덕진공원 유감
덕진공원 유감
  • 박인선
  • 승인 2019.04.28 15:5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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덕진연못에서 어미물닭이 알을 품고 있다.

 벚꽃 망울이 맺혔는가 싶더니 푸른 잎사귀가 무성해졌다. 봄이 온건 맞는 것인가. 금세 날씨는 여름 같다. 그래도 절기상으로는 봄이다. 언제부터인가 봄은 슬그머니 얼굴만 내밀다가 사라졌다. 반가움을 채 표현하기 도전에 은근슬쩍 마음만 설레게 한다. 작년에도, 그 작년에도 아쉬움은 더해만 간다. 그래서 더 좋은 것인지 모두가 봄을 안달한다. 울타리 없는 덕진공원의 봄맞이도 그렇다.

 누구에게나 공원의 추억은 하나쯤 있을 것이다. 학교 소풍도 단골코스였다. 빛바랜 앨범 속에는 영화 속의 한 장면을 보는 것 같은, 공원에서는 모두가 주연급이다. 그것이 좋은 추억이었으면 좋으련만, 그렇지 않은 기억까지도 세월이 흐르면 그리움이 된다.

 더러는 “내가 이럴 때가 있었네”라면서 쑥스러운 표정을 감추기도 한다. 공원 관람을 하기 위해 긴 줄을 설만큼 인기가 한창일 때도 있었다. 한옥마을이 전국적인 대표 관광지로 부상하다 보니 덕진공원을 찾는 관광객의 숫자는 줄어들었다.

 덕진공원은 연못이 일품이다. 연꽃과 더불어 사계절 내내 색다른 풍경들을 보여준다. 몇 해 전에 목격한 어미 물닭 한 마리가 둥지를 트는 모습은 아직도 생생하다. 여린 연잎들이 물 위로 갓 올라온 때였다. 사람들이 다니는 곳 가까이에 그늘도 없이 자리를 잡고 있어 아슬아슬해 보였다. 장난꾸러기들이 해코지를 할까봐. 연못 한가운데 자리를 잡으면 좋으련만 여의치 않았던지 미동도 않고 내리쬐는 햇살을 고스란히 받고 있었다. 물닭은 덕진연못의 텃새이다. 그러다 보니 물닭 병아리들의 모습도 자주 목격되곤 한다.

 얼마간의 시간이 지나서 둥지를 찾았지만 비어 있었다. 알 품기가 끝난 모양이었다. 연못을 가로지르는 연지교 다리 위를 지나다 보니 어미 물닭과 병아리 한 마리가 먹이사냥을 하면서 놀고 있었다. 언젠가 물닭 둥지를 청거북이들이 공격한다는 얘기를 들은 적이 있다. 그래서인지 너무나 단출하다. 사람들의 눈길도 아랑곳하지 않은 모습을 보니 친숙해져 보였다. 아이들의 눈빛도 즐겁다는 표정이다. 자연학습이 따로 있겠는가.

 그런 공원의 풍경이 올해는 많이 변할 것 같다. 연못을 가로지르던 연지교가 노후화되어 재설치공사가 진행 중이다. 낡아 볼품없던 다리가 해체되고 공사를 위한 흙막이 공사가 진행 중이다. 그래서인지 공원풍경 또한 예전 같지 않았다. 말라버린 연잎 사이에서 흔하게 볼 수 있었던 물닭이나 오리, 생물체들의 흔적이 조용하다.

 연못에 유막 팬스가 설치되어 오염방지를 위한 준비는 되었지만 기계음과 설치작업으로 혼란스러울 공사장에서 연못의 주인 격인 생명체에 대한 배려는 없어도 되는지 아쉬운 생각이 들었다. 그 흔한 가림막 하나 없는 공사장, 그들의 동네이고 삶의 보금자리다. 최소한의 환경을 보장받을 권리가 무시되었다는 생각이 들었다.

 공원에서도 생존경쟁이 무참할 때가 있다. 덕진연못 둘레를 돌다 보면 백로의 서식지가 있었다. 몇 해 전에 폭풍우에 아름드리나무들이 쓰러지면서 불행이 닥쳐왔다. 백로들은 쓰러진 나무 위에서 근근이 버텨오더니만 그것마저 해치워지면서 지금은 자취를 감추었다. 때로는 백로의 서식지를 두고 이런저런 말들이 있었다. 쾌적해야 할 도시에서 집단서식지는 눈총의 대상이었다. 자연재해라는 이유로 삶의 터를 빼앗겼지만 어찌 사람들만의 공간인지 생각해볼 일이다.

 조금 있으면 덕진연못 텃새들은 산란기로 접어든다. 끈질긴 모성본능으로 둥지를 지켜나가겠지만 그들의 콩닥거리는 심장소리가 들릴 것만 같다. 사람들은 덩그라니 세워진 다리를 지나면서 새로운 추억을 쌓겠지만 정작 연못의 주인들은 곤궁한 삶터를 지키느라 불안한 시간을 보낼 것이다. 본격적인 공사로 이어지기 전에 작은 배려의 마음으로 가림막이라도 세워주면 어떨까하는 생각이 들었다. 

 글=박인선 정크아트 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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