순례자의 길을 걸으며 마주한 불완전한 자화상 ‘공소순례’전
순례자의 길을 걸으며 마주한 불완전한 자화상 ‘공소순례’전
  • 김미진 기자
  • 승인 2019.04.30 17: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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침묵의 어둠 속에서 공소의 빛을 촬영하는 동안 사진작가는 순례자가 되었다. 그 순례의 길을 걸으며 불완전한 자기 자신의 모습과 마주하게 되었고, 공소의 빛은 무의식의 어둠을 서서히 밝혀주었다.

 한국 천주교회의 역사로 볼 때 평신도에 의해 세워진 공소는 천주교 역사의 근본이 되는 곳이라 할 수 있으니, 그 거룩한 공간을 마주하는 일이야말로 순례의 길이었을 터다. 이제는 그 역할이 희미해져 폐허로 사라질 위기에 처해 있는, 마을을 지켜온 사람들의 삶의 터전을 닮은 공소를 기록한 사진이 공동체의 이상향을 되새기게 만든다.

김주희 사진작가의 ‘공소순례’전이 1일부터 19일까지 전주 서학동 사진관에서 열린다.

 김주희 사진작가는 천주교 신자로서 ‘성당의 빛’을 촬영하던 중 전라북도가 천주교 공소의 최대 보유지임을 알게된다. 그리고 전라북도 전주근교 외곽지역의 ‘천주교 공소’를 소재로 작업을 해야겠다고 마음 먹었다.

 공소란 성당보다 작은 단위로서 주로 신자수가 적고 주로 외지에 위치해 있다. 신부가 상주하지 않아 성체 예식이 이루어지지 못하지만, 공소회장을 중심으로 영성체 외의 종교적 행사는 진행되므로 외곽지역 신자들의 신앙의 터가 되는 곳이다.

 특히 공소의 대부분이 농촌지역에 위치한 만큼, 작고 소박한 공간이 대다수다. 흔히 생각하는 성당건축물 촬영과는 비교할 수 없지만, 공소 교우들이 스스로 힘을 합쳐 유지해 온 것이니 만큼 “그 신실함과 경건성은 대성당의 그것에 뒤지지 않는다”라는게 작가의 신념이었다.

 그렇게 공소를 소재로 한 그녀의 작업은 3년 이상이 걸리고 말았다. 김 작가는 부안 덕림공소를 시작으로 진안 어은동공소, 장수 수분공소, 정읍 신성공소 등을 차례로 촬영해 나가면서 70여 공소를 프레임에 담아냈다.

 김 작가는 스트레이트로 대상을 기록하면서 공소의 빛, 사물, 내외부 환경, 인물 등을 다큐적 형식을 빌어 표현했다. 그리고 공간의 거룩한 침묵을 마주할 때 느낀 자신의 경험을 통한 주관적 시각을 기록하고자 분투했다.

 그는 퇴적된 시간의 모습, 일상적 풍경, 오래된 사물 속에서 과거의 시선에 대한 빛의 기록을 남겼다. 공소에서 신앙을 키우고 있는 어머니들의 모습 속에서 관람객은 성모마리아의 숭고함을 느끼게 될 터다.

 최연하 사진평론가는 “김주희는 종교미술이 흔히 취하는 극적이고 화려하고 찬란하고 고상한 형식과는 반대로 우리 농촌 지역에 겨우 잔존하는 거칠고, 작고, 보잘 것 없는 공소의 건물과 땅에 바짝 엎드려 그 땅을 일구며 기도하는 신도들의 초상을 찍었다”며 “나로서는 이 점이 중요한데, 마을로 내려온 신앙공동체의 단면을 보았기 때문이다”고 했다.

 김미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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