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동벌이(黨同伐異)와 구동존이(求同存異) 사이에서
당동벌이(黨同伐異)와 구동존이(求同存異) 사이에서
  • 김동근
  • 승인 2019.04.28 18:12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교수신문은 해마다 그해 말에 한해를 사자성어로 풀어보는 기획기사를 쓴다. 2004년 12월 대학 교수들에게 설문조사를 한 결과, 2004년 한 해를 표현하는 사자성어로 ‘당동벌이(黨同伐異)’가 선정됐다. 당동벌이의 사전적 의미는 “하는 일의 옳고 그름을 따지지 않고 뜻이 같은 사람끼리는 한패가 되고, 그렇지 않은 사람은 배척함”을 뜻한다.

 2004년 한해 동안 여권이 제기한 ‘4대 개혁입법’을 둘러싸고 여야의 대립이 일반적인 갈등을 넘어 사회를 분열시킬 정도로 극심했었다. 2019년 우리 사회의 단상은 2004년과 비교해 보면 많이 다르지 않은 것 같다. 개혁입법을 둘러싼 여야간의 힘겨루기는 여전하다.

 2012년 국회의장 직권상정과 다수당의 날치기 통과를 통한 법안 처리를 금지하기 위해 국회선진화법이 도입되었다. 국회선진화법은 쟁점 법안에 대해 재적의원 5분의 3(180석) 이상이 동의해야만 본회의 상정이 가능하도록 되어 있다. 그러다 보니 쟁점 법안에 대해 120명 이상의 국회의원이 반대하면 아예 상정조차 하지 못한다. 이러한 단점을 보완하는 것이 패스트트랙(신속 처리 안건)이다. 패스트트랙을 요청하려면 전체 국회의원의 과반수인 151명 이상 또는 해당 상임위원회 전체 위원 과반수의 서명이 있어야 한다. 패스트트랙으로 지정되려면 요건이 더 까다롭다. 재적의원 또는 상위임 재적 위원의 5분의 3 이상이 찬성해야 한다.

 패스트트랙이 거론되는 법안 자체가 여야가 가장 첨예하게 맞붙는 쟁점 사안이다. 지난 25일 여야 4당이 선거제 개정안, 고위공직자비리수사처(공수처) 설치법, 검경 수사권 조정안을 패스트트랙으로 지정하려고 하였으나 국회 곳곳에서 충돌이 일어났다. 패스트트랙의 육탄봉쇄와 패스트트랙 반대 특위 위원의 교체에 따른 특위 위원의 감금에 따라 국회의장이 33년만에 경호권을 발동하였다.

 2020년 국회의원 선거를 앞두고 여야의 대립과 갈등은 사회 전체에 큰 영향을 미칠 것이다. 시급한 민생법안들은 올 스톱될 것이고, 국민들의 정치에 대한 불신과 분열을 심화시키고 고착화시킬 것이다. 정치인이 추구했던 이념은 국가와 국민들을 힘들게 하는 것이 아닐 것이다. 이 시점에 진정으로 필요한 것은 협상과 타협이다.

 구동존이(求同存異)는 타협의 한 방법이다. 청와대 조국 민정수석이 검경수사권 갈등을 조정하면서 구동존이를 이야기하였다. 구동존이의 어원은 서경(書經)의 구대동존소이(求大同存小異)에서 유래한다. 구동(求同)은 상대방과 같은 것을 찾으려고 노력한다는 의미이다. 존이(存異)는 지금 당장 생각과 입장이 다른 것이 있어도 잠시 내버려 둔다는 뜻이다. 구동존이는 협상할 때 먼저 공통점이 무엇인지 찾으려고 노력하고, 차이가 나는 부분은 잠시 보류해 놓는다는 뜻이다.

 구동존이를 잘하는 나라로는 중국과 미국, 고대 로마제국이 있다. 중국은 1955년 인도와 ‘평화 5원칙’을 합의할 당시 주은래가 구동존이 원칙을 사용하였다. 등소평이 1979년 12월 미국과 국교수교를 하면서 내건 정책도 바로 구동존이다. 민주진영과 공산진영이 첨예하게 대립하던 냉전시기에 미국과 체제도 다르고 이념도 다르지만, 그 다름을 인정하고 같은 것을 찾아서 국가의 이익이 되도록 노력하는 정책이었다. 그 결과 중국은 서방의 자본과 기술을 유치하게 되었고 지금의 경제성장을 이루는 개혁개방의 단초가 되었다.

 미국도 중국 못지않게 실용적이고 협상에 능숙한 나라이다. 미국은 2차 대전 이후 20년 이상 중국과 대화를 시도하지 않았다. 1967년 10월 대통령 후보 경선을 준비하던 리처드 닉슨이 미국의 국제문제 전문지 포린 어페어즈(Foreign Affairs Magazine)에서 미국은 베트남 전쟁에서 발을 빼고 중국에 대한 미국의 전략을 수정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그리고 1969년 1월 제37대 미국대통령에 취임한 닉슨은 취임식에서 중국과의 대화 채널을 열겠다는 것을 시사하였다. 1971년 7월에 미국의 키신저와 중국의 주은래가 비밀회담을 벌였다. 그 결과 1972년 2월 리처드 닉슨 대통령이 마오쩌둥을 중국에서 만나 세기의 담판을 벌이게 된다. 두 정상이 만나 대화를 나눈 시간은 불과 1시간 내외였지만, 2월 28일 상하이 공동선언으로 세기의 화해를 이끌어 내었다.

 로마제국이 1000년 이상 세계 강국으로 군림할 수 있었던 것은 타민족에 대한 개방성과 유연성에 있었다. 로마인은 타민족을 혐오하거나 무시하지 않았고 일정한 수준의 충성을 보이면 같음을 선언하였고 또 로마제국 시민으로 받아들였다. 다르다고 내치거나 힘으로 굴복시켰더라면 로마제국은 그렇게 오랜 기간 동안 존속하지 못했을 것이다.

 여야의 극심한 대립은 국가와 국민에게 도움이 되지 않는다. 구동존이의 정신으로 다름을 찾기 보다는 먼저 같은 것을 찾으려고 노력해야 한다. 

 김동근 전북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