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월, 꽃잎 닮은 예쁜 추억 한 장
4월, 꽃잎 닮은 예쁜 추억 한 장
  • 정영신
  • 승인 2019.04.15 18:08
  • 댓글 1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4월이다. 이제 온 산야는 꽃들의 축제로 화려하다. 양지녘에서는 보랏빛 제비꽃이 찬바람을 피해 양볼을 부비더니, 그 곁에서는 아침 햇살에 밤이슬을 녹이며 노란 민들레가 작은 돌멩이 틈 사이로 고개를 내민다. 승암산 아래 한벽루를 스쳐가는 전주 남천(南川), 서천(西川), 추천(楸川), 조경천(肇慶川), 운암 옥정호 주변, 휘늘어진 수양버들 새순과 황록색 유화(柳花)가 바람에 날리고, 십수 년 묵은 연분홍 벚꽃잎이 훌훌 꽃비로 쏟아진다.

 4월이다. 꽃들의 계절이다. 며칠 몸을 움츠리게 했던 심술 많은 꽃샘바람도 이제 서서히 길을 떠나고 황방산, 건지산, 다가산, 남고산, 승암산 기린봉 산자락마다 산벚꽃, 조팝꽃, 샛노란 개나리, 진달래, 산목련, 때를 잃은 백매화, 홍매화, 이른 배꽃, 자두꽃이 조심스럽게 눈을 뜬다.

 이처럼 산과 들이 색색의 꽃들로 화려하게 단장을 하는 4월이 오면 예로부터 풍류를 즐기던 우리 선조들은 ‘답청(踏靑)’이라는 봄나들이 겸 꽃구경을 떠났다. ‘답청(踏靑)’은 봄날에 새로 싹이 난 푸른 풀을 밟고 놀면 부정한 액을 막을 수 있다는 오래된 우리 조상들의 풍습에서 유래한 것이다. 주로 삼월 삼짇날이나 춘분과 곡우 사이 ‘봄빛이 완연하고 공기가 깨끗해지며 날이 화창해지는 시기’인 양력 4월 초 청명(淸明) 전후에 이루어졌다.

 조선시대 풍속화가 신윤복(1758~)의 ‘연소답청(年少踏靑)’에도 ‘젊은 양반들의 봄나들이’라는 화제(?題)처럼 산자락마다 곳곳에 색고운 진달래가 볼을 내밀고, 머리에 진달래꽃을 꽂고서 봄 멋을 낸 자신의 여인들을 말에 태우고 꽃나들이를 가는 풍류남아 양반들의 모습이 섬세하게 그려져 있다. 또 근대 개항기 풍속화가인 기산(箕山) 김준근(생몰년미상)의 ‘봄에 답청 가서 노는 모양’에도 돌돌돌 눈 녹은 계곡물이 흘러가고 여기저기 아직 새 잎이 오르지 않은 두견화가 피어 있고, 남자들은 부채를 들어 올려 판소리를 하거나, 담배를 피우거나 한 잔 술을 마시며 춘흥에 젖어 있다. 답청 때는 주로 여름까지 변하지 않는다는 유일한 제조기법을 보유한 전통주인 과하주(過夏酒)나 도화주(桃花酒), 두견주, 송순주(松荀酒) 등 봄 술을 마시고, 진달래 화전을 지져 먹으며 ‘화전(花煎)놀이’ 또는 ‘꽃다림’을 하는 봄꽃놀이 즉 봄소풍을 통해 계절의 시작이라는 신령한 봄기운을 온 심신에 받았다.

 백호(白湖) 임제(林悌)도 “작은 시냇가에서 솥뚜껑을 돌에다 받쳐/흰 가루(찹쌀가루)와 푸른 기름으로 두견화(진달래꽃)를 지져/쌍 젓가락으로 집어 먹으니 향기가 입에 가득하고/일 년 봄빛이 뱃속에 전해지누나.”라며, 작은 시냇가로 봄나들이를 가서 즉석에서 화전(花煎)을 지져먹고, 그 꽃향기에 스민 한 해의 영험한 기운인 봄빛을 온몸으로 전해 받는 그 희열감을 고스란히 한 편의 시에 담았다.

 4월이다. 봄의 상징 꽃들의 계절이다. 이 산 저 산, 이 내[川] 저 내[川], 벚꽃잎이 자목련, 백목련, 온갖 꽃잎이 꽃비로 꽃눈으로 펄펄 풀풀 빈 하늘에 흩날린다. 때를 알아 그 시간 그 자리에서 봉오리를 열고 향기를 내미는 자태 고운 꽃들은 먼 기억 끝 그날의 추억이다. 훌훌 훨훨 결가는 날개 자락을 하늘로 풀어내며 빛살 사이로 흩날리는 그 꽃잎들은 새하얀 천상의 노래다.

 ‘꽃같은 얼굴’, ‘꽃같은 시절’, ‘웃음꽃’, ‘꽃사슴’, ‘꽃각시’……, 아름다운 여인의 얼굴은 ‘화용(花容)’, ‘화안(花顔)’, 갓태어난 아기는 그 집안의 꽃으로 귀히 여기고, 과거에 장원급제한 이에게는 ‘어사화(御賜花)’를 내려 영화로움을 표해주고, 구애(求愛)와 숭배, 존경과 친애, 위문과 축하의 마음도 아름다운 꽃송이에 담아 전해주었다. 그래서 꽃은 곧 받는 이를 향한 내 지극한 마음이다. 꽃은 아름다움을 추구하는 우리 인간으로부터 오래도록 찬사와 사랑을 받아 온 귀한 자연물 중의 하나이다. 그래서 아름답고 소중하고 귀한 대상에게는 ‘꽃’이라는 이름을 함께 붙여 그 마음을 전한다.

 4월이다. 온갖 꽃들이 만개한 아름다운 4월, 천변에 가도(街道)에 산자락마다 벚꽃잎이 불어오는 봄바람에 후르르르 후르르르 눈꽃으로 꽃비로 훨훨 훌훌 하얗게 흩날린다. 이처럼 온갖

 꽃들이 만개한 아름다운 봄날, 사랑하는 사람들과 봄꽃을 닮은 고운 마음을 서로 나누며 봄꽃잎을 닮은 예쁜 추억들을 한 장 한 장 만들어 보자.

  정영신<전북소설가협회 회장>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1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
윤진한 2019-04-16 02:23:17
24절기중 하나인 곡우. 중국 24절기는 유네스코 인류 무형문화유산임.
http://blog.daum.net/macmaca/261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