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성의 자기결정권과 태아의 생명권 보호
여성의 자기결정권과 태아의 생명권 보호
  • 김우영
  • 승인 2019.04.16 18:13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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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데미 무어가 나오는 영화 ‘더 월’은 미국 사회의 50년대, 70년대, 90년대에 걸친 임신중절(낙태)이야기를 다룬 영화이다. 이 영화는 각 시대에서의 낙태 문제에 직면한 세 여성의 이야기를 옴니버스로 보여준다. 50년대 낙태가 무조건 죄악시되는 시대, 한 여성은 강제로 임신하게 된 태아를 유산시키기 위해 불법수술자로부터 시술을 받다가 죽어간다. 70년대 중년의 한 여성은 아이들의 뒷바라지를 마치고, 오랫동안 억눌러왔던 자기의 꿈을 대학을 다니며, 키워나가던 중, 예기치 않은 임신 사실을 알고 고민에 빠진다. 사회 경제적 환경의 제약과 출산의 갈등은 현재에도 많은 여성이 직면하는 문제이다.

 90년대 시대의 한 장면, 낙태는 합법화되었어도 낙태에 대한 찬반 논의는 여전히 사회적 갈등과 논란의 중심에 있다. 기혼자와의 교제로 임신하게 된 대학원생 여성은, 혼자서 책임지기 어려워 낙태를 결심하지만, 종교적 신념과 낙태 반대론자들의 시위 속에서 갈등한다. 의사 역시 낙태에 대한 찬반 논의에서 자유로울 수 없다. 그래서 낙태 전문병원 의사에 의해서만 수술이 이루어진다. 영화는 그 여성이 찾아간 병원에서 낙태반대 시위자들이 병원에 난입하고, 의사가 살해당하는 끔찍한 장면으로 막을 내린다.

 우리 사회에서도 임신중절(낙태)에 대한 찬반 논의는 대학의 입시 면접 문항에서도 자주 등장하는 사회적 논쟁의 문제이다. 지난 11일 헌법재판소에서 낙태죄 처벌을 규정한 형법조항에 대해 헌법불합치 판결을 내림으로써, 찬반 논의가 어느 정도 정리된 것 같지만, 꼭 그렇지는 않다. 지금까지 우리 사회에서는 낙태를 완전한 불법으로 처벌해 오진 않았다. 모자보건법에서 산모의 건강을 위한 경우는 허용하였고, 과거 산아제한을 이유로 이 조항을 폭넓게 해석하는 것을 은연중 용인해 왔기 때문이다.

 이번 위헌 소송은, 보건복지부에서 2018년 8월, 위 형법조항을 근거로 낙태수술을 한 의사를 처벌하기 위한 행정처분 규칙을 공포함으로써 제기된 것이다. 2014년 위헌 소송에서는 합헌으로 결정되었지만, 이번에 헌법불합치 결정을 받은 것은 반대론자들이 주장하는 태아의 생명권 보호, 생명경시 현상의 확산 이유 이상으로 위 형법조항이 가지고 있는 여러 가지 불합리한 이유들이 보다 구체적으로 인정되었기 때문이다. 시술의사에 대한 처벌문제도 있지만, 중요한 것은 임신, 출산, 육아의 책임이 사회제도적으로 여성에게 과도하게 귀속된 현실에서 여성의 자기결정권을 불인정한 것은 지나치다고 본 것이다.

 지금까지 여성들의 경우, 임신, 출산, 육아에 대한 책임이 사회적으로 공유되고 있지 않음에도 여러 가지 도덕적, 법적 이유로 임신과 출산을 강요당해 왔다. 낙태죄 폐지는 여성의 자기 신체와 삶에 대한 결정을 좀 더 자유롭게 할 수 있다. 그러나 낙태죄 처벌을 규정한 형법조항이 헌법불합치 결정을 받았다 해서 임신중절(낙태)에 대한 찬반 논의가 사라질 것으로 보이지는 않는다. 여전히 생명의 존엄성, 종교적 신념 등의 이유로 반대론을 옹호하는 사람들은 자신의 생각을 바꾸지 않을 것이기 때문이다. 산부인과 의사도 가톨릭 신자라면, 치료의 의무와 종교적 신념에 따른 갈등에 직면할 것이다.

 헌법재판소의 결정은 “태아가 모체를 떠나 생존할 수 있는 임신 22주 정도 이전 낙태에 대해서만” 허용 가능 해야 한다는 것이다. 임신 22주까지는 임신과 출산에 대해서 진지하게 고민할 수 있고, 임신중절을 위한 수술이 법적으로 보호받을 수 있다는 점에서 의미가 있다. 여성에게는 불법수술의 위험과 출산의 강요에서 벗어나게 하는 결정이라고 할 수 있다. 그러나 진정으로 여성의 자기결정권과 태아의 생명권을 보호하기 위해서는, 여성이 직장에서든, 대학에서든, 차별이나 경제적 부담 없이 아이를 낳아 키울 수 있는 사회 환경을 제도화하고, 아이를 키우는 것은 여성이 아닌, 공동체 모두의 책임이라는 인식을 공유하는 것이 필요하다.

 김우영<전주교육대학교 총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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