애도의 방식
애도의 방식
  • 이윤애
  • 승인 2019.04.21 15: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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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지난 주말 영화를 봤다. 세월호참사 5주기를 즈음해 개봉한 영화 ‘생일’이다. 매년 이맘때가 되면 사고에 대한 기억이 너무 크고 아팠었기 때문에 또다시 아파질까봐 망설였었다. 그러나 엄마로서 사회구성원으로서 마땅히 가져야 할 어떤 것이 나를 극장에 붙들어 놓았다.

 영화 ‘생일’은 세월호사고로 세상을 먼저 떠난 아들 ‘수호’에 대한 그리움을 안고 살아가는 엄마 ‘순남’과 아빠 ‘정일’의 가족과 주변사람들의 이야기이다. 어김없이 올해도 아들의 생일이 돌아오고 수호가 없는 수호의 생일에 가족과 친구들은 함께 모여 서로 간직했던 특별한 기억을 선물하기로 하는데…. 2014년 4월 이후 남겨진 사람들의 이야기를 통해 상처를 치유해가는 과정을 그렸다.

 영화는 사고 이후 가족들이 겪는 정신적인 상처를 집중 조명한다. 사고가 발생했을 당시 정일은 베트남에서 사업체를 운영하던 중 산업재해로 인한 분쟁에 휘말려 수감돼 있었기 때문에 당장 달려올 수 없었고 그래서 순남은 수호를 ‘기다리며’ 어린 딸을 지켜내야 하는 몫을 홀로 감당해낸다. 문제가 잘 해결된 정일은 밤중에 귀국해 한걸음에 달려와 초인종을 눌렀으나 순남은 끝끝내 현관문을 열어주지 않는다. 순남과 정일의 심리가 잘 묘사된 장면이었다. 두 사람의 이러한 심리상태는 영화에 전반적으로 반영되어 미미한 호전이 있거나 거리두기로 흐르다가 수호의 생일모임 장면에서 주변사람들의 도움으로 상실의 슬픔을 수용한다. 그동안 외면하고 싶었던 상처를 정면으로 마주하고 절망과 분노로 가득했던 깜깜한 터널을 빠져나오면서 영화는 끝난다.

 순남과 정일은 아들에 대한 애도의 방식이 다르다. 순남은 아들과 사랑스럽던 에피소드를 떠올리며 미소짓다가 꿈을 꾸기도 하고 계절이 바뀌면 새 옷을 사다가 아들방에 걸어 놓고 흡족해 하기도 하고 한밤중에 갑자기 통곡하기도 한다. 그러나 정일은 착한 아들로 기억되는 건 맞지만 뚜렷한 추억이 떠오르지 않는다. 급기야 아버지를 만나러 가겠다며 만들어 놓은 아들의 깨끗한 여권을 발견하고 출입국사무소로 찾아가 출입국도장을 한 번만 찍어달라며 오열한다.

 사고 이후 유가족들을 대상으로 진행되는 치유프로그램이나 연구결과를 봐도 자녀에 대한 슬픔을 엄마와 아빠가 다른 방식으로 드러낸다고 한다. 엄마들은 자녀와 함께 갔던 장소, 자녀가 애착했던 물건, 자녀의 행동특성이나 예쁨 등 구체적인 방식으로 그리움을 표현하거나 좀 더 잘해주지 못한 미안함과 아쉬움을 표현한다고 한다. 그러나 아버지들은 가족을 위한답시고 돈벌이에 몰두한 삶에 대한 후회와 자책감, 자녀와 가깝게 시간을 보내지 못한 것에 대한 미안함 등 자녀와 함께한 구체적인 에피소드가 없다는 점을 안타까워한다고 한다. 영화 속의 순남과 정일의 모습이 그대로이다.

 영화에서는 남은 가족들의 관계의 어려움에 대한 모습도 잘 그려낸다. 순남은 옆집의 우찬엄마 외에는 친인척은 물론이고 이웃과 유가족들과도 거의 왕래하지 않는다. 유가족들을 대상으로 한 연구논문이나 보고서 등에서도 사고 이후 부모나 가족들은 대인관계, 직장생활, 사회생활에서 어려움을 느낀다고 보고하고 있다. 지지해주는 친지가 있는가 하면 어떤 이들은 왕래조차 뚝 끊기기도 하고, 부부사이가 좋아진 경우도 있지만 이혼한 집도 있다고 한다. 이는 슬픔을 표현하는 방식이 서로 다르다 보니 이해하기보다는 나의 방식과 충돌하면서 서로에게 더 큰 상처를 안겨주는 결과이기도 하다.

 무엇보다도 가족들을 힘들게 했던 것은 유가족에 대한 정형화된 상으로 가족들은 웃을 수도 울 수도 없었다고 토로한다. 웃으면 유가족답지 않게 웃는다고 비난하고 울면 울지 말고 잊으라고 강요하고. ‘유가족다움’에 대한 외부의 시선이 더 견디기 힘들었다고 한다.

 다행히 세월호 참사 5주기를 앞두고 정부는 재난참사 피해자지원 메뉴얼 초안을 만들어 발표했다. 하지만 여전히 어떤 이들은 세월호 유가족들에게 막말과 비난을 쏟아낸다. 상실에 빠져있는 누군가를 보면 이들의 마음까지 어루만져 줄 수 있는 따뜻한 사회가 되었으면 좋겠다.

 이윤애<전북여성교육문화센터 센터장>  

 약력 ▲전북발전연구원 연구원 ▲전북여성단체연합 공동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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