양극단의 선거제도, 대안이 필요하다
양극단의 선거제도, 대안이 필요하다
  • 정운천
  • 승인 2019.04.30 18:4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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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더불어민주당과 바른미래당, 민주평화당, 정의당 등 여야 4당은 자유한국당의 반발에도 선거법과 공수처법의 패스트트랙 지정을 강행 처리했다. 이에 자유한국당은 강력 반발하며 장외투쟁에 나서기로 하는 등 패스트트랙을 둘러싼 여야 간의 극한 대치가 지속하고 있다.

 선거제 개편은 게임의 규칙을 바꾸는 것이다. 규칙이 정해지면 승패에 결정적인 영향을 미치고, 선수 개개인의 역량과는 전혀 다른 결과가 나오기도 한다.

 이번에 패스트트랙으로 지정된 준연동형 비례대표제도는 연동형비례대표제 보다 부족하지만 차선을 선택한 결과라고 볼 수 있다. 하지만 선거에 참여하는 모든 선수들의 동의가 없다면 이 룰은 의미를 잃어버린다. 선거의 규칙을 정하는 문제는 모든 선수가 인정하는 규칙이어야 하기 때문이다. 그렇기에 과거 독재 정권에서도 선거법을 의원들의 숫자로 밀어붙인 적은 없다.

 패스트트랙 지정으로 선거법은 상임위원회, 법제사법위원회, 본회의 부의 절차를 거쳐 늦어도 330일 안에 본회의에서 처리해야만 한다. 따라서 이제는 자유한국당을 포함한 여야 모든 정당은 갈등과 대립을 극복하고 대화와 타협으로 합리적인 선거제도 개혁을 위해 머리를 맞대야 한다.

 이제 배는 떠났고, 선거제도 개혁을 위한 타협은 불가피하다. 필자가 자유한국당까지 받아들일 수 있는 선거제도가 어떤 것이 있을지 곰곰이 생각해 봤다. 그것은 바로 필자가 지난 10여년 넘게 줄곧 주장해 왔던 석패율제다.

 1988년 3월, 당시 모든 정당의 합의에 의해 소선거구제 법안이 국회를 통과했다. 이후 30년 동안 이어져 온 소선거구제는 영호남에 거대한 지역장벽을 만들었으며, 거대 양당의 패권을 이어오게 만들었다. 지역주의에 기대어 공천만 받으면 당선이라는 공식은 민심을 왜곡하고 당리당략에 따라 움직여 특정지역에서 일당이 독재하는 상황을 계속해서 만들어왔다.

 따라서 선거제 개편은 30년 동안 이어져온 시대적 요구이자 국민의 준엄한 명령이다. 여야가 텃밭이 아닌 다른 지역에 국회의원들이 생기면 주역주의를 타파하고 지역의 민심을 정책에 반영하는 일이 쉬워진다. 여야간의 대화와 타협을 통해 민생 정치도 물꼬가 트인다. ‘석패율제’가 바로 국회 개혁의 돌파이자 정치 개혁의 첫 단추가 될 것이다. 승자독식의 소선구제를 없애거나 연동형 비례대표제를 도입하면 더할 나위 없겠지만 모든 정당이 고민해 볼 수 있는 ‘석패율제’로 자유한국당을 선거제 개편을 위한 협상테이블로 이끌어야 한다.

 이 석패율제를 시행하면 현행 제도를 그대로 유지하면서 각 정당이 자율적으로 정한 비례대표 순번에 따라 각 시도에서 가장 높은 석패율 후보자가 당선된다. 이렇게 되면 영남에서는 진보당이, 호남에서는 보수당이 당선되어 쌍발통의 시대를 열 수 있다.

 물론 석패율제를 통해 당선자가 결정되면 각 분야의 전문성을 가진 비례대표의 수가 줄어든다. 비례대표제를 통해 전문가와 직능대표를 뽑는 것도 중요하지만, 그보다 더 중요한 것이 바로 지역주의 극복이다. 비례대표의 30% 이내에서 석패율제에 할당하면 제도의 취지를 훼손하지는 않을 것이다.

 그리고 당의 취약한 지역에서 석패율을 통해 당선된다면 명망 있는 사람들이 선거에 도전할 것이고 지역을 대표하는 국회의원으로도 인정받게 될 것이다. 이를 통해 지역주의를 완전히 깨지는 못하더라도 지역주의 극복의 시작이 될 수 있다.

 선거법은 모든 정당이 머리를 맞대고 끝까지 협의해서 도출해야만 한다. 언제까지 우리 정치권이 민생과 국익을 외면한 채 정쟁만 일삼을 것인가. 더불어민주당은 집권당으로서 정치력을 발휘하여, 제1야당인 자유한국당을 설득할 수 있는 중재안을 내놓아야 하고, 자유한국당도 선거제 개편 협상에 진정성 있게 참여해야 한다.

 대한민국 정치개혁의 최고 우선순위는 지역 장벽을 깨는 일이다. 석패율제 도입으로 그 첫걸음을 내딛자.

 정운천<국회의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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