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춘향전》의 현대적 재조명
《춘향전》의 현대적 재조명
  • 김동수
  • 승인 2019.04.22 19: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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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춘향전》은 국제적으로도 널리 알려진 한국의 대표적인 고전 문학작품이다. 그런데 《춘향전》을 언젠가 전 경기도 모지사가 어느 조찬 간담회에서 “춘향전이 뭡니까? 변 사또가 춘향이 따 먹으려고 하는 거 아닙니까”라고 막말을 하여 물의를 일으킨 바 있었다. 이에 대해 당시 언론에서도 ‘따 먹는다’는 표현은 시정잡배들도 쓰지 않는 저급한 표현이다. 김 지사 눈에 권력에 핍박받는 춘향이가 ’따먹을‘ 먹거리로 밖에는 생각되지 않는가 하고 질타한 일이 있었다.

  《춘향전》은 봉건사회의 도덕적 이념에서 벗어나 탐관오리의 가렴주구를 폭로, 위정자를 응징하고, 계급을 초월한 사랑을 표상함으로써 봉건적 폐쇄 사회에서 억눌림을 받고 있던 당대인들의 한(恨)과 소망, 곧 신분타파를 부르짖고 있었다. 그러기에 《춘향전》은 단순한 사랑의 이야기가 아니다. 그것은 표층적 기제일 뿐, 보다 근대적인 인간상을 다양하게 제시하고 있다는 점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

 먼저, 변 사또의 폭정에 항거하는 춘향의 저항정신을 들 수 있다. 이 저항성이 훗날 동학혁명을 불러일으키는 민중적 저항(어사출두→농민 봉기)으로 이어지는 근대적 시민정신의 발아가 아닌가 한다. 마치 톨스토이나 투르게네프의 소설이 러시아 노예해방을 추진시켰던 것이나, 스토우 부인의 《엉클 톰스 캐빈》이 미국 남북전쟁의 도화선이 되었던 것처럼 근대적 민중의식을 일깨우는데 마중물이 되었다고 본다. 이는 민중이 정치세력으로 등장하여 탐관오리를 응징하는 프랑스 시민혁명(1792)보다 100여년이 앞선 근대시민의식의 발로라 본다.

 둘째, 《춘향전》이 우리나라 최초의 국문소설이라는 새로운 사실이다. 이제껏 《홍길동전》을 우리나라 최초의 국문소설로 여겨왔지만, 최근 연세대 이윤석 명예교수의 연구 발표(2018, 11, 26, 조선일보)에 의하면 “우리나라 최초의 한글 소설은 《홍길동전》이 아니라 《춘향전》이다.”는 점이다.

 그 근거로 《홍길동전》에서 ‘옛날 사람이라고 지칭하고 있는 장길산’이라는 인물이 숙종(1661-1720년) 때 실록에 나온 실존 인물(도적의 괴수)이라는 점을 들어 《홍길동전》은 숙종 이후 1800년대의 작품이라는 주장이다. 그러기에 광해군 때 사람인 허균 또한 숙종 이후의 작품인 《홍길동전》의 저자가 결코 될 수 없다는 객관적 사실을 증거로 제시하고 있다.

 그런데도 1927년 경성제국대학 다카하기 도루(高橋亨) 교수가 《홍길동전》을 허균의 창작이라고 잘 못 주장, 이후 1932년 김태준이 《조선 소설사》에서 그걸 그대로 받아들여 오늘에까지 잘못 이어져 왔다는 것이다.

 셋째, 중세 봉건제도와 맞서 싸우는 숭고한 인간 정신의 승리를 《춘향전》에서 또 엿볼 수 있다는 점이다. 절대권력을 누리고 있던 조선봉건사회에서 양반관료의 아들인 이몽룡과 기생의 딸인 춘향과 신분의 벽을 넘어 스스로 사랑의 대상을 찾아가는 자유와 평등의 정신, 그러기에 춘향의 사랑, 곧 그의 정절은 봉건도덕에 얽매인 유교적 정절의 순종이 아니라, 자신의 신념과 가치관에 따라 능동적으로 사랑을 찾아가는 자유연애 사상을 드러낸 근대적 여인상의 모습이라 하겠다.

 넷째, 《춘향전》의 구조가 전형적인 소설의 발단, 전개, 위기, 절정, 결말의 극적 구조 속에 유려한 문장과 어휘 그리고 리듬의 조화로 흥미진진하게 리얼리티를 구축하고 있다. 뿐만아니다. 다른 고전소설에 등장하고 있는 권선징악의 전형적 인물들과 같이 선과 악이 굳어 있는 단순 구조가 아니라, 상황에 따라 유연하게 적응해 가는 월매와 방자와 같은 실존적 인물들의 성격 묘사가 소설에 사실감과 생동감을 더하고 있다.

 이처럼 《춘향전》은 춘향과 이몽룡의 단순한 사랑과 정절을 넘어 우리에게 새로운 근대적 인간상을 다양하게 제시하여, 정병욱 교수의 말마따나 “《춘향전》은 우리 고전문학의 금자탑” 고전 중의 백미가 아닌가 한다.

김동수<시인/온글문학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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