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양반전>의 시대 풍자적 교훈
<양반전>의 시대 풍자적 교훈
  • 이복웅
  • 승인 2019.04.17 18:46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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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요즘 정치권의 세태를 일컬어 「충격의 한계 효용 체감의 법칙」이라고 말하는 학자가 있다. 이것은 처음에는 충격적 이어서 분노가 솟구치는 일도 자주 반복되면 처음처럼 반응하지 않는 게 「충격의 한계 효용 체감의 법칙」이라고 한다. 따라서 현 집권여당과 정부는 이러한 법칙을 아는 것 같다며 우회적으로 비판하고 있다. 지난달 전국적으로 치러진 국회의원, 기초의원 선거 5곳에서 집권여당인 더불어 민주당이 한곳도 당선자를 내지 못했다. 심지어 강세 지역인 호남에서조차 민주평화당에 내 놓아야만 했다 한마디로 민주당이 완패한 선거였다. 이를 두고 「충격의 한계 체감의 법칙」에서 비롯된 결과물이 아니겠느냐고 반문하는 층도 있다.

 조선조 정조 4년 박지원이 청나라에 다녀온 뒤 쓴 《열하일기》가운데 대표소설 작품으로 <호질>, <양반전> 그리고 한문으로 쓴 <허생전>을 꼽을 수 있다.

 이 소설들은 양반들의 허세와 위선 그리고 오만함을 신랄하게 꼬집고 벗기어 양민 계급과의 대칭적인 모순을 풍자적으로 대비시키고 있다.

 그가 쓴 <양반전>에서도 예외는 아니다 강원도 정성군에 지체 높으신 한 양반 어른이 살았다. 그는 하는 일이라고는 손끝만큼도 까닥하지 않고 늘 책 속에 묻혀 사는 것이었다.

 그러나 걱정거리가 하나도 없는 이 양반은 양식을 관청에서 빌려 주는 관곡으로 살 수 있었다. 이렇게 해서 빌려 먹은 관곡이 무려 100석에 이르렀다. 그러던 어느 날 조정에서 파견된 관찰사가 각 고을을 돌면서 관곡을 세밀하게 조사하다가 이 고을 관곡이 크게 축난 것을 문책하던 중 그 지체 높은 양반 때문이라는 것을 알았다. 관찰사는 “그 양반 놈을 당장 잡아 오거나 아니면 관곡을 변상토록 하라”는 엄명을 내렸다. 이제는 양반도 먹혀들지 않았다. 이 소문은 금세 퍼져 꽤 부농으로 사는 어느 상놈의 귀에 들어갔다.

 그는 양반이 돼 보고 죽는 것이 한이 없는 터라 관곡 1,000석을 갖다 주는 대신 양반 벼슬을 사기로 증서를 써주고 증인으로 정선군수와 좌주별감까지도 서명 날인 해서 일을 끝마쳤다. 상놈은 증서에 적힌 내용을 듣고 내가 알기에는 양반은 신선과 같고 해서 많은 곡식을 주고 양반 계급을 사게 되었다면서 양반의 정체를 더욱 밝혀 달라고 요청했다 해서 아래와 같은 항목이 추가되었다. 양반이란 농사나 장사를 하지 않아도 잘 살 수 있다. 조금만 공부하면 크게는 문과에 오르고 작게는 진사를 할 수 있다.

 문과는 무엇이든 할 수 있어 돈자루라 말할 수 있다. 진사는 서른에 해도 이름이 나고 높은 벼슬까지 오를 수 있다. 귀는 일산 밑에서 희게 되고 배는 종놈의 대답 소리에 저절로 불린다. 노리개로 기생을 두고 마당에 학을 먹일 것이다. 이웃집 소로 내 논·밭을 갈게 하고 마을 사람을 불러 밭의 김을 먼저 매도록 한다. 양반이 소원이던 상놈은 다시 쓴 내용을 보다가 그만 “나를 도적놈으로 만들 셈이오”하며 노발대발 하였다. 그 후로는 양반 근처에도 얼씬하지 않았다는 이야기다.

 앞에서 이야기한 박지원의 <양반전>은 요즘 정치 세태를 리얼하게 그리고 밀도 있게 풍자적 기법으로 표현한 소설로 비처져 우리에게 사사하는 바 크다.

 정치권에서는 합당이니, 신당이니, 창당이니 하여 정치권력을 잡겠다고 야단이다. 여·야 모두가 국민들이 바라는 등 따습고 배부른 정치는 뒷전에 있고 오로지 내년도 총선을 앞두고 승리에 총력을 쏟고 있는 듯하여 서민들의 걱정은 태산이다. 또한 정부와 여당은 이번 보궐선거 결과를 겸허하게 국민의 경고로 받아들여 국민으로 부터 다시한 번 기회를 받는 수 있는 참다운 집권여당의 모습을 보여 줘야 할 것이다. 이와 함께 야당도 정쟁의 끝판으로 치달을 것이 아니라 대안의 정당으로 성장하는 성숙한 모습을 보여줘야 한다. 끝으로 풍자 사회의 비판적 현실 앞에 우리의 고전인 <양반전>을 여·야 정치권 모두가 꼼꼼히 되새기고 교훈을 얻어야 할 것이다.

 이복웅<(사)군산역사문화연구원장>  

 약력 ▲한국문인협회 자문위원 ▲군산시도시계획위원 ▲채만식문학상 운영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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