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시 읽는 시 <껍데기는 가라>
다시 읽는 시 <껍데기는 가라>
  • 송산 송일섭
  • 승인 2019.04.18 16:33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해마다 4월이면 우리는 많은 것을 떠올리게 된다. 그렇다고 따뜻한 봄의 문턱이라 하여 마냥 은은한 꽃향기에 취하게만 하지는 않는다. 연분홍 잎 사이로, 빨강 분홍 꽃들 너머로 너무나 많은 것들이 스치기 때문이다. T.S 엘리엇의 <황무지>는 어쩌면 우리가 속절없이 맞닥뜨려야 했던 특별한 4월을 예감했는지도 모른다는 생각도 든다. 언제부터인지 이 시는 우리의 4월 또한 ‘잔인한 4월’임을 환기시켜주는 것 같아서다.

그러고 보니 우리에게 4월은 예사달이 아니다. 사람들과 손 맞잡고 한바탕 눈물이라도 흘리고, 어딘가에 눈이라도 한번 흘겨도 좀처럼 해원이 되지 않은 절망의 달이고 아픔의 달이다. 불과 5년 전에는 단원고 학생 등 304명이 희생된 ‘세월호 사건’이 일어났다. 뱅골수로의 차디 찬 바닷물 속에서 생명이 꺼져가는 아이들을 보면서 우리는 얼마나 자책했는지 모른다. 어떤 대책 하나 마련하지 못한 채 발 동동 구르면서 그들의 안타까운 죽음을 지켜보아야 했다. 팽목항에서 절규하던 가족들의 피울음을 잊을 수가 없다.

그리고 또 있다. 1960년 이승만 정권의 3.15 부정선거에 대한 항의 시위에 참여했다가 행방불명된 한 학생이 있었다. 그는 며칠 후 왼쪽 눈에 최루탄이 박힌 채로 마산 앞바다에서 발견되었다. 그가 바로 김주열 열사다. 김주열 열사의 참혹한 죽음이 알려지면서 전국의 대학생들과 교수들은 독재타도를 외치며 반정부 시위를 했다. 이것이 바로 4.19혁명이다. 이때에도 많은 젊은이들의 생명을 앗아갔다. 당시 보도에 의하면 300명이 죽고, 1,000여 명이 부상을 당했다고 한다.

이렇듯 4월은 우리에게 많은 슬픔과 절망을 안겨주었다. 그런데 4월이 더 슬프고 절망스러운 것은 내일을 위한 새로운 다짐이 없었기 때문이다. 잘못을 인정하고 이를 고치고자 한다면 절망 속에서도 새 희망을 꽃 피게 하는 일이니 다소나마 위안을 삼을 수가 있다. 그러나 위의 두 사건은 우리에게 바로 후속변화를 추동시키지 못했으니 더 안타까운 일이다. 젊은이들이 목숨을 바치며 열망했던 민주화는 군부세력에 의해서 좌절되었다. 아무런 반성도 없이 보란 듯이 영구집권을 획책한 ‘10월유신’으로 이어지고, 또 다시 군사정권의 쓴맛을 경험해야 했다. 자유와 민주를 압박하는 모든 권위와 폭력을 거부했지만, 그 그늘에서 허둥댔던 세월이 너무 길었다. 그렇다면 ‘세월호 사건’은 어떠한가. 선체는 인양되었지만 그 진실의 실체는 드러나지 않았다.

4.19 혁명 이후 국민들의 열망을 짓밟고 외면한 사람들이 있었듯이, 세월호 사건 이후에도 그런 사람들이 있는 것 같아서 안타깝다. 며칠 전에는 세월호 유가족의 심장에 비수를 꽂은 것처럼 아프게 하는 말이 나왔다. “자식의 죽음에 대한 세간의 동병상련을 쌈 싸먹고, 찜 쪄먹고, 뼈까지 발라먹고 징하게 해쳐 먹는다“고 하였으니 얼마나 놀라고 당황했을까. ‘세월호 사건’의 진실과 책임 규명을 위한 수사가 촉구되는 마당에서 이러한 인식은 무엇을 노린 것일까.

우리가 어떤 잘못에 대하여 돌아보자는 이유는 간단하다. 다시는 그런 일을 되풀이하지 않기 위해서다. 부끄럽고 창피한 일이지만 우리는 4월의 정말과 한숨에 대하여 이렇다 할 이정표를 마련하지 못했다. 한쪽에서는 진실을 규명해야 한다고 하고 다른 한쪽에서는 어깃장을 놓고 있다. 그러나 분명한 것은 잘못을 명확하게 규명할 때라야 비로소 새 희망을 이야기하며 앞으로 나아갈 수 있다는 점이다.

그래서 4월이면 사무치듯 생각나는 시가 있다. 우리가 맹목적으로 지녔던 작위적 허위와 음모와 실수를 버리고 세상을 새롭게 보자던 신동엽 시인의 시다. 애타게 부르짖었던 민주화의 열망을 짓밟고 온갖 허위와 위선에 사로잡힌 세상을 한탄하면서 눈 부릅뜨고 쓴 시다.

껍데기는 가라. / 사월도 알맹이만 남고 / 껍데기는 가라.

껍데기는 가라 / 동학년 곰나루의, 그 아우성만 살고/껍데기는 가라.

그리하여, 다시 / 껍데기는 가라.

이곳에선, 두 가슴과 그곳까지 내논 / 아사달 아사녀가 / 중립의 초례청 앞에 서서 / 부끄럼 빛내며 / 맞절할지니

껍데기는 가라. / 한라에서 백두까지 / 향그러운 흙가슴만 남고 / 그, 모오든 쇠붙이는 가라. -시집 『52인 시집』(신구문화사, 1967)-

거듭 강조하지만 진실과 마주할 때만이 우리는 새 희망을 이야기할 수 있고, 오늘보다 더 나은 내일을 기대할 수 있다. 민주와 자유, 그리고 인간 회복 같은 사월의 알맹이가 실종되고, 곰나루의 아우성이 간과되고 있는 현실을 안타깝다. 잘못을 과감하게 털고 새로운 꿈을 이야기해야 할 때 진실을 호도하는 껍데기들과 마주하는 것은 슬픈 일이다. 올해도 끝나지 않은 ‘4월의 잔인함’을 어찌해야 할까.

 송산 송일섭 칼럼니스트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