋은 긍정을 산출해내는 것이 더 객관적이다. 그렇게 모든 가능성에 객관의 길을 열어 놓는다면 더욱 적극적인 대화와 관점의 수용이 가능해질 것이고 지식과 논리는 더욱 탄탄해질 것이다.

 장걸<(재)전주문화재단 사무국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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