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0년의 사랑, 은혜
100년의 사랑, 은혜
  • 황진
  • 승인 2019.04.23 18:23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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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상하이시 마당로 306롱 4호. 이 지역은 우리의 임시정부 구지 때문에 재개발이 안 되는 도심 속의 옛 동네였다. 그도 그럴 것이 공동조계지 안에 있어 서양근대 건축물을 이용한 관광지이며 백화점을 비롯한 상가가 즐비한데 우리 임시정부 청사는 1925년 건설된 근대 건축물로 이 블록은 시간을 정지시키고 있었다. 하늘에 뻗은 앙상한 플라타너스 가로수 줄기 사이에서 청사 표지판을 보는 순간, 표현하기 어려운 어떤 느낌이 스쳐갔다.

 국내에서는 3.1독립만세 사건이 온 나라로 들불처럼 번지던 1919년 4월 11일, 시민이 나라의 주인이 됨을 내세운 대한민국 임시정부가 상하이에서 창설된 것은 IT시대를 사는 오늘의 우리보다 기민하고 철저하고 심원했음에 감격하게 된다.

 유일하게 망명정부를 인정하는 프랑스 조계지를 찾은 것 등 정보도 정보려니와,

 불과 10년 전에는 왕국의 백성이요 제국의 신민이었던 사람들이, 이제는 입헌군주제도 말하지 않고, 민주공화제를 말했다. 왕국이나 제국을 말하지 않고, 민국을 말했던 것이다. 오늘날의 개념으로는 ‘시민’이다. 그해 4월 10일 상하이에서 임시의정원을 열어, 4월 11일 새벽에 ‘대한민국’ 국호를 결정하고 ‘대한민국 임시헌장’ 10개 조항을 선포했다. 제1조 “대한민국은 민주공화제로 함”은 지금의 헌법 제1조 1항 “대한민국은 민주공화국이다”는 규정으로 이어져 왔다. 그리고 제2조는 “대한민국은 임시정부가 임시의정원의 결의에 의해 이를 통치함”이고, 또한 제3조는 “대한민국의 인민은 남녀, 귀천 및 빈부의 계급이 없고 일체 평등임”으로, 신분제적 질서를 부정하고 있다.

 침략자 일본의 손길이 미치지 못하는 땅에 대한민국 임시정부 청사를 마련하고 독립운동의 총본산지로 삼았던 우리의 선조들. 그 지휘부 김구 주석의 영향을 받아 1932년 4월 상하이시 홍코우 공원(현재는 루쉰공원으로 이름이 바뀜)에서 도시락폭탄으로 일본인 우두머리들을 처단한 청년 윤봉길의 의거 후 일제의 발악적인 반격으로 부득이 상하이를 떠나야 했다.

 붉은 벽돌 건물의 석조문틀과 철문이 삼엄했던 당시의 분위기를 전해주고 있었다. 철문 안으로 들어서자 왼쪽 벽에 전지 크기의 종이에 <양심건국>이라고 쓴 백범의 글씨와 도산의 <애기애타>의 작은 액자가 보인다. 선열들의 의지를 읽는다.

 요인들의 숙소를 지나며, 물질로 독립운동을 후원했던 선조들의 노고도 잊을 수가 없었다.

 이곳의 공무기간이 7년으로 임정역사 27년 중 가장 길고 현재까지 온전하게 보존된 우리 역사의 현장이기에 우리는 상하이를 생각하면, 곧장 임시정부가 떠오른다.

 일제 식민시대 지구의 80%가 제국주의의 사슬에서 신음하던 민족 중 우리 조선인들처럼 독립국임과 자주민임을 만방에 선포하고 27년 동안 임시정부를 성립시켜가면서 마지막 순간까지 거족적으로 투쟁을 벌인 유례가 없단다.

 황포강을 생각하면 이곳에서 유학하던 피천득 수필가가 떠오른다. 그가 열여섯의 나이로 1926년 유학했던 상하이. 고등학교를 마치고 1929년 입학한 <호강대학- 상하이대학교의 전신>. 식민지 조선의 청년 피천득이 부모를 여의고 흔들리는 마음을 부여잡고 공부하던 곳. 그의 수필 <황포탄의 추석>에서 고향을 그리워하던 그는 <1945년 8월 15일>에서는 “얼었던 심장이 녹고 막혔던 혈관이 뚫리는 것 같았다. 같은 피가 흐르고 있었다. 모두 다 ‘나’아니고 ‘우리’였다.”고 노래한다.

 윤봉길도, 피천득도 우리의 자랑스런 청년으로 각각의 처지에서 최선, 최고의 삶을 살다 가신 분들이다. 이곳에 와서 더욱 실감한 현재의 한국인 교포들의 활약은 내게 민족의 동질감으로 가슴을 먹먹하게 했다.

 100년의 세월이 흐른 지금, 부족함도 미진함도 많지만, 대지가 온갖 씨앗을 품어 키우듯, 바다가 모든 물을 받아들이듯, 용광로가 모든 잡물을 끓여 정금을 만들 듯 통일한국을 향해 힘을 모아야 할 것이다. 자각한 시민들의 역량을 결집해야 할 것이다.

  황진<군산시민 정치포럼 대표>  

 약력 ▲군산시민 정책연대 대표 ▲군산YMCA 이사장 ▲군산 중앙치과의원 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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