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귀한 삶 베풀고 선종한 지정환 신부
고귀한 삶 베풀고 선종한 지정환 신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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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승인 2019.04.15 18: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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척박한 임실지역에 치즈 산업을 부흥시키고 평생 가난한 사람들을 보살펴온 임실 치즈의 아버지 지정환 신부(벨기에 명 디디에 세스테벤스)가 13일 선종했다.

향년 88세의 나이로 영면한 지 신부의 일생은 희생과 헌신 봉사 등 그 어떤 찬사로도 그 고귀한 삶에 대한 감사와 고마움을 다 표현하지 못할 듯싶다.

1958년 가톨릭 사제 서품을 받고 1960년 3월 첫 발령을 받아 천주교 전주교구로 부임할 당시만 해도 대한민국은 전쟁의 폐허와 헐벗고 굶주린 가난에 허덕이던 세계 최빈국이었다. 더구나 산간오지나 다름없던 임실은 말할 것도 없었을 것이다. 그런 임실에 1967년 전국 최초로 치즈 공장을 설립, 유럽의 치즈 기술을 국내에 전파하며 한국 치즈 산업의 개척에 나섰다.

그의 평생은 늘 낮은 자세로 약자를 보살피며 함께하는 나눔과 베풂이었다.

1980년대부터 중증장애인을 위한 재활센터 ‘무지개의 집’을 세워 장애인의 삶의 질 향상을 위해 노력했다. 20여년간 중증장애인 자활에 헌신한 공로로 2002년 호암재단이 수여하는 사회봉사상을 받았다.

2004년 사제직에서 은퇴한 이후에도 삶이 고단한 민초들의 애환을 보살피는 그의 헌신에는 변함이 없었다. 완주군 소양면에 ‘별 아래’라는 집을 지어 무지개가족과 함께 일했던 사람들과 생활해 왔다.

그런 공을 인정받아 2016년 12월 정부로부터 한국 국적을 받았다. 한국에 온 지 57년 만이었다. 1970년대 말 급작스럽게 찾아온 ‘다발성 신경경화증’ 치료 후유증으로 하반신이 마비되는 바람에 휠체어에 의존해서도 마지막 순간까지 고인의 삶은 늘 가난한 자와 약자들 편이었다. 최근까지도 장애인들이 자립하고 정상적인 사회활동을 하는데 많은 관심을 두고 그들의 삶이 나아지도록 정성을 쏟았다.

고인의 빈소가 차려진 전주 중앙성당에는 정치권과 지자체장 등 각계각층은 물론 일반시민들의 조문행렬이 이어지고 있다고 한다.

한국을 누구보다 사랑했던 벽안의 한국인 지 신부는 죽어서도 이 땅에 묻혀 영면에 든다. 삼가 고인의 영전에 명복을 빌며 ‘정의가 환하게 빛난다’는 고인의 이름 ‘정환’처럼, 생전에 그가 바라던 대로 이땅에 영원히 정의와 희망이 깃들길 소망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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